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청와대로 출근한 29일 청와대 사랑채와 분수대 앞에서는 해고 위기에 놓인 노동자, 이주노동자 유족의 집회가 잇따라 열렸다. ‘청와대 시대’가 다시 열리면서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는 장소도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이날 청와대 인근 도로 곳곳에 경찰이 다시 배치됐다. 경찰은 청와대 방향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외국인 관광객들 제지하기도 했다. 청와대로 향하는 도로 양옆 가로등에는 ‘광장의 빛으로, 다시 청와대’라는 문구가 적힌 배너가 걸렸고 그 아래로 이른 시간부터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윤석열 정부 당시 청와대 개방사업에 참여했던 하청노동자 10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재취업과 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삼보일배에 나섰다. 윤 전 대통령이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청와대는 하루 평균 8000여명이 찾는 관광지가 됐다. 청와대 개방에 필요한 업무는 하청노동자들이 맡았고 이 대통령이 집무실을 다시 청와대로 옮기자 노동자 200여명은 강제 해고 위기에 놓였다.
이현미 공공운수노조 서울본부 본부장은 “국가가 돌아가도록 묵묵히 일해온 정부기관 노동자들이 ‘이전’, ‘용도 변경’이라는 말 한마디로 한꺼번에 버려질 위기에 처했다”며 “노동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갈아 끼우는 부품이 아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구조조정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을 회피한 집단 해고”라고 말했다.
‘실사용자’인 정부는 책임을 회피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이날 기자와 통화하면서 “업무 자체가 사라져 고용 승계는 법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비서실 관계자 역시 “여러 방안을 검토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에서 미화직으로 일했던 김성호씨(60)는 “국가의 잘못된 판단으로 생계를 잃는 게 맞냐”고 호소했다.

오전 11시가 되자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는 또 다른 목소리가 이어졌다. 베트남 이주노동자 고 뚜안씨(25)의 아버지 부반숭씨(48)가 108배를 올렸다. 그동안 유족들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와 기자회견을 열어왔다. 대구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는 부반숭씨는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로 왔다고 했다.
뚜안씨는 2019년 한국에 유학을 왔다. 대학원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구 성서공단의 한 공장에 취업했고 지난 10월28일 정부의 ‘미등록 이주민 2차 합동단속’을 피하다 숨졌다. 뚜안씨는 미등록 외국인은 아니었지만 제조업체 취업이 제한된 비자 소지자였다.
통역을 맡은 윤다혜씨(41)는 “딸이 죽은 뒤로 잘 먹지도, 잘 자지도 못해 살이 많이 빠지셨다”며 “단속이 이뤄지는 동안 몇 시간이나 숨어 있었을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왜 떨어져 죽어야 했는지 이유를 묻고 싶다고 자주 말씀하신다”고 전했다. 이어 “유학생 비자가 제한적이어서 일자리를 제대로 구하기 어렵다”며 “뚜안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한국에 온 유학생들이 일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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