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노믹스’의 귀환으로 한국 산업계가 긴장과 우려에 휩싸였지만, 조용히 웃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원자력‧석유화학산업이다.
이전 집권기(2017년 1월~2021년 1월)보다 더 강력하게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바이든 정부의 주요 경제 정책에 비판적이다. 이 때문에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과학법(칩스법) 등을 통해 바이든 정부의 지원을 받고 대미 투자를 늘린 한국 반도체‧전기차‧배터리‧태양광 기업들은 우려가 크다.
트럼프 당선인은 특히 탈탄소를 목표로 한 ‘그린 뉴딜’에 반대 입장을 드러내 왔다. 기후 위기에 대해서도 트럼프는 “역대 최악의 사기 중 하나”라고 표현하며 재생에너지 확대에 회의적이다. 반면 석유‧천연가스‧석탄 등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관련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여러 번 밝혔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아직 “비싸고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하며 값싼 원료로 높은 효율을 거둘 수 있는 화석 연료나 원자력이 효율적이라는 입장이다.
트럼프의 이번 선거 공약을 담은 공약패키지인 아젠다47에는 기존 원전 이용 확대, 선진 원자로 개발 등 내용이 담겨있다. 원전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 원전 관련 규제 완화 기대감이 큰 이유다. 특히 차세대 전력원으로 주목받고 있는 ‘미니 원전’인 소형모듈원전(SMR) 산업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SMR은 대형 원전보다 크기가 작고 필요한 전력에 맞게 소규모로 제작해 블록 연결 방식으로 설치할 수 있어 공간 사용이나 효율성이 뛰어나다. 냉각수로 물을 사용하지 않아 운영 비용도 아낄 수 있다. 이 때문에 구글‧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 등은 SMR에 투자 중이다. 트럼프는 SMR을 ‘청정 에너지원’이라고 칭하며 “원자력규제위원회(NRC)를 통해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의 현대화를 지원하고 연방 정부 차원에서 SMR에 대규모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원전 기술 선진국이지만, 원전 공급망은 취약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세계적인 원전 공급망 구축 기술을 보유한 한국과 협력이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달 5일 한국 산업부는 미국 에너지부와 ‘한·미 원자력 수출 및 협력 원칙’에 관한 기관 간 약정(MOU) 맺기도 했다.
석유화학업계에도 ‘트럼프 2기’에 대한 기대감이 맴돈다. 9일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집권 1기 때처럼 기후변화 완화를 위한 국제 협약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후보 시절 여러 번 연방 토지 내 시추 허가 확대 등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좀처럼 침체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석유화학은 석유를 가공할 때 발생하는 물질인 나프타 등을 활용해 플라스틱 같은 합성 원료를 만드는 산업이다. 세계적인 탈탄소 기조에 수요가 줄고 있는 데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서 정제마진(원유와 원유로 만든 제품 간 가격 차이)이 감소해 수익성도 떨어지고 있다. 예컨대 애플이나 테슬라 등 글로벌 기업 433곳(7월 말 기준)이 가입한 RE100은 협력업체에서 재생에너지로 만든 제품만 납품받겠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트럼프의 친 화석연료 기조에 석유화학제품 공급망의 안정성이 커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트럼프는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을 여러 번 언급하며 석유와 석탄, 가스 등 화석연료 활성화를 강조했다. 이와 함께 액화천연가스(LNG)와 액화석유가스(LPG) 규제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국제 유가가 하락하고 나프타 등을 활용한 석유제품의 원가 경쟁력 확보도 수월해질 전망이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산 화학제품의 원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나프타 무세화 유지 등 국내 기업의 생산비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세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