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몇년간 가을마다 무기력해지고 잠이 쏟아지는 증상을 겪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가을을 타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극도로 힘들어졌고 낮에도 꾸벅꾸벅 조는 일이 잦아졌다. A씨는 매사에 의욕을 잃어 친구와의 만남, 취미생활 등도 피하기 시작했다. 우울증인가 싶어 치료를 받으려다가도 날씨가 따뜻해지는 3월이 되면서 점점 나아지자 치료를 미뤘다. 그러나 다음 가을 또 다시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고, 증상이 점점 심해지는 것을 느끼고서야 병원을 찾았다. A씨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결과 계절성 정서장애 진단을 받았다.
30대 직장인 B씨는 평소 자기 관리에 예민한 편으로 체중을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날씨가 쌀쌀해지는 늦가을부터 평소와 다른 식습관을 보였다. 10월이 되자 B씨는 저녁식사를 하고도 밤늦게까지 과자나 아이스크림과 같은 디저트를 먹는 일이 잦아졌다. 평소와는 달라진 식습관으로 체중이 늘자,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렸다. 단순히 식탐과 의지력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엔 증상이 매년 반복적으로 심해지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B씨는 결국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알고보니 B씨 역시 계절성 정서장애였다.
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 찾아오는 우울감, 무기력감, 식욕 증가 등의 증상은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경험하는 익숙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만큼 심해진다면 단순한 기분 변화가 아닌 의학적 진단이 필요한 계절성 정서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일 수 있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준형 교수는 “계절성 정서장애는 계절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발생하는 신경생물학적 질환”이라며 “핵심 원인은 일조량 감소에 있다”고 밝혔다.
가을ㆍ겨울철 낮이 짧아지면 멜라토닌 분비가 늘어 낮에도 졸음과 무기력감을 일으키고, 동시에 세로토닌 분비가 우울감과 불안감을 악화시킨다. 이 때문에 다른 우울증과는 달리 잠을 많이 자도 피곤하고, 단 음식을 계속 찾으며, 체중이 늘어나는 비정형적 증상이 두드러진다.
김 교수는 “증상이 2주 이상 이어지고, 2년 이상 동일한 계절에 반복된다면 단순 기분 변화가 아닌 계절성 기분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과다수면, 탄수화물 갈망, 집중력 저하와 같은 증상이 동반된다면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이런 증상을 보인다 해서 모두가 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김 교수는 “가벼운 경우에는 생활 습관 관리만으로도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며 “햇볕을 자주 쬐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며, 균형 잡힌 식사를 통해 생활 리듬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증상이 지속된다면 반드시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광 치료(Light Therapy), 항우울제 약물치료, 인지행동치료(CBT-SAD) 등이 대표적인 치료법으로, 실제 임상에서 효과가 입증되어 있다.
김 교수는 “계절성 정서장애는 단순히 기분이 가라앉는 계절적 현상이 아니라 치료가 가능한 의학적 질환”이라며 “방치하지 말고 적극적인 관리와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