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사이버 공격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여전업계에 '한 번의 사고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제로 톨러런스(Zero-Tolerance, 무관용) 원칙 준수를 당부했다. 취임 시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던 이 원장의 시선이 여전히 금융권 사이버 보안 대책 수립과 이행에 머물러 있는 가운데, 최근 롯데카드 해킹 사태 여파로 여전업계 전반의 긴장감도 최고조에 달한 상황이다.
16일 여전업계에 따르면 이날 이 원장은 14개 여전사 대표이사(CEO)를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고 금융소비자 정보 보호 강화 등 여전사의 지속 가능한 발전 방향과 업권 건의사항 등을 논의했다.
간담회 시작에 앞서 이 원장은 모두발언을 통해 여전업이 국내 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카드사는 국민 모두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지급결제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으며, 캐피탈사와 신기술금융사는 기업의 자금조달을 뒷받침하고 있다"며 "국민의 곁에서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전업권의 리스크 관리 제고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원장은 "카드사와 캐피탈사의 순이익은 정체되면서 간편결제 확산, 스테이블 코인 등장 등 결제시장에도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이에 대응한 다각적인 성장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금융소비자 정보 보호 등 보안 의식 제고를 위해 최고경영진이 직접 나서 줄 것을 당부했다. 소비자는 자신의 정보가 안전하게 지켜질 것이라는 기본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금융회사를 선택하기 때문에, 이번 사고를 뼈아픈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제로톨러런스 원칙을 기반으로 최고 경영진이 직접 나서 사이버 보안 인프라를 근본적으로 재점검해 주길 바란다"며 "금융감독원도 이행여부에 미흡함이 없도록 촘촘히 관리·감독하고, 위반사례에 대해서는 엄정하고 무거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최근 발생한 롯데카드의 해킹 사고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앞서 롯데카드는 지난달 26일 온라인 결제 서버에서 외부 해커의 침해 흔적을 발견해 전 시스템에 대한 정밀 점검과 예방작업들을 수행하고 있다.
이후 지난 4일 조좌진 롯데카드 대표가 직접 나서 소비자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조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당사의 보안 관리 미흡에서 비롯된 것이며, 모든 책임은 저와 롯데카드에 있다"며 " 추가 상황 발생 시 전사적 차원에서 즉각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조 대표는 해킹 피해 대응 일정을 이유로 금융당국 간담회에 불참 의사를 사전에 전달했고 현장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원장이 지속적인 정보보호 강화를 금융권에 요청하면서, 카드업권의 긴장감도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통신사에서 시작된 대규모 해킹 피해 사례가 업권을 막론하고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가운데, 최근 카드사에까지 파장이 미친 만큼 더 이상 안심할 수 없다는 우려가 만연한 상황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권고 하에 최근 전사적으로 보안 체계를 확인하고 지속해서 점검하고 있다"며 "최근 해킹 수법이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어 언제 또 여전업계에서 사이버 공격 피해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여전사들은 이날 간담회에서 결제시장 경쟁 심화, 경기 둔화 등에 따른 수익성 저하 등 경영상 어려움을 토로하는 한편, 취약차주에 대한 지원 확대와 여전사의 사업영역 확장을 위하여 금융당국의 정책적·제도적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이 원장은 감독·검사업무에 업권의 건의사항을 적극 반영하고, 불필요한 규제 개선 등 제도적 지원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