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 “비극적 사건서 삶 성찰… 진실, 반드시 밝혀진다” [차 한잔 나누며]

2025-02-10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씨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등 재심 변론

‘살해 혐의’ 김신혜씨 무죄 이끌어

“9년 만에 선고… 내 책임도 있어

25년 일관된 무죄 주장이 큰 증거”

‘장학회 설립’ 위기 청소년 돕기도

“‘비극적인 사건에 아름다움이 있다’. 저는 이를 ‘비극미’라고 부릅니다. 비극적 사건에선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우리 삶과 사회에 대한 성찰이나 각성을 하게끔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데 제가 재심 사건을 계속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박준영(51) 변호사는 2000년 3월 수면제 탄 술을 아버지에게 먹여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25년째 복역 중이던 김신혜씨 재심에서 지난달 6일 무죄 선고를 이끌어냈다. 김씨 사건뿐 아니다. 박 변호사는 경기 수원 10대 소녀 상해치사 사건,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전북 삼례 나라슈퍼 강도 치사사건, 경기 화성 연쇄살인 8차사건 등의 재심을 맡아 무죄를 이끌어낸 ‘재심 전문 변호사’로 유명하다.

박 변호사는 4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주로 재심 사건을 변호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같이 설명하며 “사건 기록에서는 보기 힘든 어떤 이면의 ‘진실’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의 존속살해 사건과 관련해 박 변호사는 “복역 중인 무기수(김신혜씨)가 결백을 주장한다는 것에 호기심이 더 가더라”며 “작은 체구의 여성이 눈앞에서 온힘을 다해 절규하는데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재심 개시 결정(2015년) 9년여 만에 김씨가 무죄를 선고받은 것에 대해 “김씨가 변호인을 해임하거나 재판부 기피, 재판 불출석 등으로 유별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지만 변론 준비가 부족했던 변호인으로서 정의 실현이 지연된 데에 대한 내 책임도 가볍지 않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징역형의 경우 교도소에서 ‘정역’이라는 작업이나 노역을 하게 만드는데 복역기간 내내 김씨는 그걸 다 거부했다. 재판 과정에서도 검사가 사형을 구형했는데 무죄만을 주장했고, 재심 과정에서도 무죄 아니면 다시 무기징역을 선고해달라고 했다며 이런 피고인의 입장이나 25년 가까이 일관되게 억울함을 주장했던 당사자의 힘이 재심에서 가장 강력한 무죄 증거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판결 이후에도 여전히 김씨에 대한 의구심은 제기되고 있다. 범행계획이라고 알려진 메모나 다수의 보험들, 자백을 들었다는 친척들 진술 등의 증거들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남동생을 보호하기 위해서 허위자백을 했을 가능성, 누나로서 살뜰하게 동생을 살피고 아버지, 조부모를 봉양했던 김씨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쉽게 판단해선 안 된다고 박 변호사는 강조했다.

김씨는 25년 수감 기간 대부분 독거실에 수용돼 있던 탓에 최근 들어 망상이 심해졌다. 그럼에도 김씨가 24년간 ‘무죄’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버팀목은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오랜 기간 무죄 주장을 일관되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박 변호사는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약촌 오거리 사건과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을 단적인 사례로 들며 약자를 위한 개선 노력도 강조했다. 그는 “고문이나 가혹 행위 등 물리적인 강요가 있는 수사는 지금은 거의 없다고 보는데 기망이나 회유, 사람의 타고난 심리적인 결함을 이용하는 수사 기법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감정, 생각을 표현하기 어려운 약자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앞으로 개선을 위한 노력이 계속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재심 변론 못지않게 ‘등대장학회’를 통해 위기 청소년 등을 도우며 또 다른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다. 장학회는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받은 피해자들이 모아준 돈을 재원으로 탄생했다. 등대라는 이름도 부산 낙동강변 살인 사건의 피해자들이 ‘어두운 바다의 길을 밝혀 준다’는 의미를 담아 지었다.

박 변호사는 “장학 재단이나 재심도 사실 뭔가 회복될 기회를 주는, 회복할 기회와 관련되는 것”이라며 “위기 청소년을 돕는 일도 회복될 기회, 건강하게 변화를 얘기할 수 있는 어떤 기회를 주는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김선덕·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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