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영화 단골 메뉴 XR…일본보다 아래인 한국

2024-12-30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다시 확장하는 XR 시장

시장 주도하는 미국·중국뿐 아니라 일본보다 늦어

“과기부·산업부, 따로 따로 지원 통합해 실효성 높여야”

수십년 전 공상과학(SF)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 등에서 구현된 작가의 상상 중 많은 부분이 대중화됐다. 개인들은 화상 전화를 자연스럽게 이용하고, 기업은 물론 정부 부처도 화상 회의를 일상적으로 개최한다. 또 늦은 밤, 이른 새벽 자율주행버스에 큰 거리낌 없이 몸을 싣는 승객도 적지 않다. 다만 SF 영화·드라마에 자주 나오지만, 여전히 대중화하지 않은 상상도 있다. 많은 이들이 바라고 있지만 대중화되지 않은 대표적인 기술이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등을 통칭하는 확장현실(Extended Reality·XR)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부상하는 XR 시장

인공지능(AI)과 마찬가지로 XR도 20세기 중반부터 기술 개발이 진행됐다. 그러나 당시 기술로 구현하기에는 불가능했다. XR 업계에서는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하기 시작한 시기를 2010년대로 보고 있다. 메타(당시 페이스북)가 VR 전용 기기를 출시한 오큘러스를 인수하고, 구글이 구글 글라스를 출시한 2014년은 XR 산업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여겨진다.

메타나 구글 등 미국 기업뿐 아니라 소니·HTC·삼성도 XR 투자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다시 침체기를 맞이했다. 2018년 VR·AR 기기 글로벌 출하량은 각각 350만대, 26만대에 그치며 전년 대비 감소세로 전환됐다. 기기 완성도는 물론, 기기가 있더라도 콘텐츠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XR이 다시 부상하기 시작한 건 외부 활동이 제약됐던 코로나19 팬데믹 때부터였다.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 등 정보기술(IT) 발달로 기기와 콘텐츠의 성능이 향상됐고 5G 보급으로 통신 환경도 개선됐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업 스태티스 자료를 보면, 2024년 404억달러(약 59조원)로 추정되는 글로벌 AR·VR 시장 규모는 연평균 8.9% 증가해 2029년 620억달러(약 91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세부적으로 보면 AR 소프트웨어가 2024년 기준 130억달러(전체의 3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VR 하드웨어’가 114억달러로 전체의 32.6%를 차지했다.

과거에는 외부와 차단되는 헤드셋 등 폐쇄형 기기가 많이 출시됐지만, 최근에는 안경 등 개방형 기기가 주목받고 있다. 일반 소비자용 AR 글라스는 엑스리얼, 샤오미, 오포(OPPO), ZTE 등 등 중국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엑스리얼의 최신 제품인 ‘AR 글라스 에어2 프로’는 가벼운 무게뿐 아니라 마이크로 OLED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고화질 영상을 제공하고,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다른 기기와 연결이 가능해 주목받고 있다. 메타는 선글라스로 유명한 레이밴과 협력해 ‘레이밴 스토리즈’라는 스마트 안경을 출시하고 최근 AI 기능을 탑재해 성능을 향상하고 있다.

또 VR과 AR의 장점을 합쳐 가상의 물체(오브젝트)와 상호작용이 가능한 MR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메타의 ‘메타 퀘스트3’는 기기 외부에도 카메라를 장착하고, 패스스루 기능을 추가해 헤드셋을 쓴 상태에서도 외부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애플의 ‘비전 프로’는 기기 사용 장소를 현실이 되도록 설정했고 이를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이라고 이름 붙였다.

XR 시장을 주도하는 건 미국과 중국이다. 2024년 미국의 XR 산업 시장 규모는 109억달러, 중국은 81억5000만달러로 추정된다. 이에 비해 한국은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소프트웨어 정책연구소 자료를 보면, 2022년 기준 한국 AR·VR 매출액은 8억5000만달러 규모다. 이는 같은 해 260억 규모인 글로벌 시장의 약 3.3%에 불과하다.

국내 AR·VR 매출액을 세부적으로 보면, 콘텐츠가 대부분이다. 문화 콘텐츠가 55.8%로 가장 많았고, 산업 콘텐츠가 27.5%에 달했다. ‘전용 기기·부분품 제조업’ 비중은 3.5%(약 434억원)에 그쳤다. 통상 콘텐츠와 같은 소프트웨어 비중은 작고, 기기 등 하드웨어 비중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다른 산업과는 정반대의 상황인 것이다. 이는 삼성전자가 신제품 출시를 2019년 중단한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의 XR 산업 경쟁력은 미국·중국뿐 아니라 게임을 넘어선 외연 확대에 고충을 겪고 있는 일본보다도 뒤처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산업연구원이 지난 5월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요국 XR 산업 분야별 경쟁력’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의 종합 점수는 75.4로 일본(78.8)보다 아래였다. 특히 운영체제(OS) 등 플랫폼에서 일본에 비해 크게 뒤처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상용화한 5G, 선도적으로 개발 중인 6G 등으로 통신 네트워크 측면에서는 일본은 물론 미국·중국보다 앞서는 것으로 조사돼 그나마 격차를 만회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의 경우 삼성전자가 다시 구글·퀄컴 등과 손잡고 XR 헤드셋 개발에 나섰지만, XR 산업 전반적으로 생태계를 형성하고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다른 국가처럼 정부가 주도해 지원하거나 민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은 메타버스나 XR 관련 기업 육성, 산업단지 구축 등 중앙정부가 지원 정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미국은 육군이 마이크로소프트와 협업해 군용 XR 개발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은 사회 문제 해결에 XR 기술을 접목하는 ‘소사이어티 5.0’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한국 정부도 민관 협의체를 발족해 운영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1년 5월 ‘메타버스 얼라이언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3년 6월 ‘XR 융합산업동맹’을 출범했다. ‘XR 융합산업동맹’은 핵심 부품과 전후방 산업 생태계를 중심으로 산업 성장·수출·투자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메타버스 얼라이언스’와 중복되는 부분도 적지 않다.

김성진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 전문연구원은 “부처별 특장점을 고려한 차별화를 통해 효율적인 운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영역을 구분하기보다는 최대한 협력의 장을 열어놓음으로써 신제품 개발, 사업화, 수요 창출 등 실효성을 거두는 전략을 추진하는 방식을 확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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