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 월간지 편집팀은 내년 1월호 마감을 앞두고 날벼락을 맞았다. 한국여행 특집 기획을 마련했으나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기획을 통째로 갈아엎어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24일 기준 2025년 1월 1일 베이징발 인천행 편도 항공권 가격은 629위안(약 12만원)까지 떨어졌다.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비상계엄 선포는 중국에서도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계엄선포 당일 공식매체뿐만 아니라 동영상 스트리머들도 한국 TV를 연결해 상황을 온라인에서 생중계했다. 군인들이 총을 들고 의회를 짓밟는 모습, 야당 의원들이 계엄 해제를 국회 담을 넘는 모습, 시민들이 국회 앞으로 달려나가는 모습 등이 얼떨결에 방송을 탔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보인 반응은 “마치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같다”는 것이다. 신화통신부터 ‘서울의 겨울: 윤석열의 6시간 계엄령 희극’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과 줄거리가 같다”고 해설했다. 중국에서 <서울의 봄>은 현재 합법적으로 볼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하다는듯이 <서울의 봄>은 관영매체에서도, 소셜미디어(SNS)에서도 자연스럽게 언급된다.
중국 관영매체는 어느 순간부터 시위 장면은 내보내지 않고 있다. 탄핵 절차를 둘러싼 한국 정치권의 반응을 중심으로 전한다. 신화통신 계열의 소셜미디어 계정 뉴탄친은 윤 대통령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직접 쿠데타를 했다”고 언급했다. ‘패왕별희’ 비유까지 나왔다. 지난 7일 제출된 탄핵소추안에는 반중친일 위주의 외교정책이 언급됐다는 점도 주목받았다. ‘자유민주주의 가치’ 를 옹호하며 미국·일본과 함께 반중국 견제에 앞장섰던 윤석열 정권의 몰락에 고소해하는 분위기도 느껴진다.
여기까지가 온라인 반응이라면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현실은 두 덩어리이다. 한국인들이 분통을 터뜨리거나 황망한 상태로 있으면 추위에 건강 조심하라는 말이 돌아온다. 대다수는 남의 나라라 하더라도 정치 언급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진다.
반대로 겉으로는 조소를 흘리는 듯한 지식인층은 수면 아래서는 치열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있다. 한국학 전공자들은 A4 용지 4~5장 분량의 기고를 쓰기도 했다. 3·1운동과 저항정신, 냉전의 경험과 윤 대통령의 폭주 등을 연결짓는 분석들도 있다. 지도층에서는 궁극적으로 중국에 우호적인 ‘이재명 정권의 탄생’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분명 있다. 그런 중국을 상대로 냉철하지만 열렬하게 분석하면서 대응하는 이가 한국에 있는지 두려워졌다.
두 거대한 봉우리 같은 반응 사이에 흐르는 시냇물 같은 반응이 있다. 비상계엄 선포일 웨이보에는 “이미 계엄”이라는 댓글이 돌아다녔다. 포고령 1호에 언급된 시위금지, 언론·출판 검열, 파업 금지 등을 보면 중국은 이미 계엄상태나 다름없지 않느냐는 자조로 읽힌다. “아무도 피를 흘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발언을 인용해 말했다. “저는 이번 12·3 비상계엄 내란 사태를 겪으며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고 싶다. 1980년 5월이 2024년 12월을 구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중국어 자막이 입혀져 엑스(옛 트위터) 등에서 돌아다닌다. 눈물을 흘리는 것조차 조용히 해야 한다. 찬바람 맞으며 트랙터에 오르고 응원봉을 들고 밤을 샌 시민들을 응원하는 목소리는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메아리친다. 수많은 이들이 한국의 무너진 민주주의 회복을 애타게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