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목걸이와 금거북이의 매직

2025-09-05

‘매관매직’을 검색해 봤다. 인공지능이 ‘돈이나 재물을 받고 관직이나 직책을 파는 행위’라고 설명한다. 뒤에 붙는 설명이 황당하다. “매관매직은 매직(마술)이 아닙니다.” 인공지능이 이용자 간 지식 교류 서비스에 올라온 질문과 답변을 참고했기 때문인 것 같다. 뒤져보니 “매관매직은 무슨 마술인가요?” 질문 뒤에 장난스러운 답변이 이어진다.

“나라가 망하는 매직.” “마술이 아니라 새로운 매직(펜).” “매를 보내서 관에 봉인하는 마술.” 채택된 답변만이 제대로 된 정보를 담고 있다. “매관매직은 벼슬을 돈 받고 파는 걸 말해요. 마술이 아니에요.” 이 답변자의 직업이 눈길을 끈다. 마술사였다.

조선 말 관직 매매 드물지 않아

최말단 참봉직 현 시세로 1억원

윤 정부서 보석으로 고위직 따내

100여 년전 일이 고스란히 재현

매관매직을 마술로 생각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건 우리가 이 단어를 자주 쓰지 않게 됐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 세기 전 조선 말기에는 관직을 사고파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구한말 문인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관직 매매의 모습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외직인 감사와 유수, 병사, 수사에서부터 수령에 이르기까지 거래의 대상이 됐다. 돈을 많이 내놓은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는데, 어떤 이는 1만 냥이나 주고 벼슬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더 많은 돈을 내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자리를 빼앗겼다. 더욱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그때야 거래가 멈추는 식이었다. 관직을 두고 경매가 벌어진 것이다. 영남의 어떤 고을은 이런 식으로 1년에 네 번이나 관리가 바뀌었다.

『매천야록』은 세간에 떠도는 풍문을 기록한 것이라 정식 사서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2015년 황현의 기록을 뒷받침할 만한 물증이 발견됐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소장품 정리 과정에서 안태환이라는 사람이 돈을 받고 참봉 관직을 팔았다는 내용의 ‘임치표’를 발견했다.

안태환은 승정원일기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로, 1890년 왕실 재산을 관리하는 기관에 있었다고 한다. 임치표는 일종의 영수증이자 보관증이다.

조선 후기 매관매직에 대한 기록은 많지만, 물증을 찾기는 어렵다. 예나 지금이나 부정부패는 감추고 싶은 치부이기 때문에 웬만해선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그런데도 안태환은 거래 상대가 실제 참봉직에 임명되면 이미 낸 돈을 돌려받지 않겠다는 약속을 문서로 받아뒀다. 대가였던 엽전 4250냥은 현재 가치로 1억원에 가까운 거금이었다.

1억원에 거래된 참봉 자리는 조선 시대 최말단 관직에 불과했다. 2022년 대한민국에서는 비슷한 값에 고위급 관직을 살 수 있었던 모양이다. 서희건설 이봉관 회장은 이제 막 영부인이 된 김건희씨에게 1억1000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선물했다. 6200만원짜리 목걸이와 2600만원 상당 브로치, 2200만원 상당 귀고리, 이른바 ‘나토 3종 세트’다. 받은 사람은 부인하지만 줬다는 사람은 사위의 공직 청탁을 위한 뇌물이라는 점을 이미 시인했다.

실제로 이 회장의 맏사위는 국무총리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대통령 부인에게 귀금속을 선물한 사람이 또 드러났다. 10돈짜리 금거북이를 건넨 뒤 장관급인 국가교육위원장 자리에 오른 이배용이다. 현재 시세로 650만원 이상 간다는 금거북이는 이 전 위원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에게 쓴 걸로 보이는 편지와 함께 김건희씨 모친의 요양원에서 발견됐다.

황현은 책에서 당시 매관매직 성행 이유를 이렇게 짚었다. ‘원자 탄생 이후 궁중의 기양(祈禳·재앙은 물러가고 복이 오라고 비는 일)은 절도가 없어 그 행사가 팔도 명산까지 미치고, 고종도 마음대로 유연(游宴)을 즐겨 상을 줄 경비가 모자랐다.’ ‘고종은 집정한 이후 날마다 밤이 되면 잔치를 베풀고 음란한 생활을 하였다.’ ‘명성왕후는 비용이 부족한 것을 염려하여 수령 자리를 팔기로 마음먹고 그 정가를 적어 올리도록 하였다.’ ‘이로부터 매관매과(賣官賣科)의 폐단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100여 년 뒤 대한민국에선 대통령이 모임 때 폭탄주를 돌리며 ‘유연’을 즐겼고 부인은 누구를 위해 무슨 복을 빌었는지 법사니 스승이니 하는 사람들과 수없이 교류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아침에 모여서 기도하는 모임의 대표와 부대표가 억대의 목걸이와 보석을 선물한 뒤 고위 공직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끝을 향해 치닫고 있던 부패한 왕조의 모습을 100여 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재현한 경이로운 매직이다.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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