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전기료 오를 수밖에" 언급 뒤엔…재생에너지 수백조 투자

2025-08-15

전기요금은 민감한 이슈다. 서민 주머니 사정은 물론이고 산업 경쟁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와중에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전기요금 인상을 시사했다. 관건은 실현 가능성이다. 지난 정부도 ‘전기요금 정상화’를 내세웠지만 결국 산업용 전기요금만 인상하는 ‘반쪽 인상’만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14일 수석비서관회의에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다 보면 전기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다”며 “적극적으로 국민에게 이를 알려 이해와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2035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는 막대한 규모의 시설 투자가 필요하다. 이런 비용을 빚을 내지 않고 충당하려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이 대통령 발언은 이런 취지에서 나왔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4년 말 기준 10.6% 수준이다. 올해 3월 정부가 확정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38년까지 29.2%까지 증가하게 된다. 이를 뒷받침하려면 대규모로 투자해 발전 설비를 늘려야 한다. 이번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해상풍력은 1GW 규모 단지를 건설하는 데 6조~7조원가량이 든다. 2030년까지 목표한 14GW의 해상풍력 설비를 도입하는 데만 100조원에 달하는 투자가 필요하다.

게다가 신재생에너지가 제 역할을 하게 하려면 대규모 송ㆍ배전망 설비와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대한 투자가 필수적이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은 전라남도, 제주도 등 비수도권 지역에 몰려 있지만, 전력 수요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서다. 이번 정부가 서해안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고속도로’를 구축하려는 이유다. 한국전력도 2038년까지 송ㆍ변전 설비에 72조8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런 투자를 해야 할 한전의 재정 상황은 좋지 못하다. 한전의 연결기준 총 부채는 올해 6월 말 기준 206조2300억원이다.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은 472%에 달한다. 각종 투자를 위해 추가로 빚을 내는 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결국 전기요금 인상으로 투자를 위한 실탄을 마련할 가능성이 크다. 신한투자증권 최규헌 연구원은 “재무 건전성을 정상화하고, 에너지 고속도로 중심의 국내 전력망 재편을 위한 재원 마련 필요하다”며 “비수기인 올 4분기 요금 인상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시설 투자를 제외하더라도 여전히 비싼 재생에너지의 발전 원가도 부담 요인이다. 한전에 따르면 지난해 한전의 평균 전력 구입 단가는 1킬로와트시(kWh)당 134.8원이다. 발전원별로 나눠보면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정서(REC) 비용까지 고려한 태양광 단가는 1kWh당 200원대, 해상풍력 단가는 1kWh당 400원으로 여전히 높다. 특히 원전 발전 단가(1kWh당 66.4원)와 격차가 크다.

장기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는 시설 투자 후 별도로 연료를 구입할 필요가 없어 발전단가가 일반 전기 단가보다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 이미 미국 등은 태양광 패널 가격 하락 등으로 인해 시설 비용 등을 포함한 발전 비용이 천연가스 발전 등과 비교해 밀리지 않는 수준까지 내려갔다. 다만 이들 국가와 달리 한국은 높은 산지 비율 등으로 대규모 발전 설비 구축이 어려워 재생에너지 전기 가격이 당분간은 기존 발전보다 높은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

인공지능(AI)발 전력 수요 증가도 전기요금을 자극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AI 3대 강국 도약’ 등을 주요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AI를 학습시키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전력 소모량이 큰 대형 데이터센터가 필수적이다. 이미 미국에선 AI로 인한 전력 수요 증가가 전기요금을 끌어올리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올해 5월 전국 평균 가정용 소매 전기요금은 1kWh당 16.41센트에서 17.47센트로 6.5% 상승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는 데이터센터로 인해 2030년까지 전국 평균 전기요금이 8% 오르고, 미국 버지니아주와 같이 데이터센터가 밀집한 곳은 최대 25%의 전기 요금이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현 상황에서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게 쉽지 않다는 의견도 많다. 가정용 전기요금 인상은 국민적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물가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 윤석열 정부도 여론 악화를 우려해 산업용 전기요금만 조정했다. 산업용 전기요금(고압BㆍC 기준)은 2022년 kWh당 105.5원에서 지난해 말 185.5원으로 75.8% 인상됐다.

현대경제연구원 장우석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6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전기요금 인상과 산업 경쟁력 유지 사이에서 정책 균형을 모색해야 하는 난제에 직면하고 있다”며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은 전력 다소비 업종의 제조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며 수익성 악화와 수출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천구 인하대 제조혁신전문대학원 교수는 “에너지 고속도로 등 전력 인프라 투자를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전기요금을 현실화하는 게 불가피한 상황은 맞다”면서도 “다만 원유 등 국제 에너지 가격 하락과 최근 급격히 오른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폭 등을 고려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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