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값에 판매된 일본산 시설하우스용 필름을 둘러싼 분쟁이 지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내구성이 뛰어나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업체의 말에 농가들이 국산의 2∼3배에 달하는 가격을 지불하고 구매했지만 정작 품질보증기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찢어지거나 비가 새는 등 문제가 발생해서다. 피해 농가들은 판매업체나 수입업체 등이 제대로 보상에 나서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보증기간 한참 남았는데 찢어지고 비 새고=대구 북구에서 조경과 정원 식물을 판매하는 이용희씨(43)는 “3년 전 661㎡(200평) 시설하우스 2동을 새로 지으면서 자재업체의 추천을 받아 내구성이 좋다는 일본산 폴리올레핀(PO) 필름을 선택했다”며 “필름값 600만원을 포함해 총 9000만원이나 투자했는데, 지난해부터 시설하우스 안에 비가 새기 시작했다”고 토로했다.
충남 서산시 고북면에서 유칼립투스를 재배하는 임대규씨(67)도 최근 비닐하우스 지붕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필름이 찢어져 골조 파이프가 외부로 고스란히 드러난 것을 발견해서다. 찢어진 비닐 사이로 빗물이 새어 들어와 비닐 안쪽에 있는 보온커튼에 곰팡이가 피는 2차 피해까지 발생했다.
찢어진 필름은 일본제 ‘’. 임씨는 내구성이 뛰어나고 빛 투과율이 좋다는 업체의 말을 믿고 일반 필름보다 3배나 비싼 가격임에도 이 제품을 선택했다. 일반 필름에는 없는 품질보증기간(5년)까지 있는 것도 제품이 마음에 든 이유다.
그는 2020년 6월 396㎡(120평) 규모 비닐하우스 5동을 이 필름으로 전면 교체했고, 제품의 품질보증기한은 5년 후인 2025년 6월까지다.
임씨는 “이 필름은 통상적으로 7∼8년, 길게는 10년까지도 쓰는 제품인데 4년5개월여 만에 찢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라 할 말을 잃었다”며 “올해 이상기후로 유칼립투스 작황도 좋지 않아 소득이 예년의 반토막인데 필름까지 속을 썩이니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수입·판매 업체는 책임 회피=문제는 판매 때 제품의 보증기간이 5년이라고 홍보했던 수입업체와 해당 필름의 사용을 추천했던 자재업체의 입장이 문제가 발생하자 돌변했다는 점이다.
이씨는 “올해부턴 본격적으로 필름이 찢어지고 너덜거리기 시작해 사후관리(AS)를 요구했지만 자재업체에서는 수입업체에 책임을 미루며 필름 교체비용 1200만원에 대한 새로운 견적서를 보내왔다”고 설명했다. 이 1200만원에는 새 필름 가격 450만원이 포함돼 있다.
이씨는 “답답한 마음에 수입·판매 업체에도 문의했지만 새 필름을 같은 업체에서 구입한다는 조건으로 보증기간 5년 중 AS 신청 시까지의 기간을 제외한 남은 기간에 대한 책임(28%)만 지겠다고 했다”며 “보증기간 5년에, 10년까지도 쓴다던 필름이 3년 만에 너덜거리는데 70% 이상의 비용을 사용자에게 전가하는 것이 정당하냐”며 울분을 토했다.
임씨의 상황도 비슷했다. 그는 피해 사실을 발견한 즉시 업체에 알리고 품질보증기한이 남아 있는 만큼 동일한 제품으로 재시공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 업체는 “‘’은 안되고 일반 필름으로 교체해줄 수 있으며 나중에 ‘ ’을 다시 구입하면 그때 가격을 할인해주겠다”고 답변했다.
◆유사한 문제 반복…거래 관행 개선해야=일본산 필름 피해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도 문제다. 이번에 문제가 된 필름은 지난해 말 경기 오산농협 오이작목반의 10여농가로부터도 불량 피해 신고를 받은 적이 있다(본지 2023년 12월1일자 5면 보도).
유사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지만 업체 측은 보상 문제는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농가마다 사용 환경이 다르고 시설하우스 시공 과정이나 작물 재배에 사용한 약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업체 관계자는 “설치 초기에 문제가 발생하면 필름 불량으로 인정하고 제조사가 책임을 지지만, 3∼4년 사용한 후 문제가 생겼다면 여러 원인을 고려해봐야 한다”며 “PO필름은 황이나 염소에 약하고, 파이프에 문제가 있거나 농가가 시설하우스 안에 열을 너무 가둔 게 원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건 이들 제품뿐이 아니다. 다수의 농자재 업체들이 보증기간 안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다양한 핑계를 대며 보상에 소극적인 상황이다. 농가가 실제로 법적인 조치를 취하기 쉽지 않고, 애초에 제대로 된 계약서를 쓰고 시공을 맡기기보다 지역에서 알음알음으로 지인을 통해 거래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씨 역시 농자재 업체로부터 “법적 문제를 삼아봐야 원래 이런 문제는 농가가 불리하니 그냥 포기하라” “유사 사건에서 업체는 책임이 없다는 판례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농업인 무료 법률구조사업을 하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의 한 관계자는 “농민들이 실제로 소송을 제기하기까지의 문턱이 높다는 걸 이용해 분쟁 발생 때 업체가 허위 설명을 하는 경우도 많다”며 “농자재를 구입하거나 시공 계약을 체결할 땐 계약의 내용과 책임 범위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전했다.
대구=김다정, 서산=서륜 기자 kimdj@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