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림 숲속 사랑나무

2025-02-10

이영운, 시인·수필가

“뒤에 오는 수녀님하고는 어떤 관계세요?” “제 딸입니다. 수녀원에 들어간 지 15년이 됐습니다.”

오늘은 천년의 숲 비자림에서 봉사 활동을 하는 날이다. 해설 봉사를 하면서 젊은 수녀님과 그녀의 가족들인 부모님, 오빠, 조카들을 안내하게 됐다.

아버지는 수녀인 딸의 얘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가톨릭 집안에서 더 없이 착하게 자란 그는 주말마다 장애아를 돌보는 봉사 활동을 꾸준히 다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수녀님들이 생활하는 환경과 모습이 너무나 좋아서 자기도 그 곳에 속하고 싶다고 선언했다. 그리 열심한 신자가 아니었던 아버지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싶었지만 열심이었던 어머니는 순순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결국 자신도 승낙을 했고, 딸은 훨훨 제 성소를 따라 갔다.

“그래, 종신서원을 했습니까?”

“예, 물론이지요. 10년째 되는 해에 종신서원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수도자(남자)와 수녀는 지원기(1년), 청원기(1년), 수련기(2년), 유기 서원기(5년) 등 9년의 수련 과정을 거쳐 10년이 되는 해에 종신서원식을 갖는다.

수녀는 종신서원을 함으로써 완전한 수녀로 태어나게 된다. 가톨릭 용어인 ‘종신서원’(終身誓願, perpetual profession, professio perpetua)은 일생을 하느님께 바치며, 이 일생을 마칠 때까지 하느님에게 자신을 바치기로 서원하는 일을 말한다.

9년의 수련기간을 거친 이들은 이날을 기해 죽을 때까지 수도자로서 청빈ㆍ정결ㆍ순명의 서약을 지키며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는 삶을 살겠다는 종신서원을 하고 수녀회의 정식 일원이 된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경우, 종신서원식에서 이렇게 묻는다. “여러분은 온전히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일치되고, 어린이들과 병자들, 가난한 이들과 부유한 이들, 그 외 여러분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여러분의 온 존재를 하느님께 봉헌하기를 원합니까?”

“선생님, 그런데 저 나무는 이상한 모습으로 뒤엉켜 있는데, 어떤 나무입니까?”

“저 비자나무는 연리목입니다. 비자는 원래 암수가 다른 각각의 나무인데, 이 나무처럼 숙명적으로 이웃하다가 이제는 물도 영양분도 함께 공유하며 완전히 한 개체로 다시 태어난 일심동체의 나무가 된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보통 사랑나무라고 부릅니다.”

120여 년째인 한국 수녀회에는 오늘도 하느님께 평생을 바치기로 한 9900여 명의 수녀들이 전국 106개 수녀회에서 봉사와 희생의 삶을 살고 있다.

이 수녀님도 현재 가톨릭 재단의 한 고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수녀님은 이제 하느님과 연리목이 돼 서로 다른 개체가 한 몸 한 마음으로 다시 태어났듯이 순명, 청빈, 정결의 삶을 오롯이 바치고 있으리라.

부디 아무 고통과 눈물 없이 더없이 행복하고 기쁜 생활만 이뤄지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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