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을 돌아 또다시 설날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인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분명 1월1일 되자마자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다 나누었던 것 같은데, 음력설이 되면 똑같은 인사를 또 한다. 덕분에 새해 복은 늘 두 번씩 받는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어릴 때는 설날이 좋았다. 설날 아침의 공기는 다른 날과 달랐다. “이다야! 다른 사람 다 왔데이! 일어나라!” 할머니 집의 절절 끓는 온돌에 거의 구워지다가 눈을 뜨면 성에 낀 창문이 보였다. 밖으로 나가면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채로 마당에 쌓인 눈을 밟아본다. 하늘은 아주 옅고 푸르고 구름도 적다. 신기하게도 설날 당일엔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이 거의 없고 대부분 화창한 겨울날이었다. “깟깟” 늘 듣는 까치 소리도 설날에는 운치 있게 느껴진다.
설날엔 먹을 게 많았다. 첫 상은 무조건 떡국이다. 경상도식 떡국엔 두부와 소고기를 함께 볶은 ‘꾸미’가 고명으로 올라온다. 무, 도라지, 고사리, 콩나물, 시금치의 오색나물도 빠질 수 없다. 국물이 자작하게 조리하는 것이 경상도식 오색나물의 특징이다. 큰 대접에 나물을 덜어 참기름과 깨소금을 듬뿍 넣은 간장으로 밥을 비벼 먹으면 맛이 없을 수 없다. 아빠는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이거 하나만 밥에 비벼줘도 평생 먹겠다 했다. 산적, 동태전, 두부전 등 다양한 전도 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면 ‘감주’를 한 대접 들이켜 입가심해야 한다(경상도에서는 식혜를 단술, 또는 감주라 부른다).
설날이 좋은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세뱃돈이다. 특히 난 형제가 없어서 이득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세뱃돈은 철저한 기브 앤드 테이크다. 내 자식이 받은 만큼, 남의 자식에게 줘야 한다. 삼촌이 나에게 5만원을 주면, 삼촌의 두 자녀는 우리 아빠에게 3만원씩 받는다(돈을 줄 때는 반드시 1, 3, 5, 10의 원칙을 지켜야 하므로 2만5000원씩 주지는 않는다). 부모님은 할머니에게 용돈을 드리고, 할머니는 다시 이 용돈을 손주들에게 분배한다.
내가 설날을 손꼽아 기다릴 때마다 엄마는 “역시 애들은 명절이 좋지” 하고 약간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 뜻을 영영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명절이 부담스러워졌다. 고3 때, “이다는 공부 잘하나? 어느 대학 갈라 하노?” 질문을 듣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자 “앞으로 뭐 해 먹고사노? 취직해야 안 되나?” 하는 취조가 이어졌다. 직업을 가지고 나자 “이다도 이제 결혼해야지. 좋은 남자 없나?”로 질문이 변화했다. 곤란한 기색을 보이는 나에게 엄마는 항상 “어른들이 잘 모르고 인사로 하는 말이니까 대충 좋게좋게 대답해라. 어른들도 별로 안 궁금하면서 물어보는 거다”라고 일러주곤 했다.
“저 혼자 입에 풀칠할 정도는 되죠, 뭐” “좋은 사람 있으면 빨리 결혼해야죠” 하는 영혼 없는 답변이 가능해지면서 나는 스스로 어른이 됐음을 실감했다. 심지어 “내년에 결혼하려고요” 하는 공수표를 날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떤 사람이 좋노, 이상형을 말해봐라”라는 질문에는 “제가 존경할 수 있고, 저를 존중해주는 사람이요”라는, 누구도 쉽게 대응할 수 없는 답변까지 정해놨다.
사실 친척들 간의 어색한 대화나 과도한 오지랖은 <삼시 세끼> 같은 예능 프로 하나만 틀어놔도 뚝딱 해결된다. 유해진이 통발로 물고기를 잡으려 하는 장면 하나 가지고도 다들 자기 옛날얘기를 하면서 1시간은 넘게 시간이 지나간다. “에헤이, 저렇게 하는 거 아닌데!”
명절이 되고 사람들이 모이는 게 무작정 싫은 건 아니다. 다만, 공평하지 않다는 거다. 할아버지, 아빠, 삼촌을 비롯한 남자들은 명절에 벌초를 빼곤 할 일이 딱히 없다. 그러니 노상 텔레비전 앞에 모여 있다. 여자들만 머리를 질끈 묶고 한나절 동안 바닥에 앉아 망부석같이 전을 부친다. 전은 아무리 부쳐도 끝이 없다. 아빠나 삼촌이 일을 안 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남자 사촌 동생도 남자들 무리에 끼면 왠지 밉다. 내 남동생이라면 벌써 등짝 한 대를 때리고 옆에 앉혀서 밀가루를 묻히게 하겠지만, 남이라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이렇게 열심히 부친 전은 다음날이 되면 인기도 없다. 아무렇게나 봉다리에 들어가 너도 한 봉지, 나도 한 봉지 뿔뿔이 흩어지고 잡탕찌개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집안의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다들 나이가 많아지면서 상황이 변했다. 장남인 아빠는 앞으로 명절에 모이지 말자는 선언을 했다. 모여서 힘들게 음식 만들지 말고, 어버이날과 생신, 그리고 기일에만 밖에서 밥 한 끼 같이 먹자는 거다. 아빠 만세! 그동안 ‘테레비’ 보던 아빠를 째려보던 것이 한 세월인데 나름 불공평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걸까?
이제 명절은 오로지 나의 것으로 변했다. 설에 집에 내려가지 않는다고 하면 남들은 일이 많아서 못 가는 줄 알고 가엽게 여기지만 천만에. 설에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는 것은 축복 같은 일이다. 그래도 뭔가 먹긴 먹어야 한다. 설날 당일이 되면 문을 열지 않는 집들이 많으니 미리 음식을 사다 놓아야 한다. 아침 일찍 시장으로 나간다. ‘다들 고향에 가 있을 테니 사람 별로 없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은 금물이다. 입구부터 카트를 끈 할머니들이 전투적으로 몰려든다. 이게 바로 ‘오픈런’인가? 시장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으로 빽빽하고 온갖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활기’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과일가게에는 박스가 천장까지 수북이 쌓여 있다. 오토바이를 몰고 온 배달원이 박스를 싣고 비좁은 시장길을 재주껏 빠져나간다.
평소 고등어나 꽁치 같은 밥반찬용 생선을 주로 팔던 생선가게는 커다란 그릴을 꺼내 놓고 차례상에 올릴 돔이며 민어 같은 흰살생선을 쉴 새 없이 구워내고 있다. 분식집에는 페트병에 든 식혜가 몇십 병이나 있다. 떡집에는 매대 가득히 커다란 시루떡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이 누워 있다. 저걸 그대로 들어 올려서 조청에 찍어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침이 꼴깍 넘어간다.
불공평한 명절 모임 사라지고
오로지 내 것이 된 즐거운 설날
시장서 직접 동태전 재료 사고
‘룸메’와 바나나까지 썰어 부치면
스스로 하는 노동에 여유 가득
시장 전체에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이럴 수가, 시장에 있는 거의 모든 가게가 전을 부치고 있다. 분식점에서도, 건어물가게에서도, 신발가게에서도 전부 커다란 철판을 꺼내 놓고 전을 부치고 있다. 설날 대목이 바로 이런 거구나. 저 많은 전을 다 사가고 먹을 사람이 있다니! 서울에서는 떡국에 만두를 넣어 먹는다던데, 그래서인지 만두를 만드는 집도 많다. 한쪽에선 줄을 서서 만두를 사가고, 다른 한쪽에선 기계 같은 동작으로 만두를 제조하고 있다. 떡국에 만두라니! 남쪽 지방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나도 오늘 떡국에 만두를 넣어볼까. 다소 이단적인 생각을 해본다.
평소 시장에 오면 가게를 보는 사람이 보통 한 명, 많아봤자 두 명이다. 하지만 오늘은 집집마다 서너 명씩 손님들을 상대하고 있다. 신기하게도 다들 젊은 사람이다. 대목을 위해 새로 고용한 사람일까? 아니다. 자세히 보면 원래 주인과 새로 나타난 젊은 직원은 이목구비가 똑같이 생겼다. 신기한 게 장사 스킬도 흡사하다. 어릴 때부터 받은 조기교육 때문일까? 주문하면 능숙하게 공중에 매달린 비닐을 하나 잡아채 물건을 넣는다. “여기 있습니다~” 손님에게 줄 때는 바닥을 받치고 손잡이를 건넨다. 난 오늘 미래의 가게 주인을 만난 걸까?
부쳐둔 전을 살까 하다가 동태전 재료만 사서 집에 왔다. 왠지 전을 직접 부쳐보고 싶다. 엄마를 도와 부쳐봐서 어떻게 하는지는 안다. 이제 겨우 노동에서 벗어났는데 굳이 또 스스로 노동을 하다니? 이상하지만 조금 설렌다.
룸메이트 모호연과 같이 전을 부쳤다. 커다란 새마을금고 달력을 부욱 찢어 소쿠리 위에 놓는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키는 사람도 없고 누워서 식혜 갖다달라는 사람도 없으니 여유가 넘치고 너무 재밌다. 얇게 썬 동태에 부침가루를 양면으로 곱게 입힌다. 손으로 살짝 털어주고, 파를 송송 넣은 계란 물에 풍덩 입수시킨다. 내 할 일은 여기까지. 그럼, 모호연이 젓가락으로 건져 지지미판에 예쁘게 놓는다.
나도 질 수 없어 두부를 썰어왔다. 모양은 잘 안 나지만 최대한 예쁘게 해보려고 노력한다. 어느새 부치는 것에 재미를 내 서로 경쟁하고 있다. 남의 것까지 뒤집으려고 애를 쓴다. “피곤하지? 가서 쉬어~” “아니, 괜찮은데?” 이날의 경쟁은 결국 바나나까지 썰어 바나나전을 만들고서야 끝났다.
두어 시간 꼬박 전을 부쳤지만 하도 많이 주워 먹어 결국 남은 건 작은 접시에 몇 개 정도다. 새해 첫 밥상에 올리지도, 누구를 위해 싸줄 일도 없다. SNS에 올릴 필요도 없다. 하지만 사진을 찍어 추억을 간직한다.
오로지 재미를 위해 만든 바나나전을 한 입 먹어본다. 부드럽고 달달한 게 생각보다 너무 맛있다. 하지만 맛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걸 만들면서 함께 보낸 시간이다. 생각해보면 이게 명절의 본질 아닐까? 제사니 전통이니 하는 것을 다 제외하고 나서 보면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만들고 함께 먹는다는 것 하나가 남는다. 이제 그 누구도 시키는 사람이 없지만 나도 그걸 이어나간다. 먹었으니 이제 뭘 하냐고? 낮잠을 푸지게 자고 저녁엔 영화를 보러 갈 것이다. 그 언제보다도 즐거운 설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