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태계의 보고’ 남태평양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제도 인근 해역이 최근 마약 밀매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에콰도르 국방부와 경찰은 7일(현지시간) 최근 일주일 동안 갈라파고스 제도 주변 해상에서 마약 밀매 혐의로 25명을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에콰도르군은 “지난달 29일 산크리스토발섬에서 북동쪽으로 175해리(약 324㎞) 떨어진 지점에 있던 배에서 2.9t 상당의 통제 대상 물질(SCSF)을 발견했다”며 “SCSF는 71개가량의 소포 형태”라고 전했다.
에콰도르 경찰은 지난 4일에도 산크리스토발섬 인근 바다를 지나는 선박에서 마약류 31포대를 싣고 항해하던 세명을 적발해 해군 기지로 연행했다.
19개의 화산섬으로 이뤄진 갈라파고스 제도는 미주 대륙과 약 1000km 떨어져 있다. 갈라파고스 땅거북, 갈라파고스 펭귄, 갈라파고스 육지 이구아나 등 독자적인 진화를 이룬 고유종이 많아 생물학계 보고로 여겨진다. 영국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이곳에서 진화론을 연구했으며, 1978년 유네스코는 이곳의 생태학적 가치를 인정해 갈라파고스제도를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했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이제 마약류 코카인 밀수 경유지가 됐다. 밀수업자들은 세계적인 코카잎 생산지인 콜롬비아나 페루에서 전달받은 코카인을 작은 어선에 실어 멕시코나 미국으로 운송하고 있다. 수천km를 운항하기 위해 카르텔은 갈라파고스 제도 해역 인근에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주유소는 마약을 실은 배가 기름을 실은 다른 배로부터 연료를 조달받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당초 마약 카르텔이 에콰도르 본토를 코카인 유통 거점으로 활용하다가 강력해진 당국의 단속을 피해 갈라파고스 해역으로 거점을 옮겼다고 전했다.
밀수는 2020년대 들어 급증했다. 에콰도르 해군은 2023년 갈라파고스 주변에서 약 25t의 코카인을 압수했는데, 이는 전년보다 150% 증가한 수치다. 2019년 해군이 압수한 코카인 양은 1t이었다.
몇몇 에콰도르 어부들은 밀수업자들과 동업하고 있다. 해양도시 만타 출신의 한 어부는 과거 한 달 수입이 300달러(약 42만원)뿐이라고 CNN에 말했다. 하지만 마약을 운반하면 1회당 수천~수만 달러를 벌러들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업 종사자에게 지급되는 정부의 연료 보조금을 악용해 ‘밀수 선박 주유소’ 사업에 뛰어드는 어부도 있다.
밀수업이 판을 치면서 마약은 갈라파고스 제도 내에도 흘러들어갔다. 3000여명의 주민이 있는 이사벨라섬에서도 최근 마약 중독자가 속속이 발견됐다고 WP는 전했다. 이곳 해역에서는 마약류뿐만 아니라 권총 등 불법 무기도 유통되고 있다.
에콰도르 정부는 갈라파고스 제도 해역에 경비함정을 투입하고, 미국 해안경비대와 합동 단속 훈련을 시행하는 등 치안 강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모든 마약 밀매선을 잡아내지 못하고 있다.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지난달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을 “초국가적 싸움”이라고 부르며 미국에 병력 지원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