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미디어] 진단명: 양상추 버터 토스트

2025-11-20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낮은 짧아지고 밤은 길어졌다. 세찬 바람이 옷깃 사이로 스며들며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길고도 길었던 10월의 공휴일과 추석 연휴를 지나 맞이한 11월은 유난히 무겁고 힘겹게 느껴진다.

요즘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20분’이나 늦어졌다. 10분 간격으로 울리는 알람을 죄다 끄고 나서야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난다. 예전엔 짧은 운동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걸어가던 출근길도, 이제는 버스에 몸을 맡긴다. 단지 늦잠 때문만은 아니다. 매일 걷던 길이 요즘 따라 유난히 길고 버겁게 느껴져서다.

출근하자마자 커피를 찾는 것도 일상이 되었다. 카페인이 없으면 눈이 흐리고 머리가 둔탁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전 업무를 버티다 보면 혈당이 떨어져 서랍 속 과자를 찾고, 그 덕에 뱃살은 볼록해진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얼굴은 반대로 점점 홀쭉해진다. 뱃살과 볼살의 상관관계는 분명 따로 작동하는 듯하다. 거울을 볼 때마다 볼을 부풀리거나 ‘아·에·이·오·우’를 반복하며 얼굴 근육을 깨워본다. 유튜브에서 유명 여배우가 소개하는 운동법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큰 효과는 없는 듯하다.

9월, 갑작스러운 사고로 병원 신세를 진 이후 체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회사에서는 새로운 사업을 맡으며 정신없이 하루가 흘러갔다. 퇴근 후 저녁을 먹자마자 그대로 쓰러지는 날이 많았고, 약속이 있는 날에는 남몰래 하품을 참으며 버텼다. 정시 퇴근을 중시하는 회사 문화 덕에 워라벨은 잘 지켜지고 있었지만, 업무 시간에 100%를 넘어 120%를 쏟아내니 피곤하긴 마찬가지였다. 퇴근 후에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책상 앞을 떠나지 못했고, 피로는 더 깊게 쌓여갔다.

이런 상태를 요즘 MZ세대는 ‘토스트아웃(Toasted Out)’이라고 부른다. 주어진 일은 어떻게든 해내지만 신체적, 정신적 피로가 켜켜이 쌓여 서서히 타들어가는 상태라고 한다. SNS에는 각자의 체력 상태를 여러 종류의 토스트나 빵에 빗대어 표현한다. 디톡스가 필요한 날은 ‘햄 토스트’, 흐물흐물 체력이 떨어진 날은 ‘양상추 토스트’, 졸음이 쏟아지는 날은 ‘버터 토스트’. 뇌에 과부하가 걸린 날은 ‘공갈빵 아웃’이라는 표현도 있다. 요즘의 나는 아마도 양상추와 버터를 합친 ‘양상추 버터 토스트’, 그 중간쯤 어디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흐물흐물하고 녹아내릴 것 같은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거창한 치유가 아니라 ‘잠’과 온전한 ‘쉼’이 필요했다. 늘 “주말에도 무언가 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몰아붙였던 나는 하루만큼은 암막 커튼을 치고 누워보기로 했다. 눈을 떠 시간을 확인하는 순간 깜짝 놀랐다. 오후 3시. 그런데 눈은 오히려 맑고 또렷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총명함이었다.

일어나 닭칼국수를 시켜 먹었다. 뽀얗고 진하게 우러난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는 순간 온기가 몸을 감싸 안았다. 칼국수와 곁들인 실비 김치는 속이 아플 만큼 매웠지만, 이상하게도 멈출 수 없었다. 설거지는 미뤄두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뜨겁고 매운 음식 뒤를 잇는 차갑고 부드러운 단맛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진정시켰다. 그러고 나니 다시 졸음이 밀려왔고, 전기장판 위에 몸을 눕히자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하루를 통째로 내려놓고 나니 마음이 먼저 가벼워졌다. 다시 움직일 힘이 천천히 되살아났다. 더 멀리 가기 위해 잠시 멈추고, 더 깊게 숨 쉬기 위해 조금 내려놓는 일. 이런 ‘작은 멈춤’이 결국 나를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사실을, 이 가을의 끝에서 천천히 배워가고 있다.

진보화 청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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