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터뜨린 ‘관세 폭탄’의 화염이 국제 농산물 시장으로 옮겨 붙었다. 커피 원두 가격은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고 밀ㆍ대두 등 곡물 가격도 치솟았다. 이상 기후로 식재료 물가가 상승하는 ‘푸드플레이션(푸드+인플레이션)’에 불이 붙은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고율 관세가 기름을 붓고 있다.
가뭄·폭우·두리안에 커피값 최고가
3일 미국 뉴욕 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아라비카 원두 가격은 지난달 31일 파운드(0.45㎏)당 3.78달러를 기록했다. 1년 전(1.94달러)보다 94.8% 올랐다. 1년 동안 배 가까이 가격이 상승하면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같은 기간 영국 런던 선물거래소에서 로부스타 원두는 t당 3168달러에서 5694달러로 79.7% 급등했다. 올해만 가격 15.2%가 치솟았다. 아라비카는 카페 등에 주로 납품되고, 로부스타는 인스턴트 커피의 원료로 쓰인다. 두 원두 가격은 국제 커피 가격을 결정하는 벤치마크(기준점) 역할을 한다.
초콜릿과 같은 주요 기호식품의 원재료 가격도 커피와 함께 상승했다. 1년 새 미국 코코아 선물 가격은 131.2%, 오렌지주스 원액은 31.6% 올랐다. 다른 식품 원자재 가격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곡물 등 식콩(대두)은 연초보다 4.5% 상승한 부셸(27.2㎏)당 10.44달러, 밀(소맥)도 연초보다 3.8% 오른 부셸당 5.67달러를 각각 기록했다.
푸드플레이션 키우는 미국 관세
푸드플레이션에 처음 불을 지핀 건 폭염 등 이상기후다. 아라비카 원두의 최대 생산지인 브라질은 지난해 극심한 폭염과 가뭄으로 작황 부진에 빠졌다. 로부스타 원두 주 생산지는 베트남인데 폭우와 가뭄이 반복되면서 생산량이 줄었다. 여기에 중국에서 수요가 늘어난 두리안으로 재배 작물을 변경하는 농가가 늘면서 공급량 감소를 부추겼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발 관세가 새로운 악재로 떠올랐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콜롬비아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가 9시간 만에 철회했지만, 이후 커피 원두 값은 치솟았고 역대 최고가로 올라섰다. CNN은 “콜롬비아는 브라질과 베트남에 이은 세계 3번째 커피 원두 생산국”이라며 “(고율) 관세가 발효되지도 않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이 커피 시장 전체에 불안감을 안겨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와 캐나다산 상품에 25%, 중국 수입품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푸드플레이션이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23년 미국 농산물 수입액(1959억 달러)의 44%(860억 달러)를 멕시코와 캐나다가 차지한다. 앞서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미국이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중국에 10% 관세를 부과할 경우 올해 물가 상승률을 0.5%포인트, 내년엔 0.25%포인트 끌어올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먹거리 가격에 금리까지 영향
트럼프발 관세 충격은 가뜩이나 불안한 국내 물가에도 악영향을 가져다 줄 전망이다. 달러 강세 장기화로 수입 물가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원재료 가격까지 덩달아 오르고 있어서다. 이미 스타벅스, 폴바셋, 할리스커피 등이 지난달 줄줄이 커피 음료 가격을 인상했다. 콩‧밀 등의 가격도 오르고 있어 과자나 빵 같은 가공식품은 물론 외식 물가 추가 상승도 예고됐다.
금리로 영향이 번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내 물가 상승 이어지면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는 어려워진다.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걸림돌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5월까지 Fed가 기준금리를 동결할 확률은 63.2%로, 1달 전(39.7%)보다 23.5%포인트 상승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내 물가가 높아지면 전반적인 생산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결국 미국뿐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상품 등을 수입하는 다른 나라 물가까지 오른다”며 “인플레이션 우려로 미국의 금리 인하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한국이 먼저 금리를 내리는 건 사실상 모험이다. 정치 등 모든 상황이 안정된다는 가정하에 한 차례 인하가 최대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