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저널TV 지상중계] 인문톡쇼 6화: 탈

2025-08-01

출연: 전호태, 최미선

역사학자 전호태 울산대학교 명예교수와 인문학 운동가 최미선 한약사가 만나 매달 한 차례씩 깊이 있는 지식을 재미있고 유쾌하게 풀어내는 시간을 가집니다. 울산저널TV에서 영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인문톡쇼는 사전 제작으로 진행합니다.

최미선(이하 “최”): 안녕하세요. 다양한 주제의 역사와 인문 지식을 재미있고 유쾌하게 풀어가는 인문톡 시간. 저는 최미선입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전호태(이하 “전”): 예, 전호태입니다. 안녕하세요.

최: 오늘은 여섯 번째 시간인데요.

전: 아, 벌써요?

최: 네. 탈에 관한 얘기를 좀 해 볼까 합니다. 탈. 가면. 이 가면이 선사시대부터 등장했다고 하는데 맞는 말인가요?

죽은 자의 얼굴에 씌웠던 데스마스크가 탈의 기원

전: 대개 청동기 시대 정도가 되면, 데스마스크(death mask)라고 해서 죽은 사람을 묻을 때 황금으로 죽은 자의 가면을 만들어서 씌워놓은 사례들이 보여요. 데스마스크의 기원이 이거구나, 라고 하는데, 마스크, 탈의 기원이기도 하죠.

최: 탈 하면 여러 가지 의미로도 쓰이잖아요. 자신을 가리는 것, 또는 자신의 무언가를 더 강화하기 위해서 무엇을 드러내는 것. 탈이 상징하는 의미가 뭘까요?

신과 맨얼굴로 대면해서는 안 되었으므로 가면을 썼다

전: 탈의 기본 기능은 자기의 정체를 숨기는 거잖아요? 왜 정체를 숨기냐, 관련해서는 기독교 성경에 신의 얼굴을 본 나는 죽을 것이다, 그러면서 막 두려워하는 부분이 나와요. 다른 인류학적 보고서에서도 보면, 신과 대면하는 제의 중에는 가면을 써요. 신에게 자기의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왜냐하면 신과 대면하면 죽는다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있었다는 얘기고, 동시에 신은 삶을 허용하기도 하지만 죽음으로써 삶을 빼앗아 가기도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나를 숨기는 것이 가장 유리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 같아요.

최: 그리스 신화에도 제우스를 직접 본 세멜레라는 여인이 불에 타 죽어버리거든요.

전: 직접 봤구나.

최: 그렇죠. 디오니소스의 엄마이기도 한 세멜레라는 여인이 비슷한 맥락인 것 같습니다. 가면을 썼더라면 안 죽을 수도 있었겠네요, 세멜레가.

전: 그렇죠.

전쟁터에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가면을 썼다

최: 또 가면은 전쟁터에서 자기를 보호하는 수단으로도 많이 썼어요.

전: 중세 일본의 전국 시대까지도. 사무라이 중에서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지금도 남아 있어요, 유물로. 박물관에 가면 있습니다.

최: 경주박물관에도 전쟁터에서 썼던 가면을 본 기억이 있거든요.

전: 아, 그래요?

최: 교수님하고 같이.

전: 그 가면들은 실제 전쟁과 관련한 용도로 썼는지 정확히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가면은 보편적으로 많이 썼어요.

최: 가면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으로 탈춤 할 때 그 탈이 생각이 나거든요. 탈춤의 기원이라든지, 아니면 탈을 쓰게 된 계기라든지, 어떤 연유가 있을까요? 밝혀진 게?

한국의 탈춤은 사회의 부조리, 가진 자들의 위선, 지식인들의 위선을 고발할 때 활용되었다

전: 그 기원은 우리 쪽에서 정확히 나오지는 않는데, 고려시대 이래 탈춤이 진행된 거는 일반적으로 확인되고 있고, 중부 지방부터 부산 동래까지도 탈춤이 곳곳에 남아 있어요. 주로 현대인에게 알려진 탈춤의 내용은 한 해 한 번 정도의 축제 때 그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더 가진 자들의 위선이라든가 이런 것들, 지식이 있는 사람들의 위선 같은 것들을 고발하면서 피지배자들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하는, 그런 제한된 해방의 시간을 가능하게 한 것이 탈춤이라고 말하고. 노골적으로 비판적인 언어는 잘 안 쓰지만, 풍자나 웃기는 이야기로 탈춤의 용도가 사회적으로 공유됐던 그런 건 있죠.

최: 자기 맨얼굴을 드러내면서 얘기는 못 했지만.

전: 그런 경우도 마찬가지죠. 지금 전 세계에 있는 페스티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최: 가면, 탈.

전: 그렇죠.

현대인에게 가면은 페르소나

최: 저는 가면 하면, 현대인에게 가면은 페르소나라고 생각하거든요. 모두 다 가면을 하나씩 쓰고 살잖나요?

전: 하나만 아니죠.

최: 여러 가지를 써야 하는데. 그 가면에 대해서 깊이 있게 탐구했던 작품 중의 하나가 일본 작품,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라는 작품이 생각이 납니다.

전: 설명 좀.

최: 요조라는 주인공이 나오는데 대인관계를 굉장히 어려워해요. 그런데 좋은 가면을 하나 발견을 해요. 그게 뭐냐 하면 익살이라는 가면이거든요? 사람을 만나고 대할 때 익살이라는 가면을 써요.

전: 익살이라는 자기의,

최: 희극화 된 캐릭터를,

전: 그런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기를 감춘다?

최: 그렇죠. 그런데 문제가 뭐였냐면, 요조는 익살이라는 가면밖에 쓸 수가 없었어요.

전: 가면, 하나밖에 없네.

최: 예. 여러 가면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하는데. 위험이 뭐냐 하면, 이 가면이 벗겨졌을 때 자기가 온전히 드러나잖아요. 감당을 못하는 거죠, 가면이 벗겨졌을 때.

전: 이겨낼 수가 없는 거구나.

한 가지 가면도 안 되고, 가면에 먹혀서도 안 된다

최: 그렇죠. 파멸해 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인데요. 이렇듯 현대인에게는 가면이라는 또는 페르소나라는 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건데, 다양한 페르소나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하는. 이 복잡다단한 세상에서는 더욱 그래야 하는 것 같아요.

전: 가면으로 인해서 자기 정체성을 잃는 경우도 있어요. 조금 전에 말씀하신 그런 사례와 달리 아예 자기 정체성이 바뀌어 버리는 거예요.

최: 가면으로 인해서 본질이 바뀌어 버리는.

전: 할리우드 영화 중에 <마스크>라는 게 있거든요. 기억나실 거예요. <마스크>에 보면, 우연히 얻게 된 마스크를 쓰니까 그 마스크에 깃들어 있는 것이 로키라는 스칸디나비아 쪽 신화의 신이에요. 이 로키는 말썽꾸러기 신이거든요. 부정적인 활동들을 많이 하는. 주인공이 그 마스크를 쓰니까 자기가 아니라 로키가 되는 거예요. 마지막에는 그 가면을 벗어 팽개쳐서 자신의 정체성을 간신히 되찾는 그런 이야기도 있어요. 그러니까 가면이 가지는 위험성이라는 것이 거기서 드러나는 거죠.

최: 자기 본질을 적절하게 드러낼 수 있는 가면은 좋은 가면으로서 역할을 하지만, 본질을 가리는 위선으로서의 가면은 해악을 끼칠 수도 있겠네요.

전: 그렇죠. 그런 면도 있는 거죠.

80년대 대학의 탈춤은 민주화 운동의 수단 중 하나였다

최: 교수님은 80년대 학교에 다니셨잖아요?

전: 그렇죠.

최: 80년대 선배 학생들 생각하면 저는 봉산탈춤이 생각나거든요.

전: 우리 탈춤반이 있었습니다.

최: 저희도 학교 들어가자마자 탈춤 하는 선배들이 학교에 운동을 주도하고 이랬던 기억이 나는데, 선생님 혹시 거기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까?

전: 저는 탈춤반에 들어가지 않았었는데 탈춤반 친구들은 자기가 상당히 위험한 상황으로 간다라는 그런 느낌을 저에게 토로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때는 다양한 형태의 민주화 운동이 진행됐는데 주로 학생들 주도로, 그중에 매우 중요한 그룹 중의 하나가 탈춤반이었어요. 탈춤반에 들어가는 것이 탈춤으로 놀이하는 것인데, 당시에는 그것이 반정부적이고 반체제적인, 혹은 독재에 대한 저항, 그런 이미지를 자아내서 그런 면에서는 역시 우리의 전통적인 하회탈춤이라든가 여러 가지 탈춤, 오광대놀이 같은 그런 탈춤의 연속선상에서 탈놀이가 진행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때만 해도.

최: 그때 그 정신을,

전: 이은 거죠. 그런 면에서는.

최: 생각해 보면, 대학에 들어가서 탈춤을 보기 전까지 저는 탈춤을 제대로 본 기억이 없었거든요. 70년대 80년대를 기억을 해 보면 우리의 고유한 것들이 낙후된 것, 좋지 않은 것으로 폄하되던 시기였거든요. 그래서 대학 들어갔을 때 탈춤이 광장에서 실현되는 걸 보고 저는 굉장히 충격과 경의를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강릉의 가면놀이도 평등한 세상을 위한 중간 매개체

전: 저는 고향이 강릉인데, 강릉에서도 유명한 ‘관노 가면 놀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것도 탈놀이의 기본적인 성격을 그대로 다 가지고 있어요. 탈춤반에 들어가서 탈놀이를 연습하다 보면 저절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지배자 피지배자, 독재자와 억압받는 민중의 관계에서 그것을 정상적인 상태, 평등한 상태로 돌려놓는 중간의 매개체로서의 탈놀이라는 것이 상당히 의미를 갖는다, 그런 생각을 탈놀이를 연습하는 학생들 본인이 가지게 되는 거예요. 그런 기능이 있었죠.

최: 요즘은 디지털 가면이라는 말을 많이 쓰거든요. 디지털상에서 가면을 쓰는 거죠. 행복한 척, 자유인인 척, 있는 자인 척.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디지털 세상의 가면은 현실과 결국 똑같다

전: 저는 디지털 가면이라는 것이 특별한 거라고 생각이 안 되는 게, 우리가 오프라인 공간에서, 아날로그적 공간에서 살아가는 과정에 겪는 온갖 문제들이 지금은 디지털 공간으로 옮겨가고 있거든요? 현실 세계에서 살면서 우리가 쓰게 되는 가면. 중국의 사천성에는 변검이라는 놀이가 있는데, 손을 쓱 하면은 얼굴이 바뀌고. 아마 본 분이 있을 거예요. 한 20번 바뀌더라고요? 그런 것처럼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탈을 1개를 쓰고 2개도 쓰고 3개도 쓰고 그렇게 되는데, 결국은 그것이 디지털 공간으로 간 거예요.

그러니까 디지털 공간에서 진실만이 오간다고 상정하기는 사실 어려운 거고. 그런 면에서 디지털 공간에서 또 하나의 인간 세상이 펼쳐질 때 당연히 디지털 가면을 쓴 사람이 수없이 나타날 거고. 거기에 현혹돼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고통도 받고 기쁨도 느끼고 그런 일은 변함없이 계속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최: 오프라인 세상이 온라인에서 펼쳐지는 거네요, 또 다른 양상으로. 교수님, 하나의 탈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래서 지금 써야만 한다면 혹시 쓰고 싶은 탈이 있으신가요?

전: 글쎄요. 저는 탈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하거든요.

최: 별 탈 없이?

전: 별 탈 없이. 저는 사실 위선적인 부분에 대한 생래적인 거부감이 있어서. 심지어 어, 오랜만이야, 밥 한번 먹지, 이런 말도 저는 안 해요. 왜냐하면, 저는 그 말을 하면 꼭 지키거든요.

최: 인사말인데?

전: 네. 저는 그런 인사말 자체를 신뢰하지 않아요. 교직에 있을 때, 대학에 있을 때, 선배 교수 한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한 번씩 어, 우리 밥 한번 먹어야지. 그래서 저 사람은 언제 진짜로 밥을 먹을까? 그런 얘기를 한 지 5년쯤 지나서 은퇴하시고 좀 심심하니까 내한테 전화를 했더라고요. 밥 한번 먹지. 그래서 그때 한 번 밥을 먹었는데, 그런 식으로 저는 허튼 말은 굉장히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모르죠.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성실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나? 엄격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나? 뭐 이런 식으로 볼 수는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사는 게 원칙입니다.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 탈이 없는 모습으로 살고 싶으시다, 이런 말씀이신 거죠?

전: 그런 거죠.

최: 그럼 오늘은 저만 탈을 써 보겠습니다. 진행자라는 탈을 쓰고, 오늘은 여기까지. 마무리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탈에 대해서 교수님과 함께 재미있는 시간 가져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전: 수고하셨습니다.

최: 항상 마무리가 힘들어.

전: 마무리 연습을 해, 마무리.

이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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