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가야 할 세제…보수 대 진보의 문제 아니다”

2024-09-23

정치 투쟁의 타깃이 돼버린 금융투자소득세

지난 토요일인 21일 저녁 서울역 앞 계단.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가 주최한 ‘3차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촉구 촛불집회’가 열렸다. 오후 6시30분으로 예정된 집회 시작 전부터 정의정 한투연 대표가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500명 참가한 주말 주식투자자 집회

“주식투자자들, 생각보다 똑똑합니다. 앞날을 내다볼 수 있는 예지력까지 가진 개인투자자 많습니다. 근데 민주당 의원들은 주식 한번 안 해본 사람이 대다수입니다. 그들이 판단 잘하겠습니까. 금투세, 반드시 폐지해야 합니다. 이재명세(稅) 금투세 반드시 폐지해야 합니다. 금투세 시행되는 순간, 우리나라 주식시장 골로 갑니다. 폭삭 망하는 겁니다.”

전국에서 모인 500명(경찰 추산)의 집회 참가자들은 ‘금투세 시기상조, 선진 환경이 먼저’ ‘부자 외국인 감세, 민주당 매국노냐?’ ‘진성준 어디 감히 국민 위 군림하냐’ ‘국민을 이기려고? 민주당 지옥 가자!’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예고된 집회시간이 되자 “주식 투자로 악전고투 끝에 유명을 달리한 분들에 대한 묵념”으로 집회가 시작됐다.

이용우 전 의원 “증시 충격? 서학개미도 양도차익에 과세”

최운열 전 의원 “피가 거꾸로 솟는다, 또 공포마케팅하나”

대통령에게 증시대책 누가 조언했나…유예보단 일단 실시를

집회 사회자는 2019년 10월 설립된 개인투자자 단체인 한투연이 거둔 성과를 소개하며 두 번의 공매도 금지 연장, 금투세 2년 유예, (주식 양도세가 부과되는) 대주주 기준 상향을 꼭 집어 거론했다. 금융 전문가 대부분이 반대했던 일련의 조치들이다. 주식투자자의 표심을 노린 윤석열 정부의 주요 증시 정책에 한투연이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셈이다. 곧바로 정의정 대표가 성명서를 낭독했다.

개인투자자, 금투세 ‘유예’도 반대

“금투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에서만 시행된다. 우리는 형식적으로 신흥국이지만 실질적으론 중국·인도네시아보다 못한 후진국이다. 금투세 시행은 플라이급 선수를 헤비급 선수와 싸우게 하는 위험한 행위다. 민주당이 금투세 강행에서 유예로 입장이 바뀌는 추세인데, 유예도 결사반대한다. 주식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게 불확실성인데 그게 금투세 유예다.”

한투연 성명서에는 “후진적 증시 환경에서 금투세를 시행하면 주가가 단기 폭락 후 장기 침체에 들어갈 것”이라는 등 금투세를 폐지해야 할 13가지 이유가 담겼다. 농어촌특별세와의 이중과세를 지적하는 항목 등 일부는 수긍할 만했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일방적이거나 논쟁적인 주장이다.

금투세는 이미 정치권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국민의힘은 정부와 함께 ‘금투세 폐지’를, 조국혁신당은 ‘금투세 시행’을 주장한다. 민주당은 전당대회 과정에서 이재명 대표가 증권거래세를 더 낮추는 조건으로 ‘금투세 기준 완화 후 시행’이라는 절충안을 들고나오면서 ‘금투세 2025년 시행’으로 가는 듯했으나 최근 다시 분위기가 바뀌었다. 진성준 정책위의장 등 ‘금투세 실시’ 입장과 이소영 의원 등 ‘금투세 유예’ 사이에서 고심 중인데, 24일 소속 의원들이 참여하는 끝장토론으로 당론이 결정될지 주목된다.

국민의힘은 지금의 금투세 논쟁을 ‘꽃놀이패’로 보고 있다. 개인투자자의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고 있어서다. 한투연은 “금투세 유예는 인공호흡기 장착에 불과하다”며 폐지만을 주장한다. 한투연 카페에는 국민의힘 인스타그램의 ‘금투세 10문10답’이 ‘필독’으로 표시돼 올라와 있다. 금투세가 시행되면 ▶세금 이점 사라져 투자자 이탈 가속화 ▶금투세 과세대상자는 개인투자자 상위 1%(14만 명)이지만 이들이 개인 보유 주식액의 53.1%를 차지할 정도로 시장 영향력이 커 시장 급락이 우려 ▶코리아 디스카운트 심화 ▶대만과 같은 정책 혼란과 시장 불안 초래 ▶급성장한 채권 시장 혼란 등이 우려된다는 내용이다. 불확실성 해소 위해 유예·보완보다 폐지가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담고 있다.

없던 세금이 생기는 것이니 개인투자자 입장에선 마뜩잖을 수 있다. 펀드매니저 출신의 50대 전업 투자가 김모 씨는 “세금을 내야 한다면 국내 증시에 투자할 유인이 줄어드는 건 사실”이라며 “개인들의 국장(국내 증시) 탈출 흐름이 강해질 수 있다”고 했다.

“기대수익률 높으면 세금이 문제 안 돼”

전문가들은 금투세가 현안으로 떠오른 현실 자체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카카오뱅크 대표를 지낸 금융전문가 이용우 전 민주당 의원은 “금투세라는 개별 세목 하나를 가지고 논쟁을 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대규모 세수 펑크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여야 모두 지속가능한 재정을 위해 전체 세제를 보면서 돈이 얼마나 더 필요하고 누가 부담해야 할지를 토론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증권사 출신이기도 한 이 전 의원은 금투세 실시로 인한 증시 충격 우려에 대해 “말이 안 된다. 서학개미는 이미 연 250만원 넘는 해외주식 양도차익의 22%(지방세 포함)를 세금으로 낸다”며 “기대수익률 높은 시장에는 추가비용을 내고도 간다. 세금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금투세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해 2023년 시행 예정이었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다시 여야가 치열한 논의 끝에 2년 더 유예해 2025년으로 시행 시기를 늦췄다. 법은 문재인 정부 작품이지만 그 이전의 보수정권 때부터 전문가들이 오랫동안 논의해온 산물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12월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금융투자소득 과세제도에 대한 연구’(홍범교·이상엽) 보고서에서 “자본이득과세가 지극히 일부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것이 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라며 “현재의 금융세제를 보다 단순하고 일관성 있게 개편하기 위해서는 모든 금융소득을 포괄하여 과세하는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법상 금융소득이 이자와 배당소득에만 국한돼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금투세, 형평성·효율성 높이는 세금

금투세가 왜 필요한지, 지금 금융세제는 뭐가 문제인지 보고서는 조목조목 짚었다. 금융상품에 따라 과세가 제각각이서 수평적 형평성이 결여됐다. 이자와 배당소득은 과세하지만 채권 매매차익, 소액주주의 상장주식 매매차익, 파생상품의 매매차익 같은 자본이득은 과세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득이 많을수록 세 부담이 늘어나야 한다는 수직적 형평성에도 위배된다. 금융상품별로 세금이 달라 납세자의 투자 결정을 왜곡해 조세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세제가 복잡해 세금을 내기 위해 납세자가 부담해야 하는 시간적·경제적 비용을 뜻하는 납세협력비용이 커진다.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을 지낸 전직 관료 세 명에게 금투세 입장을 들었다. 보수정부와 진보정부에서 각각 세제실장을 지낸 이들이었지만 대답은 같았다. “세제 차원에선 당연히 가야 할 길이다. 보수,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람은 금투세 시행과 함께 시장 충격을 줄이고 소득별 과세의 격차를 줄이는 조세의 중립성을 위해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주문했고, 다른 한 사람은 불가피하게 금투세를 시행하지 못하면 증권거래세를 되돌려 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이는 “증시 폭락 우려는 과도하다. 연말정산 인적공제에서 금융투자소득 제외 등 일부 보완하고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금투세의 설계자’로 불리는 최운열 전 민주당 의원은 지금의 금투세 논의에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토로했다. 그의 현직은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이지만, 그보다는 한국증권연구원장과 한국증권학회장, 한국금융학회장을 지내고 금투세 도입 역사를 잘 아는 전직 의원 입장에서 인터뷰에 임했다. “전산화와 실명제가 없었던 1970년대 과세 편의성 때문에 도입한 증권거래세의 모순을 제거하려는 그간의 노력이 (주가 하락이라는) ‘공포 마케팅’을 견뎌내지 못했다. 상품별 과세를 인별과세로 바꾸고 손실을 5년간 이월공제하는 금투세는 투자자 친화적이고 선진화된 제도다. 주식 매매차익 비과세는 말할 것도 없고, 금투세의 주식 매매차익 5000만원 공제도 근로소득자에 대한 차별일 수 있다. 몇 년간의 치열한 논의의 결과로 나온 금투세를 심층적인 검토도 없이 한두 마디 말로 바꾸는 게 과연 옳은가.”

한투연 ‘성과’에 할 말 잃은 경제관료들

한투연이 성과로 자랑하는 공매도 금지, 금투세 폐지, 대주주 기준 상향 등이 발표될 때마다 경제부처 관료들은 할 말을 잃었다. 대체 누가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물어도 “우리도 모른다”는 답만 돌아왔다. 용산 대통령실의 경제라인이 아니라 정무라인의 결정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확인되진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경제 관료의 입을 닫게 만든 이런 정책을 조언한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

정반대 입장의 한투연과 최운열 전 의원의 견해가 일치하는 대목 하나가 있다. 금투세 유예는 불확실성만 키운다는 거다. 보완 후 시행이든, 시행 후 보완이든, 일단 예정대로 실시하는 게 낫다고 본다. 이용우 전 의원은 “향후 5년의 손실 이월공제를 과거 5년의 손실에도 소급 적용할 수 있게 보완해 개인투자자의 수용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금투세 유예는 당장의 어려움을 피할 수는 있지만 이제까지 겪어온 혼선과 논란을 다시 치러야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비용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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