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4일 방송된 '강화도 괴담-그를 만나면 사라진다'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박하나, 박명훈, 그룹 미야오 멤버 가원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엄마가 사라졌다
때는 2001년 12월.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정연주(가명) 씨는 인천에 있는 외갓집에서 지내고 있었어. 그날은 잠시 외출을 했는데, 휴대전화로 전화가 걸려 왔어. 연주 씨의 외할머니였어. 연주 씨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거야. 연주 씨는 어릴 때부터 엄마와 단둘이 살았는데, 몇 년 전부터 엄마가 먼 곳에서 일을 하기 시작해 딸 연주 씨를 외갓집에 맡겼어. 엄마는 시간이 될 때마다 외갓집에 오곤 했어.
2001년 12월 17일. 그날도 외갓집에 온 엄마는 오후에 다시 집으로 돌아갔어. 근데 그 뒤로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거야. 연주 씨를 어렵게 만나, 24년 전 그날의 이야기를 들었어.

"처음에는 거짓말하는 줄 알았죠. 제가 그때 조금 말을 안 들었던 시기라, 엄마가 연락 안된다고 해서 할머니가 빨리 집에 들어오라고 장난을 치시는 줄 알고 들어갔는데 그게.. 그날이 아니라 3일이 지나서 얘기하신 거에요. 그때 돼서는 알았죠. 식구들이 다 엄마가 연락이 두절될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아요."
-정연주(가명)
엄마가 연락이 안 된 게 벌써 사흘째라는 거야. 가족들은 처음에는 별일 아니겠거니, 생각했는데 연락이 계속 안되니 연주 씨한테 얘기한 거야. 엄마한테 전화해 봤지만, 전화기는 꺼져 있어. 게다가 연주 씨의 이모가 하는 말이, 엄마가 외갓집을 떠날 때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았다는 거야. 대체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걱정하던 이모가 연주 씨 엄마의 집으로 찾아 갔어. 하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었어. 게다가 뭔가 이상하더래. 어딜 간 거라면 외출한 흔적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옷이고 돈이고 다 그대로 있더라는 거야.
"사람만 없어진 거예요. 돈이고 뭐고 하나도 건든 것 없이 사람만 없어졌어요. 휴대전화하고. 그때 당시 입고 나갔던 그 옷 그대로, 짐이 없어진 것도 없고 짐이 싸진 것도 없었고."
-정연주(가명)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고 생각한 가족들은 그때부터 엄마를 찾기 시작했어. 엄마가 갈만한 곳을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수소문했어.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한달이 지나도 엄마를 찾을 수 없었어. 그렇게 연주 씨의 엄마는 하루 아침에 증발하 듯 사라졌어.
▲ 또 다른 실종자
13년이 흐른 2014년 7월 강화도. 강화경찰서 강력팀에 근무하던 서춘원 형사는 비번이라 쉬고 있었어. 근데 밤 9시 반, 후배 형사한테 전화가 걸려 왔어.
"선배님, 실종 신고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실종자는 36세 임재민(가명) 씨고, 신고자는 아내입니다. 남편이 아침 일찍 집을 나갔는데, 여태껏 귀가도 안하고 연락도 안된다고 합니다."
밤 9시 반인데 30대 남성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건,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있어. 그런데, 임 씨의 아내는 평소 남편이 어딜 가면 꼭 연락을 했다고 했어. 게다가 그날은 임 씨 아버지의 기일이었대. 저녁에 다같이 모여 제사를 지내기로 했는데, 연락도 없이 집에 안 들어오고 있다는 거야.
그런데 후배 형사가 이런 얘기를 덧붙였어. "그 실종자 말입니다. 권 씨를 만나러 갔다고 합니다"라고. 그 순간, 서 형사의 몸에 소름이 쫙 끼쳤어.

"후배 형사로부터 '권 씨를 만나러 갔다가 귀가를 안하고 있다'는 얘기를 닫고 깜짝 놀라서, 이건 누가 봐도 살인사건이다…"
-서춘원, 당시 강화경찰서 강력팀장
서 형사는 '권 씨'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심상치 않은 사건이라고 직감했어. 경찰서에는 곧바로 비상이 걸렸어. 단순 실종 사건이라 생각했던 강력팀 형사들도, '권 씨'라는 이름을 듣고 난리가 났어.

"확인을 해보니 만나러 간 상대방이 권 씨라고 해서, 이거는 사달이 났을 수도 있다, 이거는 또 시작됐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을 했죠."
-손성진, 당시 강화경찰서 강력팀
대체 권 씨가 누구길래 이러는 걸까?
▲ 권 씨를 만나면 사라진다?
오래 전부터 강화도에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돌던 묘한 소문이 하나 있어.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그 사람 말 듣기 싫은데. 우린 그 이름을 들으면 소름 끼쳐요. 그냥 몸이 오싹해지니까."

"그런 거 나 몰라. 모르는 얘기니까 나보고 물어보지 말고."

"동네가 다 술렁술렁하는데 뭐. 그 사람을 만나면 만나는 사람마다 전부 없어지고 그러니까."
-동네 주민들
권 씨를 만나는 사람은 모두 사라진다? 소문의 진상은 이래. 오래 전 조용했던 강화도를 뒤흔든 3개의 사건이 있어. 2건의 실종사건과 1건의 살인사건이야. 이 서로 다른 사건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어. 사건 피해자들 모두, 사라지거나 살해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바로, 권 씨라는 거야. 권 씨를 만난 사람들이 연이어 실종되고 사망하자, '그를 만나면 사라진다'는 괴담이 마을에 퍼지게 된 거야. 그러던 중 임재민 씨의 실종 신고가 들어오면서, 괴담의 주인공인 권 씨가 등장한 거지.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실종자 임 씨의 신변이야. 확인해보니 임 씨의 휴대전화는 꺼져있어. 휴대전화가 꺼지기 전 마지막으로 있던 곳은 강화도. 그리도 얼마 후, 형사들은 임 씨를 찾았어.

"얕은 야산이다 보니까 구릉처럼, 깊이 한 50~60cm 파진 물길이 있었어요. 근데 그 물길 있는 데에 파리가 굉장히 많이 꼬이더라는 거예요. '쥐새끼가 죽어있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조그마한 돌을 집어서 그쪽에 딱 던진 거예요. 파리들이 싹 날아갔다가 몇 분 후면 다시 또 수십 마리가 날라와서 앉아 있고. 또 던지면 또 그러고. 이상하다 해서 저희가 감식팀 불러서 다 파봤죠. 그랬더니 시신이 나왔습니다."
-서춘원, 당시 강화경찰서 강력팀장

야산 한 가운데 묻힌 채 시신으로 발견된 임 씨. 사인은 두부 손상으로 인한 사망. 뒤통수에 뭔가에 맞은 흔적이 있었어. 시신은 성별도 알 수 없을 만큼 많이 부패됐어. 하지만 가족들은 그 시신이 임 씨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어. 왼손에 결혼 반지가 끼어 있었거든. 그렇게 임 씨는 아버지 기일날 살해당했어.

시신이 발견되고 임 씨가 마지막으로 만났다는 권 씨가 경찰 조사를 받게 됐어. 얼굴을 옷으로 덮어 안 보이게 해주자 권 씨는 "앞에 안 보이니까 더 싫다. 얼굴 보여도 좋으니까. 이거 답답해서 되겠냐고. 옷을 조금 들어달라"며 당당한 태도를 취했어. 또 혐의를 인정하는지 묻자 권 씨는 "인정 안합니다"라고 강력 부인했어.


"죄를 지은 적도 없고 내가 죽여야 될 아무 이유가 없어요. 나이 63살 먹어서 저 젊은 애를 내가 죽였겠냐고요."
-권 씨
권 씨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혐의를 부인했어. 60대인 자신이 서른 살이나 어린 사람을 죽일 이유가 없다는 거야. 아직 드러난 건 아무 것도 없어. 그런데 확실한 건, 권 씨 주변에서 네 번이나 사건이 벌어졌다는 거야. 과연 권 씨는 우연히, 네 번 씩이나 사건에 휘말린 운이 나쁜 사람인 걸까? 아니면 네 번이나 범죄를 저지른 연쇄 사건의 범인인 걸까? 그가 연루된 사건들로 돌아가 볼게.
▲ 다른 사건, 같은 용의자
처음 권 씨가 연루된 사건은, 바로 이거야.

실종된 여성 이윤희 씨를 찾는 전단지. 바로 처음 얘기했던 연주 씨의 엄마야. 인천에서 강화 집으로 간다고 하고 사라진 마흔 살 이윤희 씨. 당시 강화도에서 지내던 윤희 씨는 한 횟집에서 일하고 있었어. 그 횟집은 권 씨가 운영하던 가게였어. 사장과 종업원이었던 두 사람은 내연의 관계였대. 그러던 어느 날 윤희 씨가 사라진 거야.
가족들은 윤희 씨의 행방에 대해 가장 먼저 누구에게 물었을까? 윤희 씨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권 씨에게 물었겠지? 그런데 권 씨가 이렇게 말을 하더래.
"일본에 간 거 아니었어? 왜 저번에도 오랫동안 다녀온 적 있잖아."
윤희 씨가 일본에 간 거 같다는 거야. 전에도 윤희 씨는 몇 개월 동안 일본에 다녀온 적이 있거든. 평소 윤희 씨와 떨어져 살던 가족들은 일단 권 씨의 말을 믿고 기다렸어.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오랫동안 윤희 씨와 연락이 되지 않았어. 윤희 씨 집에 갔더니 짐을 싼 흔적도 없는 거지. 이상함을 느낀 가족들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어.

윤희 씨 출입국 기록인데, 마지막 기록은 2001년 10월 24일이야. 그런데 윤희 씨가 실종된 날은 2001년 12월 17일. 윤희 씨는 2001년 10월 이후, 해외에 나간 적이 없어. 그런데 권 씨는 윤희 씨가 일본에 간거 같다고 했잖아? 출입국 기록이 없다고 하자, 권 씨가 이번엔 이렇게 말하더래.
"기록이 없다고? 나 참… 그럼 딱 그거네! 몰래 간 거야 그거. 밀항이 아니면 뭘로 설명이 되냐고."

"엄마가 일본에 갔다는 둥, 늘상 이상하게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툭툭 뱉어요. 거기서 거짓말을 하고 횡설수설 했던 거 같아요. 딴소리 하고 이 소리했다 저 소리했다 하면서."
-정연주(가명), 실종된 윤희 씨의 딸
그런데, 윤희 씨 실종사건을 수사하던 형사들이 동네 주민으로부터 수상한 이야기를 듣게 됐어.

"실종된 당일 이윤희 씨 집에서 심하게 말다툼이 있었다는 제보를 받았고, 권 씨 하고 마지막 다툼을 하고 권 씨가 이윤희 씨를 데리고 권 씨가 살던 본가까지 한 15km 정도 되는데, 거기까지 이윤희 씨를 데리고 간 것이 마지막 행적이었고, 그 이후에 이윤희 씨가 실종 신고됐기 때문에 이 사건은 뭔가 의심이 된다."
-김영규, 당시 강화경찰서 형사
윤희 씨네 집에서 권 씨와 심하게 다툰 뒤,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는 거야. 윤희 씨가 실종되기 전 마지막으로 함께 있던 사람, 바로 권 씨였어. 형사들은 윤희 씨가 사라진 게 단순 실종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곧 권 씨는 이 사건의 용의자가 됐어. 경찰 조사를 받게 된 권 씨는 윤희 씨가 실종된 그날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
"그날 나랑 같이 있던 건 맞아요. 근데 갑자기 그 뒤로 나가더니 그 뒤로 연락이 안되더라니까."
-권 씨
물론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 이 모든 진실을 밝히려면 꼭 찾아야하는 게 있어. 바로 윤희 씨. 형사들은 윤희 씨를 찾으려고 강화도 일대를 전부 뒤졌어.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윤희 씨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어. 그렇게 이윤희 씨 실종 사건은 단서 하나 없는 미제사건이 된 거야.
"우리 수사선상에는 권 씨 외에는 다른 누구도 이윤희 씨와의 치정, 금전, 원한 관계 이런 부분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었죠. 단지 (권 씨를) 의심은 하고 있었지만, 살인사건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계속 수사를 하고 있었죠."
-김영규, 당시 강화경찰서 형사
그런데, 윤희 씨 사건에 대해 알만한 사람이 하나 있었어. 바로, 권 씨가 매일 데리고 다니던 직원 조 씨. 평소 권 씨가 시키는 일은 다 하면서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던 사이였대. 이들을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지켜본 지인은, 윤희 씨가 실종된 후 조 씨가 수상한 행동을 하는 걸 봤대.

"그 집에 바둑을 두러 갔었어. 권 씨에게 SUV 차가 있거든. 조 씨가 차 안을 막 닦더라고 안쪽을, 바깥하고. 냄새가 시너 냄새가 확 나더라고요. 그 시너인가, 휘발성. 냄새가 확 나는 거야. 그러고는 '형님 다 닦았어요!' 그러더라고. 그런데 차 안을 시너로 닦을 일이 없잖아. 내가 보기에 그 차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리고 문 여는 데 있잖아. (대시보드가) 깨졌더라고. 그거 안 깨지는 거거든 어지간하면."
-김 씨, 권 씨의 지인
그 차 안에서 무슨 일인가 벌어진 걸까? 평소 권 씨의 심부름을 도맡아 하고, 그날도 권 씨의 차를 깨끗이 닦던 조 씨는, 뭔가를 알지도 몰라. 그런데 더 수상한 건, 언제부턴가 조 씨는 술에 취하면 동네를 돌아다니며 "내가 말야, 다 알고 있어. 내가 입만 열면 그 자식은, 바로 징역이야" 이런 이야기를 했대. 어쩌면 조 씨는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을 지도 몰라.
"(조 씨가) 다니면서 그랬대. 동네 사람들한테 '그 XX 내가 고발하면 바로 징역가'. (조 씨가) 윤희 씨를 보고 '작은 형수'라고 불렀어요. '그 XX가 이윤희 씨를 어떻게 한 거 다 알아' 라며…"
-김 씨, 권 씨의 지인
이 얘기는 형사들 귀에도 들어갔고, 형사들은 조 씨를 불러다가 추궁했어. 하지만 조 씨는,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했대. 형사들이 몇 번이고 진술을 받으려 했지만, 그 때마다 조 씨는 입을 닫아버렸어. 그런데,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 윤희 씨가 실종되고 3년이 흐른 2004년 9월. 갑자기 조 씨가 사라져 버린거야.
▲ 조 씨도 사라졌다
조 씨의 친구가 한달이 넘도록 연락이 안된다고 경찰에 신고했던 거지.

조 씨가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던 기록이야. 조 씨는 경찰서,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어. 특히 마지막 통화를 한 사람은 조 씨가 평소에 알고 지내던 강력계 형사였어. 술에 잔뜩 취해 전화를 건 조 씨는 2분 15초 동안 이런 말을 했대.
"형님, 그 자식이요. 진짜 나쁜 놈이에요. 제가 다 말할게요. 그 놈이 뭔 짓 했는지 내가 다 말한다니까."
조 씨는 다음날 형사와 만나기로 약속까지 했어. 그런데 그 길로 사라져 버린 거야. 신고를 받은 형사들은 탐문에 나섰어. 그리고 조 씨가 사라진 날, 그를 봤다는 주민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
"그 양반 내가 봤는데 술이 좀 된 거 같더라고. 그런데 권 씨에게 뺨을 막 맞고 있더라니까."
조 씨가 사라지기 전에, 권 씨와 함께 있었다는 거야. 그런데 권 씨에게 수상한 점이 또 있어.

소유권 이전 등기신청서. 조 씨가 소유하던 땅을 권 씨의 명의로 바꾼다는 신청서야. 이상한 건, 문서가 작성된 날짜가, 2004년 10월 11일. 아까 조 씨가 형사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날짜는, 2004년 9월 21일이야. 이 문서는, 그 후에 작성된 거야. 조 씨가 실종 되고 약 보름 뒤에 작성된 거야.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야. 이건 또 다른 부동산 매매 계약서야. 이 부동산을 파는 사람은 윤희 씨. 이번에도 날짜는 2002년 1월 17일. 윤희 씨가 실종된 날은 2001년 12월 17일. 그런데 실종되고 한달 뒤에 작성된 계약서야. 그러면 이 계약서를 쓴 사람은 누구? 확인 결과, 권 씨였어.
"어머니 앞으로 아파트까지 3개 있었는데 아파트는 사람 없어지자마자 덜렁 팔아버렸고, 사람이 실종됐는데 이 사람은 저희 엄마를 대신해서 모든 걸 다 하고 있었던 거죠. 그러니 의심이 안 갈 수가 없죠."
-정연주(가명), 실종된 윤희 씨의 딸
윤희 씨와 조 씨가 사라진 뒤, 권 씨가 이들의 부동산을 전부 관리했어. 윤희 씨의 땅 역시 권 씨가 판 거야.
사실 권 씨는 강화도에서 알아주는 땅부자였어. 얼마나 땅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지, 강화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대. 마을 사람들은 권 씨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

"권 씨가 어려서는 우리 같은 촌사람으로 살았는데, 한참 됐어. 몇십 년 전이지. 그 사람이 한 30대 정도 됐었을까? 부동산 바람이 나기 시작했어 강화도에. 어떻게 그쪽으로 눈이 떠서 부동산에 손을 대기 시작했어."

"평당 300원에 사서 1000원에도 팔고. 막 그러니까 어마어마한 부를, 진짜 그 촌사람이. 상식 이상의 돈을 번 거야."
강화도에 부동산 열풍이 불던 시절, 권 씨는 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 그리고 땅값이 오르면서 많은 돈을 벌었대. 그 뒤로 더 많은 땅을 사들이면서 땅부자가 된 거야. 그렇게 권 씨는 강화도에서 부동산 업자로 이름을 날렸대. 그리고 윤희 씨와 조 씨가 부동산을 산 것도, 권 씨의 권유 때문이었대. 그런데 이들이 사라지고 땅에 대한 권리를 전부 권 씨가 갖게 된 거야.
특히 조 씨는 사라지기 전, 평소 형님처럼 따르던 권 씨와 자주 다퉜다고 해. 바로 조 씨의 땅 때문이었어. 몇 년 전에 권 씨는 집 없이 혼자 살던 조 씨에게 강화도에 있는 자신의 땅을 팔았대. 조 씨는 20평 남짓의 그 작은 땅에서 컨테이너 박스를 두고 생활했대.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권 씨가 그 땅을 돌려달라는 거야. 조 씨가 그럼 돈을 달라고 했더니, 권 씨가 돈은 나중에 줄 테니 명의부터 바꿔달라 했다는 거야. 당연히 조 씨는 이를 거절했고, 그 때부터 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대. 조 씨가 술에 취해서 권 씨에 대한 말을 하고 다닌 것도, 이 때부터였어.
조 씨를 마지막으로 본 주민이, 조 씨가 권 씨에게 뺨을 맞고 있었다고 했잖아. 결국 화가 난 조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형사에게 전화해, 모든 걸 말하겠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채 갑자기 사라진 거야.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수상한 사람이 누구야? 바로 권 씨야.
조 씨가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 그리고 보름 뒤 조 씨의 땅 권리를 가져간 사람. 이윤희 실종 사건에 이어, 또 다시 유력 용의자가 된 거야. 권 씨, 이번엔 뭐라고 했을까?

"이윤희 사건을 한번 겪었기 때문에 담력이 커져서, 조 씨에 대해서는 '난 모른다. 그날 외포리에서 맥주 먹고 헤어진 게 전부다. 내가 죽였다면 형사들이 사체를 찾아와 봐라, 그럼 내가 인정해 준다' 이렇게…"
-김영규, 당시 강화경찰서 형사
다짜고짜 시신을 찾아오면 인정하겠다는 거야. 게다가, 그 부동산 계약서도, 이상할 게 전혀 없다고 주장했어. 윤희 씨와 조 씨가 사라지기 전에, 땅을 넘기기로 합의했다는 거야.
이번에도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어. 진실을 알기 위해선 조 씨를 찾아야 해. 형사들은 권 씨 집 앞을 파보기도 하고, 인근에 있는 바다도 수색했어. 한번은 시신을 잘 찾는다는 스님까지 데리고 야산을 전부 뒤졌대.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조 씨의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어.
권 씨에 대한 묘한 소문이 생긴 건, 바로 그 때부터였어. 권 씨와 엮이면 죽는다는 소문. 권 씨는 두 사건 모두 무혐의를 받았어. 용의선상에서 벗어났지만, 마을 사람들은 권 씨가 두 사람을 살해했을 거라 의심했어

"어유 그냥 뒤숭숭했지 뭐 사람들이. 권씨 집 주변에도 가질 않았어 무섭다고. 다 관련 있는 사람들이잖아. 돈하고 땅하고 관련된 사람들. 그래서 죽었다고…"
-김 씨, 권 씨의 지인
그런데 그 무렵에 강화도 일대가 또 다시 떠들썩해지는 사건이 발생했어. 이번엔 살인 사건이야.
▲ 이번엔 살인이다
2006년 강화도의 한 펜션을 관리하던 박 씨가 야산에서 살해된 채 발견됐어. 부검 결과, 시신의 부패 정도가 심해서 정확한 사인을 알 수는 없었지만, 무려 사채의 28군데가 골절돼 있었어. 아주 크고 많은 외력이 가해졌다는 뜻이야. 형사들은 범인이 박 씨와 아주 깊은 원한 관계에 있을 거라 추정했어. 그리고 박 씨와 원한 관계이 있던 한 사람, 권 씨가 유력 용의자로 지목됐어.
왜 또 권 씨였을까. 이번에도 역시, 땅문제였어. 권 씨의 땅 바로 앞에 박 씨네 가족이 지은 펜션이 있었거든. 근데 펜션 진입로 때문에 권 씨의 땅이 막혀버린 거야. 이 문제로 매일같이 권 씨는 박 씨네 가족들과 싸웠대. 그러다 펜션 관리인 박 씨가 살해된 채 발견된 거야.
형사들은 박 씨 사망 추정 시각에 권 씨가 어디에 있었는지 추적했어. 권 씨의 휴대전화 기지국 위치를 추적한 결과, 박 씨네 펜션 근처로 나왔어. 박 씨가 살해당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 이번에도 역시 권 씨였다는 거야. 심지어 그날 박 씨의 시신이 발견된 야산에서 권 씨가 내려오는 걸 본 사람도 있어. 그렇게 권 씨는 두 번의 실종 사건에 이어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된 거야.

"탐문을 하다 보니까 매점이 있습니다. 그 매점 주인 아들로부터 어떤 제보를 받습니다. 최근에 펜션 관리자하고 권 씨가 엄청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 우연히 봤는데 권 씨가 그 둑에서 상당 시간 펜션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섬찟했죠. 제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게, 실종 접수돼서 권 씨 집을 갔는데, '펜션 관리하는 분이 없어졌다는데, 혹시 그분 잘 알아?' 첫마디를 했더니, 그때 그 눈빛을 정확히 기억하죠. 탁 쳐다보더니, '어 그래? 그 자식 없어졌어? 왜 없어졌대?' 이렇게 저한테 반문한 거예요."
-김영규, 당시 강화경찰서 형사
그런데 권 씨가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의심되는 아주 수상한 정황이 드러났어. 박 씨 살해 추정 시간에 권 씨가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는데, 확인해 보니 한 보안업체였어. 박 씨 펜션에 그 업체의 보안 장치가 달려 있었거든. 그 통화에서, 권 씨는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해.

권 씨: 뭣 좀 물어보려고요. 보안장비를 설치하면, 사시사철 비디오로 감지가 되나요?
보안업체 측: 그건 CCTV고요. 보안장비는 누가 침입하면 저희 측에 경보가 울리는 기기입니다.
권 씨: 그럼 누가 왔다 갔는지는 모르겠구만요. 예, 알겠습니다.
앞선 두 사건과 다르게 이번엔 시신이 발견됐어. 게다가 범행 동기도 있고, 수상한 통화기록까지 확보됐어. 형사들은 곧바로 권 씨를 살해 혐의로 체포하고 구속 영장을 청구했어.
그런데 당직을 서던 김영규 형사가, 유치장에 있던 권 씨로부터 만나자는 요청을 받았어. 유치장에 간 김 형사는 권 씨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어.

"밤에 가니까 권 씨가 담배가 있으면 달라고 하더라고요. 담배 6대를 줄담배를 피웠어요. 권 씨가 정수리에 머리숱이 많이 빠져있어요. 근데 이 머리에서 정말 육안으로 보이게끔 땀방울이 쭉쭉 흘러내리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 사건이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물어서, 사체가 나온 상태에서 무슨 할 말이 있느냐. 그리고 마지막 당신이 산에 갔다 오는 걸 목격자가 봤다고 제가 이야기 했더니, '그러면 내가 우발적으로 죽였다 하면 얼마나 살겠느냐' 잠깐만 담배 한 대만 더 주라고 해서 또 피우면서, '그럼 내가 생각을 해보겠다'…"
-김영규, 당시 강화경찰서 형사
혹시 권 씨에게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걸까? 어쨌든 이번에야말로 권 씨의 혐의를 입증할 기회야. 그런데 다음날 아침, 권 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어. 살해 동기와 통화 내용만으로는, 살해 증거로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였어. 이렇게 된 상황에선 권 씨의 자백이 중요해. 지난밤에 생각해보겠다던 권 씨, 자백을 했을까? 아니, 바로 태도를 바꿨지.

"어젯밤에 저와 얘기했던 내용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의기양양해서는 '봐라! 내가 무슨 사람을 죽였다고 그러냐. 내가 죽였으면 이렇게 풀려나겠나' 이렇게 된 거죠."
-김영규, 당시 강화경찰서 형사
형사들은 어떻게든 살해 혐의를 입증하려 보완 수사를 했지만 다른 증거를 찾을 수 없었어. 결국 권 씨는 이번에도 무혐의로 풀려나게 돼. 세 개의 사건, 이 사건들의 유력한 용의자였던 권 씨는 이렇게 세 번이나 용의선상에서 벗어났어.
▲ 강화도의 무법자
권 씨, 원래 강화도에서 알아주는 땅부자라고 했잖아. 근데 왜 자꾸 사람들과 땅문제로 갈등이 생긴 걸까? 권 씨는 자신이 갖고 있던 땅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그 돈으로 또 땅을 사고, 그 땅을 담보로 또 돈을 빌리며, 땅 돌려막기를 한 거야. 그런데 이 땅값이란 게 일정하지 않잖아. 땅값이 떨어지면서, 권 씨가 갚을 돈만 늘어나게 됐어. 당시 권 씨가 은행에 갚아야 할 돈은 원금만 약 25억원. 한달에 내야하는 이자만 830만원 정도야. 권 씨는 빚을 갚기 위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땅을 억지로 사게 했어.

"계약서도 가짜 계약서 자기가 만들고, 날인도 자기가 도장 파서 신고하고. 그리고 계약서 하나 잘못 쓰면 그거 가지고 무조건 물고 늘어지는 거예요."
-마을 피해자

"개를 가져다가 목을 잘라서 길에다 놓고, 케첩을 가져다가 뿌려서 피처럼 만들어 놓고. 어느 날은, 교회 안에서 막 불이 붙는 거야. 간신이 껐는데 내부가 다 새까맣게 탔지 뭐. 우리 보고 땅을 사라고 그러니까. 어차피 권 씨가 괴롭힐 걸 아니까, 억지로 땅 70평을 샀어요."
-마을 피해자
동네에 권 씨에게 당한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었어. 게다가 사람들에게 땅을 강압적으로 팔며 온갖 사기 행각도 서슴지 않았어. 건축이 안되는 땅에 거주가 가능하다면서 거짓으로 땅을 팔고, 살 때보다 10배가 넘는 값을 받기도 했어. 그러다보니 땅 문제로 걸리는 송사가 한 두건이 아니야. 심지어 친했던 친구에게도 사기를 쳐서 땅을 팔기도 했대. 결국 친구와도 송사를 벌이게 됐어. 그런데 권 씨는 이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아주 잔인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어.

"내가 (권 씨) 땅을 샀는데 믿고 샀지. 그 당시만 해도 나한테 설마 그럴 줄 몰랐지. 이전이 안되는 땅이야 알고 보니까. '너 그럼 다시 돈 내놔' 그러니까, 돈도 없대. 그러다 옥신각신 싸움까지 간 거야. 그러던 중 전화가 왔어요. 앉아서 전화를 받는데, 뭔가에 맞아 아찔한 느낌이야. 그 때 맞은 거예요, 전화 받는데. 급소가 띵 하더라고요. 만약에 내가 거기서 기절했으면, 나 이 세상 사람이 아니야."
-김 씨, 권 씨의 지인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친한 친구마저 해하려 한 거야. 권 씨는 그 동네에서 아주 위험한 사람으로 통하게 됐어.

이게 전부 권 씨의 전과들이야. 건축법 위반, 도로교통법 위반, 협박, 상해, 배임, 사문서 변조, 위증, 사기, 절도 등 무려 전과 33범이야.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경찰서를 제집처럼 드나 들었어. 법 따위는 신경 안 쓰는 무법자가 된 거야.

그렇게 33개의 전과가 생긴 권 씨는 2001년 이윤희 씨 실종 사건, 2004년 조 씨 실종 사건, 2006년 펜션 관리인 박 씨 살인 사건까지. 무려 3 건의 강력사건 용의자가 됐어. 그리고 박 씨 살인사건이 발생한지 8년 뒤 2014년, 임재민 씨 살인 사건이 발생하며, 네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된 거야.
그럼, 임 씨와 권 씨는 무슨 사이였을까? 이번에도 역시 땅으로 엮인 사이였어. 임 씨는 강화도에 땅을 사고 펜션을 짓고 가족들과 노후를 지낼 생각이었대. 그래서 땅을 알아보던 중 알게 된 사람이 바로 권 씨였던 거야. 그때부터 둘의 악연이 시작된 거지.
권 씨의 땅은 빚으로 돌려막은 상태라고 했잖아? 임 씨가 권 씨의 땅을 사려고 보니, 그 땅도 은행에 담보로 잡혀 있던 거야. 권 씨는 우선 땅을 사면 문제를 해결해주겠다 했고, 그 말을 믿은 임 씨가 아주 위험한 거래를 했던 거야. 그런데 약속과 다르게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자, 권 씨와 담판을 지으러 강화도로 갔던 거야.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권 씨는 세 번이나 용의선상을 교묘하게 빠져나간 사람이야. 예전 사건을 통해, 증거가 없으면 빠져나갈 수 있다는 걸 배웠을 거야. 하지만 이제는 전보다 수사기법이 많이 발전했어. 형사들은 이번에 권 씨가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꼼꼼하게 증거를 찾기로 했어. 권 씨, 이번엔 반드시 잡아야해.

"강화경찰서에 있는 동안에 반드시 잡아서 구속시켜 버리겠다. 범죄 꼭 해결하겠다.."
-서춘원, 당시 강화경찰서 강력팀장

"분야별 항목별로 수사 기법을 우리 수사관들도 서로 공유를 안 하고, 각자 파트별로 파고 들어갔죠. 그리고 수뇌부만 이거를 알고 하다못해 경찰청에도 보고하지 말고. 왜냐하면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소문나면 권 씨가 또 대처할 수 있으니까."
-손성진, 당시 강화경찰서 강력팀
▲ 반드시 잡는다
이제 권 씨가 살인범이란 증거를 하나씩 찾아볼 거야. 형사들은 먼저, 강화도 일대 CCTV부터 확인했어. 그리고 강화를 오가는 대교의 CCTV에서 임 씨의 차를 발견했어.

임 씨의 차가 강화도로 들어가는 장면. 이때가 오전 11시 24분. 강화도를 나가는 시간은 오후 1시 18분. 강화도에 들어오고 두시간 뒤 임 씨의 차는 강화도를 빠져 나갔어. 그런데 임 씨의 집은 인천이야. 강화도를 나간 임 씨의 차가 향한 곳은 경기도 김포였어. 임 씨는 왜 김포로 갔을까?

임 씨의 차는 김포의 한 아파트 단지에 세워졌어. 그리고 그 차에서 한 남자가 나온 게 찍혔어. 임 씨가 강화도에 들어갈 때 입고 있던 옷은 밝은 색이야. 그런데 이후 김포에 도착한 남성의 옷은 검은색이야. 인상착의가 달라. 임 씨의 차를 몰고 김포에 온 남자는, 임 씨가 아니였어. 검정색 옷을 입고 임 씨의 차를 운전한 이 남자, 누굴까.
이 남자는 임 씨의 차를 주차한 뒤, 근처에서 택시를 탔어. 택시를 타고 강화도에 들어온 이 남자는 한 공터에서 하차했어. 형사들은 그 시간에 강화도로 들어온 택시를 수색했어. 수소문 끝에 그날 김포에서 승객을 태워 강화로 왔다는 택시기사를 찾았어. 그 기사는 자신이 태운 손님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어.
그날 승객을 태우려 김포를 돌아다니던 택시기사는 길에서 두리번거리는 한 남자를 봤대. 택시를 잡나 싶어 옆으로 갔더니, 타지 않더라는 거야. 그래서 다른 손님을 태웠다가 한참 뒤에 다시 돌아왔는데, 같은 자리에 그 남자가 똑같이 서있더래. 그런데 그땐 이 남자가 택시를 잡았고, 강화로 가자고 한 거지.

"이렇게 들어올 때인가, 그 손님을 봤어요. 택시를 잡으려는 행동처럼 왔다갔다 이렇게 좀 두리번거리시더라고요. 그래서 동네 손님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니, 그 손님이 그제야 택시 잡는 시늉을 하더라고... 돈을 내가 만졌을 때 젖어 있더라고요. 완전히 물에 푹 젖은 건 아니고, 좀 축축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땀이었는지 물에 젖었는지는 모르겠고."
-당시 택시기사
형사들은 택시 기사에게 권 씨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어. 이 사람 맞냐고. 그러자 맞다고 해. 임 씨의 차를 김포로 몰고 간 남자, 바로 권 씨였어. 권 씨가 김포에 임 씨의 차를 버린 거야.
그리고 CCTV를 추적하던 형사들은 또 다른 사실을 발견했어. 권 씨가 집에서 여러 번 나간 게 포착된 거야. 권 씨가 이번엔 자신의 트럭을 몰고 어디론가 향했어. 형사들은 권 씨가 트럭을 몰고 간 방향을 수색했어. 그리고 도로 한 가운데 있는 작은 풀숲에서 뭔가를 발견했어.

임 씨의 휴대전화와 지갑, 사원증이 발견됐어. 그리고 이 물건들에서 아주 중요한 단서가 나왓어.

"제가 유류품을 수고해온 거를 지문 감식을 하면서, 그 유류품에 있던 어느 식당 명함에서 일부 지문이 나왔어요. 그래서 그 지문을 현출해서 이게 누구의 지문인가 경찰 프로그램을 돌려서, 권 씨의 지문이란 게 확인이 됐어요."
-손성진, 당시 강화경찰서 강력팀
그리고 권 씨가 트럭을 몰고 다른 방향으로 또 나간 게 확인됐어. 그쪽엔 야산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야산은 임 씨의 시신이 발견된 곳이었어.
CCTV엔 권 씨의 수상한 행적이 담겨 있고, 버려진 임 씨의 물건에선 권 씨의 지문이 나왔어. 지금부터는 진실을 밝히려는 형사들과, 또 다시 용의선상에서 빠져 나가려는 자의 팽팽한 싸움이 시작될 거야.
▲ 끝없는 진실 게임
권 씨의 주장을 직접 들어볼게.

"갑자기 그날 당일에 (임 씨로부터) 전화가 한 10시 반 정도에 온 거예요. 그래서 만났다가, 20~30분 뒤에 간 게, 그게 다입니다… 그 피해자 지갑에서 지문 나왔다는 거는, 내 지문이 있을 수도 있어요. 우리 거실 안에서 스마트폰 가지고 서로 조작하고 그걸 나한테 가르쳐주고 그러다가. 임 씨가 화장실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내가 뭐 습관이 남의 것 지갑 만져보는 건 안 좋지만, 하여튼 만진 적 있었어요."
-권 씨
형사들이 증거를 들이밀며 추궁했지만, 권 씨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범행을 부인했어.

"그때그때 말도 안되는 답변을 했어요. 근데 이 사람이 계속 초지일관 '자기는 아니다', '왜 이런게 나왔는지 모르겠다' 허허 웃고 그랬거든요."
-손성진, 당시 강화경찰서 강력팀

"임 씨의 시신이 발견된 쪽으로 차를 몰았고, 거기서 시신이 발견됐고. 그런데 '그게 뭐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해요?' 그랬더니, '나도 모르겠어요 왜 그렇게 된 건지.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요' 그렇게 완전하게 부인을 합니다."
-서춘원, 당시 강화경찰서 강력팀장
심지어 조사를 받으면서, 형사들에게 이렇게 말했어.
"여기 나 모르는 사람 있어? 내가 여기 한두 번 오는 것도 아닌데 이러지 말자고. 우리 나가서 밥이나 한끼 합시다. 내가 살 게."
현장 검증에서도 권 씨는 계속 범행을 부인했어. 그때그때 말을 바꾸다가, 어느 순간 이게 말이 앞뒤가 안 맞는다 생각하면, 그냥 입을 닫아버려. 권 씨는 계속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어. 이번엔 죄를 물을 수 있을까.
혐의를 완벽하게 입증하려면, 권 씨가 임 씨를 살해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필요해.

현장 검증이 한창 이뤄지던 때에, 몇몇 형사들이 권 씨 집으로 향했어. 권 씨 집에 도착한 형사들 눈 앞엔, 넓은 부지가 펼쳐져 있었어. 권 씨가 살던 곳은 무려 800평이 넘어. 거기엔 권 씨가 거주하는 컨테이너, 장어 야식장과 야외 식당이 크게 있었어. 그리고 온갖 동물을 기르던 우리에, 과수원에, 큰 연못까지 있었어. 이렇게 넒은 곳에서, 결정적인 증거 찾을 수 있을까?
과학수사팀, 국과수까지 동원돼서 며칠간의 수색 작업이 어뤄졌어. 그리고 현장을 수색하던 손성진 형사의 눈에 뭔가가 들어와. 손잡이 아래에 묻은 빨간 액체 한 방울을 발견한 거야.

"거기가 일반 주택이 아니라서, 만들어진 주택이에요. 문 열면 바로 거실이에요. 샌드위치 패널 문이거든요. 문을 여는 와중에 문손잡이 아래에 샌드위치 패널 안에 스티로폼이 있지 않습니까? 파손된 틈으로 빨간 방울들이 보이는 거예요."
-손성진, 당시 강화경찰서 강력팀
곧장 채취해서 분석을 의뢰해. 결과는, 바로 임 씨의 혈흔이었어. 그리고 권 씨의 슬리퍼에서도 임 씨 혈흔에 대해 양성 반응이 나왔어.
임 씨의 사체 부검 결과 기억나? 후두부 손상에 의한 사망이었다고 했지? 무언 가에 맞은 건데, 특히 임 씨의 뒤통수에 1cm 정도의 구멍이 발견됐어. 1cm 정도 구멍을 낼 수 있는 흉기? 권 씨의 집을 수색하던 중, 이게 발견됐어.

이건 어구. 물고기를 찍어 건질 때 쓰는 도구야. 권 씨 거주지에 장어 양식장이 있다고 했잖아. 이런 도구가 수두룩했어. 형사들은 이 어구를 범행 도구라 추정했어.
권 씨의 집에서 발견된 임 씨의 혈흔, 범행 도구로 추정되는 어구까지. 증거가 전부 발견됐어. 이젠 진짜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이번엔 죄를 인정했을까? 현장 검증에 가서 "피해자가 여기서 못 떠나고 있다. 그러니까 '미안하다' 하고 참회해"라고 하자 권 씨는 이렇게 말했어.

"아니, 참회는 할 수 있어. 그런데 내가 저기 가서 '미안하다' 그러면 또 몰아치려고?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에요!"
결정적 증거 앞에서도 권 씨는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어. 오히려 자신을 범인으로 몰아간다고 형사들을 다그쳤어. 이제라도 잘못을 뉘우치고 피해자에게 잘못을 빌라는 말에도,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은 전혀 없었어.

"나를 똥개 대하듯이 삶아 먹지? 보신탕 해가지고? 나를 갖다 끓여 먹으라고! 이거 완전 나쁜 놈 된 거 아니냐고! 이게 나쁜 놈 만든 거 아니야? 아주 보신탕 끓여 나를 갖다가!"
-권 씨
세 번의 용의자 신분에서 살인사건의 범인이 된 권 씨. 결국 13년 만에 법정에 섰어. 법정에 선 순간에도 자신은 억울하다고 끝까지 우겼대. 심지어 모든 증거들은 조작이라고, 형사들을 수차례 고발하기도 했어.
끝까지 빠져나가려 발버둥 쳤지만, 결국 그는 임 씨를 살해한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어. 오랜 시간 강화도 일대를 공포로 떨게 했던 권 씨는, 그 많던 땅도, 돈도, 아무것도 쥐지 못한 채 작은 교도소에 갇히게 됐지.
▲ 끝내 덮인 진실
임 씨 살인사건은 모든 진실이 밝혀졌지만, 윤희 씨와 조 씨, 박 씨의 살인 사건은 20여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미제로 남아있어. 권 씨가 인정하고 자백해야 시신이라도 찾을 텐데. 권 씨는 이 세 사건에 대해 묻자 어떻게 말했을까?

"그거 다 경찰에서 다 밝혀졌어요. 경찰에 물어보세요. ('난 혐의 없다?') 그럼요. ('사실로 밝혀진다면?') 아 대가 받아야죠."
2014년 임 씨 살인 사건을 수사하며 세 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진행됐어. 연주 씨는 엄마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권 씨가 입을 닫으면서 찾지 못했어. 그래서 연주 씨는 그때 쓰던 전화번호를 여전히 바꾸지 않고 있어. 권 씨가 이제라도 진실을 말하지 않을까, 혹시나 그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서 연락이라도 오지 않을까 해서. 그 옛날 번호를 차마 바꾸지 못한 거지. 연주 씨의 시간은 24년 전인 2001년 11월 17일에 멈춰있어.

"저희 엄마요, 되게 강했어요. 강하게 사셨어요. 속이 강한 사람은 아닌데, 혼자 저를 키워야 했고 책임감이 되게 강했던 사람이고. 강하게 사시려고 되게 노력하신 분이에요. 엄마 돌아가셨을 나이를 계산했어요. 그랬더니 우리 엄마가 너무 젊었던 거예요. 제가 엄마 나이가 돼 가니까, 엄마 돌아가시기 전 즈음 나이가 돼 가니까. 우리 엄마 많이 젊었구나… 어쨌든 이게 참 실종자 가족 입장에선 시신이라도 찾게 조금. 얘기해주면 얼마나 고맙겠어요. 이미 좋지 않은, 한참 지나가 버린 일이잖아요. 위치라도 알려주면 얼마나 고맙겠어요. 지금은 그렇죠."
-정연주(가명), 실종된 윤희 씨의 딸
시간이 흘러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된 연주 씨는, 요즘 들어 엄마 생각이 자주 난다고 해. 보고 싶을 때 찾아갈 산소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연주 씨의 오랜 간절함이 이제라도 이뤄질 수는 없을까.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은 권 씨 뿐이야. 하지만 '꼬꼬무' 방송을 준비하며 권 씨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듣게 됐어. 권 씨가 이 모든 진실을 묻어둔 채 사망했다는 거야.
유일하게 진실을 아는 권 씨가 사망한 지금. 피해자의 가족들이 기댈 수 있는 건, 진실을 아는 또 다른 사람 뿐이야. 2001년 강화도에서 실종된 이윤희 씨에 대해, 혹시라도 권 씨에게 이야기를 들었거나, 윤희 씨의 흔적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꼭 얘기해줬으면 좋겠어. 이번에야말로 연주 씨의 오랜 기다림이 끝나길 바라.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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