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그룹이 지난해에 이어 2025년 ‘가장 안전한 차 제조사’에 이름을 올렸다. ‘전 세계 차량안전 표준’으로 불리는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IHS) 충돌 안전 종합평가에서 2년 연속으로 가장 많은 차종이 선정됐다.
30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는 올해 IIHS 종합평가에서 차량 21종이 ▶TSP+(톱 세이프티 픽 플러스)와 ▶TSP(톱 세이프티 픽) 등급을 획득했다. 폭스바겐과 혼다는 각각 9개의 차종이 뽑혀 뒤를 이었다. 또 다른 글로벌 안전평가인 유로NCAP(신차안전성평가)에서도 현대차 2종, 기아 4종이 최고등급(별 5개)을 얻었다.
IIHS는 1959년 미국의 대형 보험사들이 설립한 비영리 단체로, 매년 미국 시장에 출시된 차량을 대상으로 안전 평가를 한다. 보험사 입장에선 사람이 덜 다치고 차량 손상이 적어야 보험금 지출이 줄어들기 때문에 평가 기준이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이에 업계에선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테스트(The world's toughest crash tests)’로 불린다.
특히 올해는 IIHS가 ‘전면 충돌 평가’ 규정을 강화했음에도 현대차그룹은 경쟁사 대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안전한 아빠차’로 통하는 메르세데스-벤츠의 ‘E클래스’는 올해 TSP 등급을 획득하지 못했고, 2021~202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던 볼보도 TSP등급은 3종에 그쳤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현대차 품질은 낮은 평가를 받았다. 미국 토크쇼에서 “우주선 계기판에 현대차 로고를 붙이면 조종사가 (우주선이 고장날까봐) 놀라서 귀환을 포기할 것”(1998년)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였다. 미국시장에서 판매된 ‘트라제XG’는 6개월간 다섯 차례 리콜 판정을 받았고, 중·소형차할 것 없이 리콜이 이어졌다.
이에 정몽구 명예회장은 99년 회장 취임 직후, 매월 두 차례 ‘품질 회의’를 신설했다. 회의 날 오전 7시 30분, 전체 임원은 물론 부품업체 대표들까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건 우리 잘못이 아니다’라고 책임을 미룰 때면 어김없이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때 시작된 ‘안전·품질 집착’은 현대차그룹의 DNA로 새겨졌다.


2021년 정의선 회장은 취임후 첫 신년사에서 “품질과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 행사에서 청년들이 정 회장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도 “저는 (차량 이동으로) 사람과 사람을 실제로 연결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만날 때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자동차를 잘 만드는 것이 제 꿈”이라고 했다.
갈수록 예측하기 힘든 다양한 유형의 사고가 증가하면서 안전에 대한 사회의 요구도 커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2005년 경기 화성시 남양기술연구소에 4만㎡(약 1만2000평)규모의 안전시험동을 만든 이유다. 최대 중량 5t 차량을 시속 100㎞로 충돌시키는 고강도 실험이 가능한 시설이다. 이곳에선 연평균 약 650회의 시험이 진행되는데, NHTSA(미국 도로교통안전국), GIDAS(독일 실사고 조사체계) 등의 사고데이터부터 AS·품질부문 수집 정보를 종합적으로 안전기술 개발에 활용한다.

현대차·기아는 차량안전을 포함한 기술 투자도 2021년 6조7303억원에서 지난해 9조8771억원으로 3년 만에 50% 가깝게 늘렸다. 그 결과 차량에 ‘전방 다중 골격 구조’ ‘센터 사이드 에어백’ 등이 적용됐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현행 안전 기준은 물론 앞으로 자율주행 시대에 강화될 새로운 평가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 안전 성능 개발에 더욱 속도를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운전대 어디로 꺾나…AI 시대 ‘차 사고 연구’도 달라진다

(기술)격차보다 중요한 건 안전입니다. 앞으로도 안전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추겠습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최근 자율주행 기술이 뒤처지지 않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자율주행’을 묻자 ‘안전’이란 키워드가 먼저 나왔다는 것이 향후 현대차그룹의 기술 개발 방향을 가늠케 한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강조하는 안전 성능 개발 기조가 자율주행차에도 이어질 것으로 본다. 이미 현대차에선 ‘100억-100회’의 법칙이 통용되고 있다. 신차를 개발할 때 차종 당 100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들여 정면·측면·후방 충돌 등 100회 이상의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 평가와 시험에 약 4000시간이 걸린다.
특히 충돌 시험은 모두 실제 사고를 재현한 상황에서 진행되는데, 실험에 동원하는 더미(dummy·인체모형)만 27종, 170세트로 업계 최대 규모다. 여기에 수퍼컴퓨터를 활용한 충돌 시뮬레이션도 3000회 이상 이뤄진다.

자율주행차 시대에는 안전 성능 기술과 검증 방식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게 현대차의 판단이다. 인공지능(AI)이 도로 상황을 판단해 주행할 때에는 사람이 운전할 때와는 다른 양상의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간 운전자는 충돌이 예상될 경우 본능적으로 본인과 먼 쪽으로 운전대를 틀면서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AI는 자체적으로 판단해 피해 규모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제동하기 때문에, 지금과는 다른 충돌 방식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AI가 주행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충돌 시나리오를 개발해 자율주행차의 골격 구조와 안전 성능을 강화하는 데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윤서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