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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동체를 경험해 보지 못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공동체라는 말이 참 어렵고 어색하다. 왠지 내 사생활이 침해당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이렇게 어색하고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사는 빌라 이웃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모른다. 지나가다 얼굴을 마주치지만 인사도 거의 하지 않는다. 이상하게 이웃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냥 불편하다. 대학가 50개의 원룸이 있는 대형빌라에 거주하면서도 이웃은 적이었다. 복도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그냥 괜히 불편했다. 이러니까 생각지도 못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집에서 날카로운 뚜껑에 발이 크게 베였다. 피가 생각지 못하게 많이 나와 너무 무섭고 당황스러웠다. 집에 응급치료물품이 없었다. 누구도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었다. 이웃은 모두 적이었다. 결국은 수건으로 한참 동안 피를 막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발바닥을 다쳐 신발을 신고 치료용품을 사러 갈 수도 없었다.
또, 지금 사는 빌라에 많은 문제들이 있다. 빌라 앞에는 늘 분리되지 않고 막 버려진 쓰레기들로 가득하다. 음식물 쓰레기통 안에는 배달용기와 비닐이 늘 함께 있다. 심지어 빌라가 경매에 올랐다. 그 결과 관리비로 사용하던 인터넷과 TV가 끊어졌다. 하지만 이 빌라에 사는 나를 포함한 누구도 함께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내가 공동체를 처음이자 어색하게 경험한 적이 있다. 아프리카 카메룬에서 KOICA봉사단을 할 때였다. 작은 마을에서 거주할 때, 수도로 말없이 출장을 갔었다. 며칠 출장을 다녀와서 보니, 이웃들이 많이 서운해했다. 왜 출장을 가는데 아무 말도 없이 갔냐고, 인사도 없이 가면 어떡하냐고 했다. 굉장히 당황스러웠고 어색했다. 공동체라는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
그렇게 2년 가까이 살았다.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결론적으론 참 좋았다. 집에 먹을 밥이 없어 저녁에 이웃집에 가서 현지식을 얻어먹었다. 다음날 입을 행사복이 찢어져 밤에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찾아가 옷 수선을 부탁했다. 수도로 출장을 가기 전에는 모든 이웃들과 포옹을 하고 갔다. 돌아올 때면 수도에서만 살 수 있는 과일과 초콜릿을 사서 이웃들에게 나누어줬다. 현지인들에게 시달려 힘든 일이 생길 때면 저녁에 이웃집 군인 아저씨에게 찾아가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며 털어놓기도 했다.
이제는 전주라는 도시에 살게되면서 새로운 공동체 개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해라고 생각지 않으면서, 내 이웃들과 소통하고 서로 반갑게 인사하며 살아가 보고 싶다. 급하게 약이 없으면 빌리고 싶고, 때론 음식이 많이 남으면 서로 나누고 싶다. 1인 가구가 사기에 매번 부담스러운 야채 뭉치들도 함께 사서 나누고 싶다.
어느 명절연휴 시작 날이었다. 나에게 이웃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당연히 내가 사는 빌라의 이웃들은 이웃이 아니었다. 늘 반갑고 친절하게 맞아주시는 집앞 편의점 사장님과 미용실 원장님이 진짜 이웃이었다. 인사드려야 할 높은 어른들에게 선물하지 않았다. 작은 과일선물세트를 사서, 편의점 사장님과 미용실 원장님께 드렸다.
편의점 사장님은 자리를 옮기셨지만, 그 동네에 갈 때면 늘 들린다. 아직도 반갑게 안부를 주고받는다. 미용실 원장님은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주라고 하신다. 별거 아니지만, 이런 따뜻한 이웃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가 보고 싶다. 우리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만 같다.
김민재 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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