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중앙박물관은 광복 80주년과 충무공 이순신 탄신 480주년을 맞아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잘 알려진 승리의 장면보다, 그 승리를 가능하게 한 기록과 자료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유물과 사료를 토대로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도록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전시실 가운데에는 국보 <난중일기> 친필본이 있다. <난중일기>는 지휘관이 매일의 전황, 군선 상태, 병사 사기, 군량 문제 등을 기록한 1차 사료로, 이순신이 불확실한 전투에서 어떤 근거로 전략적 판단을 내렸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장군이 사용한 장검, 조선 수군의 훈련 모습을 담은 ‘수군조련도’, 해안 방어 체계를 파악할 수 있는 ‘조선방역지도’, 다양한 크기의 총통과 방어구 등 실제 전장에서 쓰였던 유물들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이는 조선 수군의 전술과 기술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해주는 자료들이다.
뮷즈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유물과 기록을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다. 두정갑을 모티브로 한 어린이 털모자, 전립의 구조를 단순화한 와인 마개, 명량해전 직전 왕에게 결의를 밝힐 때 언급된 ‘12척’을 모티브로 한 니트 담요, 판옥선의 구조를 직접 이해할 수 있는 만들기 세트, <난중일기> 문장을 담은 다이어리가 대표적이다.
두정갑은 이순신이 전장에서 착용한 방어구 중 하나로, 보호 기능을 현대적으로 단순화해 어린이 모자로 재해석했다. 올해 뮷즈 정기 공모 선정작으로 상반기 출시가 가능했지만, 전시의 의미를 높이기 위해 출시 시점을 조정했다. 전립은 조선 수군이 사용한 군모로, 구조적 요소와 모양새를 이용해 와인 마개라는 새로운 용도로 재해석해 디자인하였다. 니트 담요는 이순신의 12척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는 것에 착안했다. 명량해전 직전 왕이 해전의 승산을 염려하자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라며 결의를 밝혔다. 뮷즈는 12척의 배를 형태와 배치 구조로 시각화해, 추운 겨울 따뜻하게 덮을 수 있는 담요 패턴으로 구현했다. <난중일기> 문장을 담은 노트에서는 전장의 결의 뒤에 숨은, 외롭고 고단했던 한 인간 이순신의 흔적도 엿볼 수 있다.
<난중일기> 속 기록과 무기, 지도 등은 이순신을 영웅 서사 너머의 실제 인물로 바라보게 한다. 기획 과정에서 우리는 자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 작은 물건들이 ‘우리들의 이순신’을 다시 기억하게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뮷즈가 지향하는 바는 유물을 오늘의 생활 맥락에서 다시 이해하는 일이다. 전시는 근거와 사실을 제시하고, 상품은 그것을 현대적 언어로 번역해 확장한다.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자연스럽게 기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올해의 마지막 달력 앞에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난중일기>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흔들렸던 날, 버티고자 했던 순간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적어두어야 했던 말들. 그 기록들이 모이면, 오늘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자 또한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가 될 것이다.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책임을 증명하는 행위다. 이순신의 기록이 그러했듯, 우리가 문화유산을 다루는 태도 역시 그 연장선에 놓여 있다.
■김미경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사업본부장. 문화유산에 오늘의 감성을 더하는 브랜드 뮷즈(MU:DS)의 총괄 기획을 맡고 있다.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등 국립중앙박물관을 ‘굿즈 맛집’으로 이끌었다.





![첫눈 속에 핀 개망초[조용철의 마음풍경]](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12/07/e8d2bcba-0859-4321-b2dd-73575fb052ce.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