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를로스 알카라스(스페인)가 US오픈 정상에 오르며 시즌 마지막 그랜드슬램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9월 7일 미국 뉴욕의 빌리 진 킹 국립테니스센터에서 열린 대회 남자단식 결승에서 2번시드 알카라스가 톱시드 얀니크 신네르(이탈리아)를 2시간 42분 만에 6-2 3-6 6-1 6-4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알카라스가 US오픈 정상에 오른 것은 2022년 이후 3년 만이며 그랜드슬램 통산 6번째 우승이다. 이번 우승으로 알카라스는 신네르와의 상대전적을 10승 5패로 격차를 벌렸고 대회가 끝난 후 발표된 세계랭킹에서도 신네르의 65주 연속 세계 1위 행진에 제동을 걸고 1위 자리를 탈환했다.
알카라스는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세트를 내준 두 번째 세트를 제외하고는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코트를 지배했다.
알카라스의 우승은 ‘서브+1’에서 이미 결정됐다. 듀스코트에서 와이드 서브로 시너를 코트 밖으로 몰아낸 후 오픈코트로 포핸드 위너를 꽂아 넣었다. 애드코트에서는 T존으로 서브를 놓은 후 공격 방향을 신네르의 백핸드로 집중시켰다. 첫 서브 뒤 단 9포인트만 잃었다는 안정감은 단순한 파워가 아닌 치밀한 설계의 결과였다.
첫 서브 성공률이 48%에 그친 신네르에게는 안정적인 두 번째 서브가 필요했다. 하지만 알카라스는 스텝 인 리턴으로 그 출발점을 무너뜨렸다. 알카라스의 깊은 리턴에 신네르의 스트로크는 위로 높이 떴고 알카라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위너로 연결했다. 첫 세트와 세 번째 세트에서 신네르가 흐름을 잃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네르의 강점은 길고 안정적인 랠리다. 하지만 알카라스는 이를 정면으로 맞서지 않았다. 그는 신네르의 장점인 ‘롱 랠리’를 의도적으로 차단했다. 빠른 플랫과 묵직한 톱스핀의 혼합 그리고 슬라이스와 드롭샷으로 신네르의 안정적인 루틴을 깨뜨렸다. 여기에 알카라스는 또다시 전술에 변화를 주었다. 바로 네트 플레이다. 그는 신네르가 자신의 플레이에 익숙해질 때쯤 과감히 전진해 네트를 점령했다. 27차례 네트 플레이를 시도해 20차례 성공한 그의 네트 플레이는 신네르의 롱 랠리가 힘을 잃을 정도로 효율적이었고 치명적이었다.
알카라스는 윔블던 결승에서 신네르에게 패한 후 스스로를 냉정하게 분석했다. 서브의 퀄리티를 높이고 1구 설계를 정교하게 다듬으며 신네르의 롱 랠리에 맞서는 대신 그 리듬을 끊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전술적인 측면에서 알카라스가 신네르를 압도한 것이다.
이번 알카라스의 우승은 단순히 한 대회의 우승이 아니다. ‘테니스는 랠리의 예술이지만 랠리를 설계하는 자가 승리한다’라는 명제를 알카라스가 증명했다. 신네르가 안정감으로 무장한 선수라면 알카라스는 창조성과 변주로 무장한 선수다. 그리고 이번 결승은 그 차이가 어떻게 트로피의 향방을 가르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누가 더 시대를 지배할 것인가? 올 시즌 네 차례 열린 그랜드슬램에서 알카라스와 신네르가 사이좋게 각각 두 차례 우승했다.
신네르는 비록 세계 1위 자리를 내줬지만 여전히 하드코트와 실내코트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그의 안정된 스트로크와 체계적인 빌드업은 세계 최고다.
알카라스는 전술적 다양성과 순간 폭발력에서 차별화되며 그랜드슬램 결승과 같은 큰 무대에서 더욱 빛나는 선수다.
두 선수는 이미 여러 차례 결승 무대에서 맞붙었고 ‘페더러–나달–조코비치’ 시대 이후의 새로운 라이벌 구도를 상징한다. 이번 US오픈 결승은 단순한 결승이 아닌 앞으로 최소 5~10년간 이어질 대서사의 한 장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알카라스와 신네르가 세계 테니스를 양분하고 있는 가운데 두 선수의 상반된 색깔이 부딪칠 때마다 팬들은 또 다른 명승부를 기대하게 된다.
<박준용 테니스 칼럼니스트, 前 SPOTV 해설위원(loveis551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