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 그 사연] ‘님’이란 글자에 점 하나 찍으면

2025-01-12

을사년 뱀띠 해를 맞아 가사를 되새겨볼 노래를 추천하자면 무엇보다 김명애가 부른 ‘도로남’이 있다. 이 곡은 인생사에 대한 통찰이 빛나는 노랫말을 가졌다.

작사·작곡은 조운파. 그는 하수영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주병선 ‘칠갑산’, 태진아 ‘옥경이’, 김트리오 ‘연안부두’ 등을 작사한 인물로 한국 서민의 삶을 소재로 한 히트곡을 여럿 냈다. 김명애는 1990년 가수로 성공하겠다는 청운의 꿈을 품고 조운파를 찾았다.

조운파는 ‘칠갑산’ 같은 히트곡이 보여주듯 김명애에게 “어떤 노래를 하더라도 우리의 소리와 맛을 익혀야 한다”는 주문을 했다. 김명애는 단전호흡과 판소리 창을 새로 배우면서 노래 실력을 키워 1993년 ‘도로남’을 발표할 수 있었다.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지우고 님이 되어 만난 사람도/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 (중략) 점 하나에 울고 웃는다// 돈이라는 글자에 받침 하나 바꾸면 돌이 되어버린 인생사/ 정을 주던 사람도 그 마음이 변해서 멍을 주고 가는 장난 같은 인생사/ (중략) 정 때문에 울고 웃는다 멍 때문에 울고 웃는다.”

이 곡은 1993년 11월에 나왔지만, 다음해 초반까지 꾸준하게 인기를 얻으며 트로트 부문 방송 횟수 1위를 기록하는 등 김명애를 단번에 스타로 올려놓았다. 트로트 신인가수로는 이례적인 인기의 이유는 바로 가사에 있었다.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지우면 님”이 되고 “돈이라는 글자에 받침 하나 바꾸면 돌”이 된다는 표현이 사람들의 깊은 공감을 받았던 것이다.

이 노래는 성인을 겨냥한 트로트곡으로 1993년경 랩·댄스를 중심으로 한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등 최신 가요 경향과는 달랐음에도 큰 인기를 얻었다. 당시 성인들이 이 곡을 좋아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서울 강남 개발로 인해 졸부가 탄생하고 유흥문화가 발달하면서 외도가 본격적으로 사회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또한 고도성장으로 인해 자본시장에 기형적인 버블이 있었다.바로 1980년대 후반 주식 열풍이다. 1989년 종합주가지수가 1000포인트로 급상승하면서 너도나도 주식 투자에 뛰어들었다. 그러다 1992년에 거품이 꺼지고 주가가 반토막 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낭패를 봤다. 아마도 사랑과 돈에 눈이 멀어 인생의 쓴맛을 경험한 사람들은 ‘도로남’을 듣고 무릎을 쳤을 것이다.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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