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벼르고 별러서 연 국제행사인데 망신살만 뻗쳤다. 책임을 피할 수 없었지만 울분이 앞섰다. 전북도민 누구도 지자체의 책임을 거론하지 않았다. 대신, 머리띠를 두르고 주먹을 쥐었다. 행사 개최지인 전북에 마녀사냥식 비난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파행으로 얼룩지면서 책임의 칼날이 전북을 향했다. 갈길 바쁜 새만금 SOC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폭거가 뒤따랐다. 전북이 잼버리 유치에 나서면서 SOC 등 새만금 내부개발에 기폭제로 삼겠다는 의도와 기대가 있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부‧여당의 견강부회(牽強附會)식 공세와 어이없는 문책성 조치에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지역사회 응어리진 설움과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했다. 시민단체와 종교계까지 나서 ‘도민의 명예를 훼손하는 정치공세를 멈추고 책임규명에 나서라’고 외쳤다. 은연중에 새만금 잼버리 유치 공로를 내세우면서 공동조직위원장까지 맡았던 모 국회의원은 곧바로 대정부 투쟁의 선봉장이 돼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김관영 전북지사는 “제기된 의혹에 대한 진실을 밝히겠다”면서 전북도가 먼저 자체 감사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총성만 울린 채 중단됐다. 곧바로 감사원 감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예견된 일이다. 관련 법률에 명시된 ‘중복감사 금지’ 규정에 의해서다. 떠들썩하게 감사원 감사가 예고된 상황에서 김 지사가, 전북도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 억지 공세와 비난, 그리고 책임 떠넘기기에 대한 격한 항변, 울분 표출의 한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어물쩍 건너뛴 자성의 시간이 다시 왔다. 감사원이 ‘2023년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추진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를 마침내 내놓았다. 감사 착수 1년 6개월여 만이다. 준비‧운영기구인 조직위원회와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 행사를 유치한 전라북도의 부실한 업무처리와 무책임 행정이 겹친 총체적 부실이라는 게 감사원의 결론이다.
새만금잼버리 추진 주체 중 하나인 전북자치도에서도 ‘잘못한 만큼의 책임’을 되새기고, 반성해야 한다. 전북의 미래를 위해서다. 게다가 지금 전북은 잼버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지구촌 최대 축제 올림픽 유치에 나서지 않았는가. 골리앗 서울을 제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게 된 전북의 도전에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국제행사 개최 역량을 의심하면서 잼버리 파행의 아픈 기억을 애써 불러내고 있다. 경쟁에 뛰어들었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다.
어렵게 잡은 전북 대전환의 기회다. 걸림돌이 된 잼버리를 다시 디딤돌로 만들어야 한다. 보여주기식 반성과 입장 발표로 끝낼 일이 아니다. 드러난 과오를 꼼꼼히 살피고,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그해 여름날의 악몽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굳이 책임의 경중을 따져 뒤로 물러서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올림픽 유치에 나선 도시답게 책임감과 자신감을 보여줘야 한다. 실추된 도민의 명예와 자존심, 전북의 위상을 회복하는 길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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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표 kimjp@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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