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중(62) 서울대 농림생물자원학부 명예교수가 굽힘과 비틀림에 대한 복원이 가능한 에폭시 비트리머 소재 같은 차세대 전기·전자용 접착제·포장재를 개발해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의 폴더블폰을 구현하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올 9월 ‘대한민국 학술원상’을 받았다. 도쿄대 임산학과에서 접착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올 초 일본 접착학회에서 외국인 최초로 공적상을 받고 석학회원에도 선정됐다. 지금껏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학협력에 중점을 두고 연구에만 몰두해온 그가 올 8월 정년퇴직을 3년 앞두고 조기 퇴직을 결정하자 주위에서 다들 의아해했다.
김 명예교수는 1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첫 언론 인터뷰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처럼 연구에 매달리고 1년에 2개월은 해외 출장을 다녔다”며 “그동안 에너지를 너무 쏟은 탓에 몸이 힘들어 정년을 3년 앞두고 자원해 은퇴했다”고 말했다. 물론 은퇴 후에도 그는 국내외 학회에서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한편 국내 기업들에 대한 자문에 응하면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 앞서 삼성전자 갤럭시 폴더블폰에 적용된 차세대 접착제 기술에 대해 칠판에 판서를 해가며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김 명예교수는 “고분자 소재는 고온에서 휘어져 복원이 되게 하려면 딱딱하게 해야 하는데 그러면 영하 20~30도만 돼도 부러진다”며 “삼성이 폴더블폰을 20만 회 접었다 폈다 하는 신뢰성 시험을 할 때 문제가 없도록 뒷받침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해외의 한 유튜버가 폴더블폰의 내구성을 시험한 결과 삼성폰은 43만여 회까지 접었다 펴도 문제가 없었지만 중국 화웨이폰은 약 10만 회만에 부러져 대조를 보였다. 이는 폴더블폰의 우수한 설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영역의 조화, 차세대 접착제의 성과가 맞물린 결과였다. 김 명예교수는 “폴더블폰 접착제 연구를 하면서 중국 화웨이가 참고할 수 있겠다 싶어 바로 특허를 내지 않거나 1년 반가량 늦게 출원했다”며 “우리가 중국보다 앞서는 고부가가치 액화천연가스(LNG)선이나 액화수소선도 LNG와 수소의 부피를 각각 600분의 1과 800분의 1로 줄이기 위해 -162도와 -253도라는 극한의 환경에서 버틸 수 있는 접착제가 필요해 역시 기술 보안이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김 명예교수가 조기 은퇴했다는 소식에 중국 기업들에서도 스카우트 제의가 이어졌으나 거절하고 대신 인도네시아 바탐과학기술원(ITEBA) 석좌교수(비상근) 역할만 하고 있다. 그는 “힘들게 개발한 기술을 다른 나라에서 베끼지 못하도록 철통 보안을 지켰는데, 중국 기업에서 오라고 해서 갈 수 있겠느냐”며 “삼성 임원들이 50대 초반에 20억~30억 원의 연봉을 받고 중국에 갔다가 몇 달 지나면 해고되는 것도 적잖게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성디스플레이·현대중공업·현대자동차 등 국내 기업들과 산학협력을 하면서 연구비와 고문료를 지원받고 제자들도 채용해주기 때문에 굳이 중국 기업에 의탁할 이유가 없다”고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강력한 반이민 정책으로 미국의 우수한 해외 인재들이 이탈하고 이를 중국이 파격적인 대우를 보장하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의 과학기술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김 명예교수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전까지만 해도 대전 대덕연구단지 연구원들이 1등 신랑감으로 꼽혔는데 지금은 의대 쏠림 현상으로 이공계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며 “기초연구 등 과학기술계가 푸대접을 받고 있는데 우수 인재들이 모여들리 만무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연구개발(R&D) 생태계의 잘못된 관행과 혁신 방향에 대해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난데없는 ‘연구비 카르텔’ 파동에서 벗어나 올해 R&D 예산 복원과 내년 큰 폭의 증액이 예정돼 있지만 지금도 일본과 달리 같은 계통의 연구를 3~5년간 하려면 중복 과제로 분류되는 등 연구 규제가 많다”며 “정부가 기초연구 지원에 더 신경을 쓰고 ‘3책 5공’이나 연구실 주 52시간제 같은 비현실적인 규제도 없애 연구자들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3책 5공 제도는 한 연구자가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국가 R&D 과제 수를 제한하는 제도다. 책임 연구자로 3개, 참여 연구자로는 최대 5개까지만 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
김 명예교수는 “대학에서 교원 임용은 말할 것도 없고 연구 과제도 매년 논문 위주로 평가하기 때문에 산학협력이 잘되기 힘든 구조”라며 “연구자들도 성과를 내야 하는 산학협력 연구보다는 정부 지원을 받아 ‘연구를 위한 연구’를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연구 현장에서 규제를 타파하고 논문 위주의 관행을 바꿔야 기술 패권 시대 국가 생존 기반을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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