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억울하다

2025-08-13

매일 마시는 커피에 발암물질이 들어있다면 큰 뉴스다. 지난 6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한 전문가는 커피 속 발암물질을 언급하여 큰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과학적 맥락을 무시한 과도한 우려이다. 양에 대한 정보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방송에서는 커피에 아크릴아마이드와 벤조피렌이라는 발암물질이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말에는 중요한 맥락이 빠져 있다. 커피 속 함량은 무시해도 될 정도로 낮기 때문이다. 아크릴아마이드는 감자튀김·토스트·쿠키·시리얼에도 들어 있다. 커피는 이보다 함량이 훨씬 낮다. 커피 87잔을 마셔야 중간 사이즈 감자튀김 한 팩에 해당하는 아크릴아마이드를 섭취하는 셈이다. 벤조피렌은 나무·고기 같은 유기물이 불완전 연소할 때 생기는 물질로 고소하게 볶아 짜낸 참기름에도 들어있다. 커피 한 잔에 들어 있는 벤조피렌 양은 훈제 생선이나 숯불고기·담배연기 등에 비해 현저히 적다.

방송에서 소개한 것처럼 한때 미국에서도 커피 발암물질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2018년 3월, 캘리포니아 고등법원은 커피 속 아크릴아마이드를 문제 삼아 스타벅스를 포함한 프랜차이즈 매장에 담배처럼 발암 경고문을 부착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이 조치는 3개월 만에 뒤집혔다. 캘리포니아 규제당국은 2018년 6월 커피가 암을 유발한다는 근거는 없으며, 경고문 부착은 과도하다고 판단해 입장을 철회했고, 미국 FDA도 커피의 잠재적 위험보다 건강상 이점이 더 크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2016년 세계보건기구도 커피를 발암 가능성이 있는 물질에서 제외했다. 반면 뜨거운 음료는 식도 점막을 자극하여 식도암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암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겨울에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게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단 얘기다.

실제 역학 연구들에서도 커피 섭취가 암 발생률을 높인다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의 연구 결과가 더 많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에게 간암, 자궁내막암, 파킨슨병, 우울증, 제2형 당뇨병 등의 위험이 낮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불필요하게 두려움을 자극하는 주장에 흔들려 커피를 피할 이유가 없다.

“모든 물질은 독이며 단지 용량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독성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파라켈수스가 르네상스 시대에 남긴 말이다. 특정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것과 위험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한국인의 벤조피렌·아크릴아마이드 노출량은 다른 국가와 비교해서 이미 낮은 수준이며 식약처에서는 식품 제조·가공·조리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이들 물질 함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건강에 대한 어떤 주장도 양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빠져있다면 거르는 게 좋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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