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최승희 명창과 판소리 악보

2025-05-13

2001년 봄이었다. 판소리 애호가라면 놓치기 아쉬운 판소리 무대가 열렸다. 최승희 명창과 제자들이 함께 선 무대. 스승과 제자의 발표회는 낯설지 않은 공연 형태였으나 이 무대가 특별했던 이유가 있었다. 최승희는 이날 자신이 이어온 정정렬제 소리에 의미 있는 작업을 더했다. 정정렬제 춘향가 악보집 발간이었다. 판소리 한바탕을 오선지에 옮겨 악보로 만들어낸 명창은 그가 처음이었다. 판소리 악보화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엇갈리고 미학적 본질이나 음악적 특질에 비추어 악보화가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도 없지 않았으나 그가 찾아낸 결실은 단연 돋보였다.

근대 5명창으로 꼽히는 정정렬은 창극 발전을 주도했던 소리꾼이다. 일제 치하에서 활동했던 명창 대부분이 판소리 발전에 기여했지만 정정렬의 활동은 특히 빼어났다. ‘30년 앞을 내다보고 소리를 한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그는 자신의 독특한 소리를 꾸준히 개발하고 실험하면서 귀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고도의 음악적 기교를 구사하고 선율과 장단이 까다로운 소리를 받겠다고 나서는 소리꾼은 많지 않았다. 그 소리를 이어낸 소리꾼이 최승희다.

최승희는 스승 김여란으로부터 정정렬제 춘향가를 받았다. 정정렬제 춘향가는 서편제 소리의 영역이지만 특별한 기교와 부침새를 구사하는 특성으로 독창성을 인정받는 소리다. 덕분에 20세기 전반에 유행하면서 춘향가 전승에 영향을 끼친 소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소리에 비해 계승의 맥이 굵지 못한 정정렬제 소리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일은 최승희에게 무겁고도 귀한 과제였다. 다행히 뜻이 맞는 제자가 그의 소리를 사설로 정리하고 악보로 만드는 일에 나서주었다. 꼬박 4년 동안 고된 분투가 이어졌다. 두 번의 위암 수술로 일상이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그는 ‘제자들이 조금은 쉽게 판소리를 익힐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 판소리 대중화니 뭐니 하여 지나치게 거창하게 평가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러나 판소리 악보화야말로 일반인들이 판소리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라는 확신을 거두지 않았다. 실제로 그가 만든 춘향가 악보는 젊은 제자들에게 더없이 좋은 교재가 됐다. ‘현대의 음악적 환경으로 보자면 판소리 악보화 작업은 더 적극적이고 새롭게 모색될 필요가 있다’는 판소리 연구자들의 조언도 그에게 큰 힘이 되었을 터다.

열여덟 살 늦은 나이로 소리길에 들어서 남다른 열정으로 자신의 소리를 지키고 이어온 최승희 명창이 세상을 떠났다. 편식 심한 소리판 속에서 외롭게 정정렬제를 지켜온 명창. 여든 아홉 해 그의 생애를 들여다보니 판소리 대중화를 향한 열정과 의지가 빛난다. /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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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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