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주에 버터가 들어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회가 이렇게나 들썩인다고?’
최근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가수 박용인씨(혼성그룹 어반자카파 소속)의 소식을 접한 후 뇌리를 스친 물음표다. 박씨가 대표로 있는 수제맥주 판매업체 ‘버추어컴퍼니’가 제조한 맥주에 버터가 들어가지 않았는데 들어 있다는 식으로 광고한 것이 화근이었다. 헷갈리는 문구로 소비자 신뢰를 훼손하고, 공정한 거래 질서를 저해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농업전문기자라서 그랬을까. 숱하게 쏟아진 버터맥주 기사를 살펴보다 문득 국내 원산지표시제도가 자연스레 연상됐다. 평소 ‘원산지표시제가 소비자의 신뢰를 저버리고 있다’는 생각을 품어 와서였을 것이다.
편의점에 가서 손만 뻗으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우유부터 살펴보자. 최근 유통기한이 1년 가까이 되는 수입멸균유가 국내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는 중이다. 국산보다 3분의 1가량 싸다보니 불경기 때 조금이라도 수익을 높여야 하는 카페 점주들 사이에선 ‘수입멸균유를 써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오간다고 한다.
현재 우유는 카페 업종의 원산지표시 의무에서 자유롭다. 커피를 애호하는 소비자들은 카페 점주가 밝히지 않는 이상 라떼의 우유가 ‘신선한 국산’인지 ‘오래된 외국산 멸균유’인지 알 길이 없다.
농산물이라고 다를까. 국산과 외국산이 섞이면 원산지를 병기할 수 있다. 가령 중국산 고춧가루 99%에 1%의 국산이 섞여도 식당에서는 비율을 밝히지 않아도 상관없다. 소비자는 으레 ‘국산이 절반 정도 들어가겠지’라고 여기기 쉽다.
유명 식품 대기업이 만드는 ‘순창 고추장’도 혼동을 불러일으킨다. 당연히 전북 순창산 고춧가루로 만들었겠거니 넘겨짚다간 큰코다친다. 깨알 같은 글씨로 된 원재료 정보를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상 외국산 고추양념 범벅이다. 지명이 포함된 상표를 심사할 때 상품을 제조하는 지역이나 상품의 원재료는 고려 대상이 아니라서 그렇다.
버터를 넣지 않은 ‘버터맥주’를 판 박씨를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누더기가 돼버린 우리나라 원산지표시제나 상표법을 비교했을 때 어떤 것이 소비자를 기망하는 정도가 심한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검사와 변호사가 맥주에 버터가 정말 들어갔느냐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을 법원의 풍경. 원산지표시제의 허점을 잘 아는 사람이 봤을 땐 촌극이다.
이문수 산업부 차장 moons@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