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노벨과학상이 기대되는 이유

2024-10-23

생리의학상 선정된 마이크로RNA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 기여도 높아

화학상 받는 로제타폴드 개발 주역

백민경 서울대 교수도 큰 주목 받아

해마다 10월이 되면 라디오 방송작가 전화 받기가 겁이 나곤 했다. 노벨상에 대한 해설 방송에 출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을 것 같기 때문이다. 과학자라고 해서 여러 노벨상 내용을 어떻게 잘 알고 있겠는가.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해볼 만했다. 노벨상위원회가 제공하는 보도자료가 기가 막히게 잘 되어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방송작가의 요구가 만만치가 않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세요.” 불가능하다. 세상에 그런 노벨상 수상 연구는 없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만한 것에 누가 노벨상을 주겠는가. 그런데 궁금하다. 정말로 노벨상 받은 연구를 꼭 이해하고 싶나. 그냥 “아, 이런 게 노벨상을 받았구나!” 정도 하면 안 되는 것인가.

두 번째 질문은 살짝 불쾌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언제 노벨상을 받게 될까요?” 2000년에 받은 노벨평화상은 잊은 것처럼 묻는다. 우리나라는 이미 노벨상 보유국이라고 이야기하면 “아니, 노벨 과학상 말입니다”라고 되묻는다. “앞으로 10년간은 받지 못할 것입니다”가 2015년까지의 내 대답이었다. (그다음에는 노벨상 관련 방송에 나가지 않았다.)

“아니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십니까? 우리나라 과학이 그렇게 뒤처졌습니까?”라고 따지는 아나운서에게 분명히 이야기하곤 했다. “아닙니다. 우리나라 과학은 매우 발전했습니다. 선두에 있는 연구자들이 모든 과학 분야에 있고 연구비도 사실 많은 나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못해 본 게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벨상을 타지 못하는 겁니다.”

우리가 해보지 못한 것은 바로 실패였다. 2017년 노벨화학상은 초저온전자현미경을 연구한 세 학자에게 주어졌다. 당시 그들의 나이는 77, 75, 72세였다. 이들은 젊은 나이에 연구에 성공한 후 용케 죽지 않고 버텨서 노벨상을 받은 게 아니었다. 그들은 1971년에 이미 연구를 시작했다. 중간에 작은 성과를 이루기는 했지만 그들이 원하는 결과는 내놓지 못하고 끊임없는 실패를 경험해야 했다. 40년 넘게 실패를 거듭했지만 그들은 대학에서 쫓겨나지도 않았고 연구비가 끊기지도 않았다. 실패를 거듭할 기회를 가졌던 것이다.

노벨상이 뭔가를 조금 개선했다고 주는 게 아니지 않은가. 노벨상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연구자들에게 주어진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는 것은 실패를 거듭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실패할 틈을 주지 못했다. 후진국에서 선진국이 되려니 남의 것을 빨리 배워와서 실행하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다. 잘한 정책이다. 덕분에 우리는 선진국이 되었다. 하지만 노벨상을 받을 수는 없었다.

지난 정부 때 많이 변했다. 우리도 이제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가 되었고 실패를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2022년 10월 21일 누리호 1차 발사가 실패했을 때를 상기해 보시라.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독자 발사체 발사에 실패해 본 일곱 번째 나라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이제 우리도 노벨 과학상을 받을 준비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올해 2024년은 우리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노벨생리의학상은 마이크로RNA 연구에 주어졌다. 수상자 세 명 못지않은, 아니 오히려 더 중요한 기여를 한 한국 과학자가 있다. 서울대의 김빛내리 교수다. 한국 사람이 노벨 과학상을 받게 된다면 제1순위라고 꼽히던 분이다. 뿐만 아니다. 노벨화학상은 단백질의 3차 구조를 밝히는 인공지능 기술에 주어졌다. 그런데 이번 노벨화학상의 2분의 1을 수상하게 된 로제타폴드 개발의 주역이며 논문의 제1 저자였던 이는 백민경 서울대 교수였다.

2022년 10월 누리호 1차 발사에 실패마저 감동한 이들에게는 2023년 6월의 2차 발사 성공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김빛내리 교수와 백민경 교수에게 노벨상이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감동한 이들에게는 곧 생길 한국 노벨 과학상 수상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한강 작가와 더불어 김빛내리, 백민경 교수 세 분을 기억하자. 대한민국 여성 만세!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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