‘캐나다 국왕’의 고뇌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03-04

캐나다는 이웃나라 미국과 더불어 영국 식민지로 출발했다. 미국은 1776년 독립을 선언하고 영국과 전쟁을 치른 끝에 독립국이 됐다. 당시 미국에 거주하면서 영국 국왕에게 충성하는 시민들 중에는 미국 독립에 반대하며 아예 인접한 캐나다로 이주한 이도 많았다고 한다. 캐나다는 계속 영국 식민지로 남아 있다가 자치령을 거쳐 1917년에야 독자적 외교권을 갖는 등 외형상 독립국의 자격을 갖췄다. 1949년에는 캐나다 영토의 사법 관할권이 영국에서 캐나다 대법원으로 이관되며 진정한 의미의 독립국이 되었다. 캐나다가 자체 헌법을 제정함으로써 완전한 독립국으로 거듭난 것은 불과 40여년 전인 1982년의 일이다.

1914년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캐나다의 법적 지위는 영국의 자치령이었다. 프랑스, 러시아와 더불어 연합국의 일원이던 영국이 독일과의 전쟁에 돌입하며 캐나다는 모국인 영국을 도와 참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진 뒤에도 캐나다는 영국의 곁을 굳건히 지켰다. 1944년 6월 나치 독일 점령 하의 프랑스를 연합국이 침공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캐나다는 미국, 영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참전시켰다. 당시 연합군이 상륙 지점으로 선택한 5곳의 해변 가운데 2곳을 미군, 2곳은 영국군이 담당했고 나머지 1곳이 캐나다군의 몫이었다. 상륙을 막으려는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무수히 많은 캐나다 청년들이 희생돼 노르망디 바닷가를 핏빛으로 물들였다.

오늘날 캐나다는 독립국임이 분명하지만 그 국가원수는 영국 국왕이 겸한다. 찰스 3세가 영국은 물론 캐나다의 국왕인 것이다. 이는 호주와 뉴질랜드도 마찬가지다. 2022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타계한 뒤 호주, 뉴질랜드에선 ‘더는 영국 국왕을 우리 국가원수로 섬기지 말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헌법을 고쳐 공화국으로 전환하자는 얘기다. 하지만 캐나다는 달랐다. 엘리자베스 2세의 아들인 찰스 3세 신임 국왕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여론이 다수였다. ‘개헌을 통해 공화국이 돼야 한다’는 의견은 소수에 그쳤다. 이는 거의 전적으로 엘리자베스 2세의 공이다. 그는 70년에 걸친 재위 기간 동안 무려 22차례나 캐나다를 방문할 만큼 캐나다 국민 마음을 사로잡는 데 최선을 다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웃나라 캐나다에 적대적이다. 당선인 시절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州)”라고 부르며 조롱하더니 3일에는 모든 캐나다 상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트럼프가 캐나다를 미국에 병합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캐나다 국왕인 찰스 3세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중이다. 캐나다 국민 사이에 ‘미국이 캐나다의 독립과 주권을 위협하는데 우리 국왕은 뭘 하고 있나’라는 비판이 커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영국과 캐나다의 국왕인 찰스 3세로선 자신이 섣불리 캐나다를 옹호하고 나섰다가 트럼프의 반발을 초래하고 이것이 영·미 관계에까지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하는 듯하다. 거느린 자회사가 많은 대기업 총수의 고뇌를 보는 것 같아 안쓰럽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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