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그중 누구라도 생각이나 했을까. 25년 뒤 오프시즌 또 다른 전장에서 완전히 다른 옷을 입고 경쟁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프로야구 자유계약시장(FA)이 개장 뒤 고속 전개로 폐장을 향해 가운데 치열하게 선수 쟁탈전을 벌인 6개구단 단장은 서로를 특별히 더 잘 아는 사이다. FA 시장이 열리자마자 유격수 심우준과 투수 엄상백을 차례로 잡은 손혁 한화 단장과 내야수 이탈 뒤 두산 소속이던 허경민을 영입한 나도현 KT 단장 그리고 장현식 쟁탈전에 나섰던 그의 원소속구단 KIA 심재학 단장과 이종열 삼성 단장, 차명석 LG 단장 모두 1999년 선수 또는 프런트로 프로야구 LG에 있었다. 아울러 이번 FA 시장의 실질적인 출발 총성을 울린 SSG 김재현 단장 또한 그 시절 LG ‘캐넌 히터’로 명성을 떨쳤다.
1999년은 이들 단장이 모두 잠실구장으로 출퇴근하던 시절이다. 차명석, 손혁 단장은 그해 투수로 잠시 전향한 심재학 단장과 함께 LG 1군 투수조에서 함께 했고 이종열, 김재현 단장은 야수진 주축이었다. 나도현 단장은 국내외에서 스포츠매니지먼트를 전공한 후 그해 LG에 입사해 야구단 프런트의 길에 올랐다.
대체로 가깝다. 그래서 이들은 잘 통한다.
지난 5월 KT와 삼성이 박병호와 오재일을 맞바꾸는 대형 트레이드를 성사시키는 과정에서도 나도현 단장과 이종열 단장의 소통 채널이 부각됐다. 두 단장은 두 거포의 트레이드를 놓고 비교적 허심탄회한 대화를 한 끝에 빠르게 협상을 마무리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트레이드를 놓고 관심을 보인 다른 구단도 있었지만 소통의 속도와 깊이가 달랐다.
그러나 FA 시장처럼 구단간 소통 채널이 불필요한 상황에서는 인정사정없는 경쟁이 불가피하다. 이들 단장 중 한 인사는 “사실, 인연이 다들 있다.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는 말도 잘 통하고 소통도 수월한 편이다. 그런데 건별로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생존 법칙에 인간적 관계가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지난 11일 LG가 종지부를 찍은 ‘장현식 영입전’도 1990년대 LG맨들의 신경전 끝에 마무리됐다. 지난 10일 이후 1박2일간 장현식 대리인인 리코에이전시와 쟁탈전에 참가한 원소속구단 KIA, 삼성, LG간의 긴박한 시간이 흐른 뒤 선수의 행선지가 최종 정리됐다.
11일 오전 새 구단의 표정은 사실 조금씩 달랐다. 그중 LG가 오퍼를 마친 다음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면서도 내심 자신감을 보인 것과 달리 KIA와 삼성의 특별한 반응은 포착되지 않았다. 이들 구단 사이에서는 총액과 보장액 사이에 미묘한 조건 차이가 있던 것으로 확인됐는데 장현식의 최종 선택은 서울행이었다.
다만 FA 쟁탈전은 승부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올해도 지난 겨울 FA 외부 영입전에서는 고개를 들지 않았던 KIA의 승리로 끝났다. 심재학 단장이 전체 시즌의 위너가 됐다.
이번 스토브리그 단장들간의 전략 싸움은 이런 이면의 스토리로 알고 보면 조금 더 흥미로운 관전포인트도 있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고 김광섭 시인의 시 ‘저녁에’의 한 구절이 녹아든 스토브리그. 인연은 뜨겁지만 경쟁은 차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