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다시 지휘해도 될까

2025-07-17

그가 돌아온다. 2022년 2월 24일 그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오페라를 지휘하고 있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던 그날, 밀라노시는 그에게 입장 표명을 요청했다. 전쟁에 반대한다는.

그런 건 없었다. 푸틴 최측근인 그는 그저 입을 닫았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공연 무대에서 쫓겨나기 시작했다. 뮌헨 필하모닉과 수석 지휘자직에서 해고됐고, 모든 무대가 취소됐으며, 그가 이끌고 있던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는 세계국제음악콩쿠르 연맹에서 퇴출됐다.

조국의 이웃 침공에 침묵했던

러 지휘자 게르기예프 곧 복귀

예술사는 그를 어떻게 평할까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72)가 올 여름 서유럽에 그 이후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탈리아 나폴리 인근의 카세르타 왕궁에서 열리는 ‘운에스타테 다 레(Un’Estate da RE·왕실의 저택)’ 음악제다. 이달 27일 오후 9시부터 게르기예프는 베르디 ‘운명의 힘’ 서곡,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라벨 볼레로를 지휘할 예정이다.

음악제가 열리기도 전에 나폴리는 이미 뜨겁다. 러시아의 음악 황제, 푸틴의 30년지기, 전쟁에 대해 단 한마디도 반대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채 러시아에서 음악 권력을 더 강화해온 그가 무대에 서도 괜찮을까?

취소하라는 목소리가 당연히 높다. 전쟁에 대한 반대 입장을 보여야 한다는 3년 된 주장이 가장 강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제가 조금 더 첨예하다. 이번 축제에 유럽연합의 기금이 쓰인다는 점에서 “유럽의 돈이 크렘린 지지자에게 흘러들어가는 것”(피나 피체르노 유럽의회 부의장)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공연이 강행된다면 그 주변에서 반대 시위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

게르기예프가 침묵하는 가운데 주최측은 강행을 예고했다. “문화와 예술이 사람들간의 대화와 연대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기회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항상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의 만남을 촉진해왔다.”(빈첸초 데 루카 캄파니아 주지사)

루카 주지사의 주장은 3년 전에는 나오지 못했을 종류의 것이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 음악가들에 대한 온도가 많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그들의 자리는 눈에 띄게 넓어지고 있다.

스타 소프라노인 안나 네트렙코(54)가 좋은 예다. 그는 전쟁 이후 즉시 서구 세계에서 퇴출됐고, 특히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소송을 벌일 정도로 떠들썩하게 퇴장했다. 하지만 2023년에 역시나 시끄럽게 복귀했다. 그해 9월 베를린 국립 오페라에서 ‘맥베스’의 레이디 맥베스 역할을 맡았을 때 공연장 안팎이 시끄러웠다. 환호와 야유가 공존했다. 그 홍역을 한 번 치르고, 네트렙코는 비교적 순조롭게 무대에 선다. 올 2월 미국 공연까지 마쳤으니 말이다.

그리스 태생으로 2014년 러시아에 귀화한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53)도 공연 횟수를 늘리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출연한다. 올 4월 뮌헨에서 브람스와 말러를 지휘했고, 여름에는 스위스 베르비에 음악제에도 출연한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예술감독과 쿠렌치스는 공통적으로 이런 논리를 펼친다. “전쟁을 지지하지도 비판하지도 않은 잘못이 그렇게 큰가? 침묵할 권리는 없나?” 하지만 여전히 러시아 정부의 자금 후원을 받는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쿠렌치스는 영리하게도, 여러 나라의 음악가들을 모아 연주 단체를 새로 만들었다. 그 이름 마저 자유의 향기가 가득한 ‘유토피아’다.

쿠렌치스가 잘츠부르크에서 지난해 지휘한 오페라 ‘돈 조반니’의 작품성이 어마어마하게 높았다는 리뷰와 함께, 이 문제는 좀 더 복잡해진다. 지난해 이탈리아 베로나 페스티벌에서 네트렙코가 불렀던 ‘아이다’의 노래들은 그의 대체불가함을 증명했다고 한다. 게르기예프가 이달 말 지휘할 작품 또한 일부러 찾아가 들을만한 연주는 맞는다. 이런 이유로 게르기예프의 무대 또한 점점 확대될 텐데, 나폴리가 예고된 티핑 포인트다. 벌써부터 내년 초 스페인 공연설이 퍼지고 있다.

음악이 사회와 분리된 적은 없었다.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나치에 협력한 혐의가 있었고,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 정권과 긴장과 복종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슈트라우스는 자신의 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구실이 남았고, 쇼스타코비치는 극도의 불안 속에 수수께끼 같은 코드를 음악에 남겼다. 후대는 러시아 음악가와 전쟁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그 한 페이지에는 이달 말의 나폴리 공연이 있을 것이다.

김호정 음악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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