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고향은 폴란드지만, 뿌리는 대한민국입니다. 한국과 폴란드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개점한 우리은행 폴란드지점의 초대 부지점장인 마테우슈 오르딕(47)의 얘기다. 그는 금융 전문 변호사이자 준법감시인으로서 백오피스를 총괄하며 내부통제, 자금세탁방지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다.
오르딕은 6일 중앙일보에 “어릴 때부터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며 “폴란드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은행에 근무하게 돼 뜻깊다”고 말했다.
오르딕의 외고조부는 대한제국 시절 경무청 경무관으로 근무했던 김병준씨다. 오르딕이 가보로 간직해 온 ‘칙명(대한제국 시절 임명장)’에 따르면 김씨는 고종 황제가 즉위한 해인 1897년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의 자리까지 올랐다. 김씨는 일제강점기 전 한국을 떠나 러시아로 이주했는데, 그 후손들이 유럽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그 중 한명이 광복 80주년인 올해 대한민국의 금융회사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독립신문에서도 오르딕의 조상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1897년 12월30일자에는 “서서 경무관 김병준씨는 외국학문에 능통한 인물로, 경찰업무와 행정에서 매우 신중하고 청렴하며, 공정하고 정직한 태도로 업무를 수행했다”며 “그의 노력 덕분에 지역 주민들이 모두 안심하며 생업에 종사할 수 있었고, 거리마다 그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졌다”고 적혀있다. 비석에는 “공(김병준)이 왜 이제야 왔는가?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고 도둑질이 사라지며, 밤에 문을 잠그지 않아도 되고, 길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 낮과 밤으로 순찰하자 도둑무리가 물러갔다”는 내용이 쓰여있었다고도 기록돼 있다.

앞서 우리은행은 국내은행 최초로 유럽지역의 전략적 거점 확대를 위해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지점을 개설했다. 폴란드는 동ㆍ서유럽과 모두 맞닿아 있어 유럽의 생산기지이자 물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바르샤바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국내 대표 방산기업들을 비롯해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기아차 등 다수 기업 현지 법인들이 진출해있다.

우리은행 폴란드지점 관계자는 “우리은행이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해 폴란드 지점을 설립하며 채용한 인재가 알고 보니 100여 년 전 대한민국 경찰 간부의 후손이었다는 역사적 연결고리를 발견하게 되어 매우 감동적”이라며 “올해 광복 80주년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면서, 유럽에서 한국 금융의 위상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