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늑대에겐 먹이를 줘야하고, 양은 보호해야 한다

2025-03-07

전쟁은 시작하는 것보다 끝내는 것이 더 어렵다. 트럼프와 젤렌스키 간 백악관 정상회담의 파국이 그걸 잘 보여주었다. 외교 참사의 표면적인 이유는 양국 정상 간의 대화가 설전으로 바뀐 것에 있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트럼프가 종전 협상에서 푸틴의 편에 서면서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이라는 이익의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학 교수인 폴 대니어리가 쓴 책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차가운 결별에서 참혹한 전쟁으로』는 러-우 전쟁의 원인을 포괄적으로 분석하면서 바람직한 종전 방안을 모색했다. 이 책은 전 우크라이나 대사인 허승철 고려대 교수가 번역한 것으로 종전의 외교 철학으로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한 문구를 인용한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늑대는 먹이를 주어야 하고, 양은 보호되어야 합니다(Our idea is that the wolves should be fed and the sheep kept safe).” 종전을 위해서는 러시아가 만족하고, 우크라이나는 주권과 독립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강자의 요구를 반영하면서도 약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도덕적 원칙으로 국제 정치에서의 현실주의와 이상주의를 동시에 반영하고 있다.

러시아가 원하는 건 ‘우크라 땅’

우크라가 원하는 건 ‘안전보장’

이익 충돌하면서 불확실성 커져

이제 군인 대신 외교관이 나설 때

늑대(러시아)에게 줄 먹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의 땅이다. 푸틴은 영토 획득은 전쟁의 목표가 아니라고 말해왔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다. 2014년 푸틴은 친러 대통령을 실각시킨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 혁명을 쿠데타라고 부르면서 크림반도를 불법 점령했다. 푸틴은 현재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땅을 ‘노보로씨야(Novorossya, 새 러시아)’라고 부름으로써 땅에 대한 야심을 드러냈다. 그 땅은 18세기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가 투르크와의 전쟁으로 빼앗은 땅이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민도 종전을 위해서는 땅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양(우크라이나)을 보호하는 방법은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이다.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을 원하나, 푸틴의 편에선 트럼프는 이에 반대한다. 그 대신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광물협정을 제시했다. 우크라이나 땅에 매장된 주요 광물을 미국 기업이 개발하되, 그 수익의 절반은 미국이 운영하는 기금에 넣는 것이다. 기금의 규모는 5000억 달러 정도다. 미 재무장관은 우크라이나에 미 기업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리면 러시아가 재침공을 못 할 것이므로, 이는 ‘경제적 안전 보장’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확실한 안전 보장이 아니다. 안전 보장의 핵심은 군사적 안전 보장이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크게 미흡하다.

트럼프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협상카드가 없다면서 우크라이나를 종전 협상에서 배제했다. 이것은 한국전쟁 당시 상황과 유사하다. 한국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트루먼 행정부는 1951년 봄부터 휴전을 추진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휴전에 반대하자, 미국은 한국 정부를 배제하고 중공과 적당히 휴전하려 했다. 한국의 안전 보장에는 관심이 없었다. 여기서 이승만은 한국의 안전 보장을 위해 한미동맹조약 체결을 요구하면서, 미국과 사전 협의 없이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꺼냈다. 그것으로 공산권은 종전 협상 참여를 거부했고, 미국이 추진하던 휴전협상은 벽에 부딪혔다. 그것은 신의 한 수였다. 신임 미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어쩔 수 없이 이승만의 휴전협정 수락을 조건으로 한미동맹조약 체결에 동의했다.

미-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이 파국을 맞으면서 이제 모든 것이 불확실해졌다. 양국 정상이 서명키로 했던 광물협정의 운명도 젤렌스키의 정치적 운명도 불확실해졌다. 미국의 지원이 끊어지면 우크라이나를 홀로 지원해야 하는 유럽의 고민이 깊어졌다. 양국 정상의 설전을 지켜본 유럽 지도자들과 우크라이나 국민은 젤렌스키를 뜨겁게 지지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감정이란 언제 변할지 모른다.

우크라이나처럼 풍부한 광물자원의 축복도 없이 이승만은 반공포로 석방이란 카드로 맨땅에서 한미동맹이란 안전 보장을 만들어냈지만, 우크라이나에 그런 카드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장에서 러시아가 유리한 상황에서 늑대에게 먹이를 주면서 양을 보호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도 톨스토이가 던진 철학적 과제를 현실로 만들 사람들은 외교관들이다. 이제 군인들의 시간이 가고, 외교관들의 시간이 왔다.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이들이 정의로운 평화를 만들어내기를 기대해 본다.

권기창 전 주우크라이나 대사·한국수입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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