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 투표·투표용지 반출 사태로
대국민 사과에도 음모론 또 꿈틀
새 각오로 본 투표는 만전 기하길

제21대 대통령선거가 사전투표 관리부실로 얼룩지고 있다. 투표용지 발급 업무를 담당한 공무원이 대리 투표를 하거나 선거인이 투표용지를 들고 기표소 밖으로 나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투표용지 발급기 운영 업무를 담당한 해당 사무원은 29일 서울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배우자의 신분증으로 사전투표용지를 스스로 발급해 대리 투표를 한 혐의로 고발됐다. 이 사무원은 본인의 신분증으로 사전투표용지를 발급받아 재차 투표하다가 두 번 투표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참관인의 이의제기로 발각됐다고 한다.
같은 날 서울 신촌 사전투표장에서는 일부 유권자가 외부 반출이 금지된 투표용지를 들고 투표소 밖으로 나가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모습이 목격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김용빈 사무총장은 투표용지 반출 논란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의 상식적인 선에서 있을 수 없는 일로 투표소 현장 사무인력의 잘못도 모두 선관위의 책임임을 통감한다”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경기도의 한 사전투표소에서는 배부된 회송용 봉투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에게 기표가 된 투표지가 들어가 있었다는 신고가 접수되고 선관위는 “자작극이 의심된다”며 수사를 의뢰했다. 지난 대선 때도 ‘소쿠리 투표’로 도마 위에 올랐던 선관위가 또다시 투표 관리 부실 논란을 자초했으니 개탄을 금할 길이 없다.
이번 조기 대선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경도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위헌적 비상계엄으로 파면당해 치러지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한 선거 관리로 부정선거 의혹을 말끔히 씻어내라는 주문이 많았다. 그런데도 묵과하기 힘든 대리투표와 투표용지 반출 사태가 터졌다. 대국민 사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선관위는 관리 부실의 진상을 파악해서 책임 소재를 가리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틀 동안 진행된 사전투표에서 유권자는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대거 투표장을 찾았다. 사전투표 최종 투표율은 34.74%로 집계돼 사전투표가 전국단위 선거에 처음 적용된 2014년 이후 두 번째로 높았다. 전체 유권자 4439만1871명 가운데 1542만3607명이 참여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새 정부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의 국론 분열과 혼란을 치유하고 통합과 안정을 이뤄내길 바라는 여망일 것이다. 이런 유권자의 투표 열기에 찬물을 끼얹고 부정선거 음모론에 빌미를 제공하는 일이 다시 일어나선 안 된다.
여전히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세력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을 통해 부정선거 음모론을 증폭시키고 있다. “중국인들이 투표를 위해 몰려들어 1번을 찍고 있다”느니 “투표함 밀봉 후에 이뤄져야 할 사전투표 참관인 서명을 밀봉 전에 받았다”느니 하는 의혹들이다. 근거 없는 의혹 제기에 대해선 엄정하고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주권자의 권력 행사 행위인 투표는 민주주의를 약동하게 하는 심장 박동에 비유된다. 선거 관리 과정에서 사소한 실수라도 발생하면 민주주의에 치명상을 가할 수 있다. 심장이 잠시 멎었던 비상계엄 사태가 생생한 교훈이다. 정치권도 자중해야 한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민주주의 헌정 체제를 파괴하려는 반국가 집단이 아니라면 그 어느 정치 세력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선 과정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활용하는 세력은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선관위는 새로운 각오로 남은 본 투표를 철저히 관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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