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겨울이 끝나면 언제 봄이 지나갔는지 모르게 금세 여름이 찾아온다. 푹푹 찌는 여름을 어떻게 맞이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인간의 몸은 우리가 별달리 애쓰지 않더라도 더위에 적응한다. 날씨가 더워지면 우리는 옷을 가볍게 입거나 땀을 흘린다. 또 실내 에어컨 온도를 낮추기도 한다. 모두 적응적 행동이다. 이러한 적응의 기저에는 뇌가 있다. 온도를 감지하고 더위에 대처하는 행동과 생리학적 변화를 일으킨다.
그렇다면 요즘 여름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더위가 이어질 때 뇌는 어떻게 대응할까. 이 질문에 대해 얀 지멘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최근 한 가지 답을 제시했다.
우리 뇌에서 ‘시각교차앞구역’은 단기간의 온도 상승에 반응하는 신경세포들이 위치하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이 신경세포들이 더위에 오래 노출되면 어떻게 되는지 생쥐를 대상으로 관찰했다. 실험 결과, 36도 더위에 4시간 정도만 노출되더라도 시각교차앞구역의 신경세포들은 더위에 강하게 반응했다. 더위가 오래 주어질수록 신경세포들의 반응은 점점 강해져 4주간 더위에 노출됐을 때에는 매우 격렬한 수준에 도달했다. 더위 적응력이 최대로 올라온 것이다. 이런 변화는 신경세포들이 스스로 전기적 특성을 바꾸어 온도 변화에 직접 반응할 수 있게 된 덕분이었다.
연구진은 더위에 사전 노출시킨 생쥐들이 열에 더 잘 견디는지를 연구했다. 분석 결과, 보통 생쥐는 39도의 폭염에 몇 시간 견디지 못하는데, 36도의 더위에 4주간 적응한 생쥐들은 39도 폭염을 하루 이상 에어컨도 없이 버텨냈다.
그렇다면 앞서 관찰한 시각교차앞구역의 신경세포들은 이런 더위 적응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연구진은 시각교차앞구역의 신경세포들을 조작하는 방법으로 생쥐의 더위 적응력을 실험했다.
먼저 해당 신경세포들이 억제된 생쥐는 36도 더위에서 4주를 지내더라도 39도의 폭염을 견디지 못했다. 반대로 별도의 더위 적응 없이 이들 신경세포만 인위적으로 활성화한 생쥐는 3일 만에 더위 적응력이 부쩍 좋아졌다. 시각교차앞구역의 신경세포들이 더위 적응에 필요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도 더위에 적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사람은 2주 정도면 더위에 꽤 적응하게 된다고 한다. 여름이 3개월 정도였던 시절에는 더위에 적응하고 두 달 반을 보냈던 것이다. 비교적 짧은 기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여름이 길어졌다. 각도를 바꿔 생각해 보면 끌어올린 더위 적응력을 더 오래 써먹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오랜 더위가 달갑지는 않지만, 더위 자체를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올해 여름도 힘을 내 견뎌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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