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WMD 흔적을 시리아서 찾아야 하는 까닭은

2025-03-19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프랑스의 범죄학자 에드몽 로카르(1877~1966)가 남긴 말이다. 범죄 현장에 범인과 피해자, 범인과 물건, 물건과 물건 간 접촉으로 생긴 흔적들이 남기 마련이다. 이 흔적들을 쫓으면 사건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게 로카르의 주장이다.

꽁꽁 감춰진 북한 대량살상무기(WMD)의 흔적을 찾을 가능성이 열렸다. 시리아에서다. 시리아는 북한의 도움을 받아 화학무기를 생산하고, 핵·미사일을 개발했다. 하지만 시리아는 북한의 중동 거점이었다. 남북한을 뺀 191개 유엔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유일한 미수교국이기도 했다.

북한 지원 받았던 아사드 정부

화학무기·핵·미사일 비밀 생산

새 정부 수립, 한국과 수교 추진

사찰 통해 중요 단서 확보 가능

언감생심(焉敢生心) 같았던 상황이 뒤집혔다. 지난해 12월 8일(이하 현지시간) 시리아 반군 연합이 수도 다마스쿠스를 함락하면서다.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는 러시아로 망명했고,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시리아 해방 의회) 중심의 과도정부가 꾸려졌다. 정부는 시리아와 외교 관계를 맺는 안건을 지난 1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시리아와의 수교가 이뤄질 곧 예정이다.

HTS 과도정부는 지난달 8일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의 페르난도 아리아스 사무총장을 초청했다. OPCW는 화학무기금지협약(CWC)의 이행을 감독하는 국제기구다. 한국을 포함한 193개국이 CWC에 가입했으며, 북한은 불참했다. HTS 과도정부와 OPCW는 화학무기 폐기를 위한 협력을 확인했다.

북한, 시리아 반인도 범죄의 공범

사실 시리아는 이미 2013년 10월 14일 CWC와 OPCW에 참가했다. 앞서 2011년 3월 15일 시작한 내전에서 아사드 정부군은 화학무기로 반군 지역을 무차별 공격한 게 발단이었다. 2013년 9월 27일 미국·러시아·영국이 나서 시리아의 모든 화학무기를 폐기해야 한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채택했다. 국제적 압박에 못 견뎌 화학무기 폐기를 약속한 아사드 정부였다.

유엔 조사단이 2013년 10월부터 아사드 정부가 제출한 신고서를 검증했고, 2014년 6월까지 1300t 이상의 화학무기를 처리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아사드 정부군이 숨겨둔 화학무기를 사용한 사실이 포착됐다. 2017년 4월 4일 칸 세이쿤에 사린 가스 폭탄이 떨어져 90명 이상이 숨졌다. 2018년 4월 7일 두마에서 아사드 정부군의 염소가스 공격으로 40명 이상이 죽었다.

화학무기 사용은 국제법 위반이다. 시리아 어린이들이 화학무기 공격에 고통받는 모습이 전해져 전 세계의 분노를 불렀다. 아사드 정부의 반인도적 범죄 공범은 북한이었다.

아사드 정부는 1980년대부터 북한의 기술·물자 도움을 받아 화학무기를 생산했다. 미 국방정보국(DIA) 정보분석관 출신의 부르스 벡톨 텍사스주 앤젤로주립대 교수는 2018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시리아 화학무기는 사실상 북한산”이라고 말했다. 시리아의 매체인 자만 알 와슬에 따르면 북한은 시리아 콰르다하 산악 지역의 지하 화학무기 기지를 운영했다.

북한과 시리아의 공범 관계는 대를 이은 밀월 덕분이었다. 두 나라는 세습 독재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바샤르 알아사드의 아버지인 하페즈 알아사드는 1974년 9월 28일~10월 2일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과 정상회담을 열었다. 시리아 외교관 출신 망명자인 바삼바라반디는 지난해 12월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에서 “하페즈는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을 마치 신처럼 받드는 모습을 배우려고 북한과 접촉했다”고 말했다. 김정일은 2000년 6월 10일 하페즈가 사망하자 양국은 “훌륭한 관계에 기초한 특수한 관계”라면서 시리아에 고위급 대규모 조문단을 파견했다.

김정은과 하페즈의 아들 바샤르는 2017년에만 15차례나 편지를 주고받을 정도 끈끈한 사이였다. 내전이 한창 중이던 2015년 8월 31일 아사드 정부는 다마스쿠스에 김일성 공원을 세웠다. 북한군이 시리아 내전에 참전했다는 외신 보도가 계속 흘러나왔다.

WMD 흔적 사라지기 전에 손써야

시리아엔 북한의 화학무기뿐만 아니라 핵·미사일 흔적도 가득하다. 시리아는 사막에 몰래 원자로를 지었는데, 배후는 북한이었다. 현장엔 북한 기술자와 근로자가 있었고, 시리아 원자로의 모양은 북한 영변 것과 똑같았다. 결국 이스라엘이 2007년 9월 6일 폭격으로 이 원자로를 파괴했다.

시리아는 걸프 전쟁에서 다국적 편에 선 대가로 1991년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20억 달러를 받았다. 그중 5억 달러를 북한에 주고 스커드 미사일 150기를 수입했다. 미사일 부품을 북한에서 들여와 시리아에서 조립하는 방식이었다. 시리아엔 북한이 수교 선물로 건설해 준 방사포 공장도 있다. 북한 정부와 인민군의 위장 회사들이 무기와 군수품 조달을 위해 시리아 곳곳에서 활동했다.

이처럼 북한 WMD 흔적의 ‘노다지’가 시리아다. 진의림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원은 “시리아 내전이 끝난 뒤 북한이 한마디 말도 안 하는 것을 보면, 눈치를 살피고 있는 중이라 생각한다”며 “곧 북한-시리아 WMD 커넥션이 드러날까 걱정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외교안보 당국은 국제 사회와 협력해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찰·검증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를 통해 북한·시리아의 기술 협력과 인적 네트워크를 파악할 수 있다. 협상력을 좀 더 발휘하면 시리아의 핵·미사일 시설에 대해 접근할 가능성도 있다. HTS 과도정부가 정국을 가급적 빨리 안정시키려고 국제 협력에 목말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이 노력하면 북한 WMD에 대한 중요 단서들을 확보할 수 있다. 발뺌할 수 없는 반인도 범죄의 스모킹 건을 내밀면 북한을 비핵화 협상장으로 한 발짝 더 끌어올 수도 있다. 한국이 ‘WMD 비확산 모범국’이라는 이미지는 덤이다.

지난해 비상 계엄령 사태 이후 정부가 많이 위축됐다. 현안을 처리하기에 벅차 새로운 일을 벌이기도 부담스럽다. 그렇다 하더라도 천금의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는 건 직무유기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리아에서의 북한 WMD 흔적은 옅어지고, 결국 사라지기 때문이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