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임장가고 美영주권 쇼핑…요즘 돈버는 '투자 노마드족'

2025-04-28

작가인 한상윤(39)씨는 이달 일본 규슈 지방의 구마모토에 33㎡짜리 소형 맨션(아파트)을 300만 엔(약 3000만원)에 샀다. 지난해 후쿠오카에서 같은 크기의 맨션을 1000만 엔에 구입한 후 두 번째 투자였다. 한 씨는 “처음 산 곳은 엔화 기준으로 집값이 2배 오른 데다 매달 임대료로 5만5000엔씩 받는다”며 “투자 비용과 수익률 따져보면 한국보다 낫고, (일본은)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도 적어서 투자를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한국 밖으로 이동하는 ‘투자 노마드 족(유목민)’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터널에 들어서고, 원화가 유독 약세를 띠면서다. 한국이 부채를 뺀 해외에 보유한 자산(순대외 금융자산)은 지난해 처음으로 1조 달러를 돌파했다. 올해 트럼프의 관세 폭격에도 ‘강심장’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는 154억 달러어치(약 22조원, 순매수액) 미국 기업 주식을 샀다.

이들은 지난해 해외에서 5000억원 넘게 부동산 쇼핑도 했다. 차규근 의원실(조국혁신당)이 한국은행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국내 거주자(개인+법인)가 해외 부동산 취득을 위해 해외로 송금한 금액은 3억7580만 달러(약 5354억원)로 집계됐다. 2023년 전체 송금액(3억6650만 달러)을 넘어섰다. 미국 투자이민의 최소 투자금이 2022년 80만 달러(약 11억원)로 뛰면서 미국행 수요가 준 상황에서 해외 부동산 쇼핑(취득)은 꾸준히 늘고 있다. 미국행 허들이 높아지자 일본·영국·호주·아랍에미리트 등지로 눈을 돌린 영향이다.

과거 고액자산가가 상속·증여세를 피해 한국을 떠났다면, 요즘 투자 유목민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더 복합적이다. 최환석 하나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한국의 저성장과 다주택자 규제, 지난해 말 정치적 불안 등이 다각적으로 작용했다”며 “더욱이 유학ㆍ관광이 늘면서 젊은 층 중심으로 해외에 ‘내 집 마련’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 점도 한몫했다”고 말했다.

특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은 관광하면서 부동산 현장을 둘러보는 ‘임장 투어’로 인기가 많다. 지난해 주택 구매를 위해 일본에 송금한 금액은 11월까지 3600만 달러(약 513억원)로 전년(1300만 달러)보다 3배 가까이 증가했다. 2014년 이후 10년래 최대 송금액이다. 일본은 외국인도 규제 없이 부동산을 사고팔 수 있다.

책「서울을 팔고 도쿄를 샀습니다」의 저자인 노윤정 백승 대표는 “엔화 약세와 한국의 다주택자 규제 등이 맞물려 지난해부터 일본 부동산 상담 건수가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었다”며 “일본 소형 맨션은 (한국보다) 투자 부담이 크지 않아 고액 자산가뿐 아니라 30대 월급쟁이도 관심이 많다”고 들려줬다.

투자 유목민은 올해 엔화가치가 뛰는데도 일본 부동산에 관심이 많다. 도쿄 등 대도시 중심으로 임대 수익률과 집값이 동시에 들썩이고 있어서다. 양종욱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국내 투자자가 일본에 법인을 설립하면, 2% 초·중반 금리로 빚을 낼 수 있는 데다 임대수익률은 한국보다 높다”며 “요즘도 도쿄, 오사카, 교토 등 대도시 중심으로 투자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에 따르면 올해 2월 소규모 도쿄 맨션(면적은 30㎡ 이하)의 평균 임차료는 9만8346엔으로 1년 전보다 7% 뛰었다.

일본 국토교토성에 따르면 도쿄 부동산가격지수(2010년=100)는 지난해 12월 170.9로 5년 만에 33.8% 급등했다. 일본 전체로 넓혀보면 같은 기간 평균 25% 뛰었다.

일본에서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 숙박 사업을 하려는 젊은 층도 늘고 있다. 해외 부동산 투자를 하는 동시에 빈방을 활용해 월세보다 더 많은 수익(숙박료)을 챙길 수 있어서다. 일본 오사카에서 10년째 민박 사업을 하는 황대성(54) 사장은 “지난해 9월부터 사업 경험을 소셜미디어(SNS)에 공유했다가 업무에 지장이 생길 만큼 상담 요청이 이어졌다”며 “대부분 30대고, 나이를 속이고 오사카까지 찾아온 고등학생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자녀 교육 목적으로 미국행 티켓(투자 이민)을 사려는 수요도 급증했다. 투자이민 컨설팅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500만 달러(약 72억원)에 미국 영주권을 파는 골드비자 구상안을 발표하자 갑작스럽게 80만 달러 투자이민(EB-5) 관련 상담 전화가 폭증했다”며 “미국행 티겟값이 더 비싸지기 전에 80만 달러에라도 영주권을 받아두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설명했다.

미국 EB-5는 학력과 영어 점수, 투자액 등을 깐깐하게 따지는 호주와 캐나다와 달리 간접 투자로 일자리를 만들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더욱이 미국은 부모 중 한 명이 영주권을 받으면 배우자는 물론 21세 이하의 자녀도 함께 영주권이 발급된다. 교육 목적으로 미국이 인기가 많은 이유다.

현재 싱가포르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이모씨는 “싱가포르도 특히 (고액자산가의 재산을 전담 관리ㆍ운용하는 회사인) 패밀리오피스 설립 요건이 까다롭지 않은 데다 세금 면제 혜택 등으로 부자들이 재산을 지키는 동시에 불릴 곳으로 선호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저성장 늪’에 빠지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한국 밖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머니무브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고 봤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성장은 정체되고, 증시까지 부진하면 투자자들은 해외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며 “자산을 국가별로 분산 투자하고, 높은 수익에 따른 소득 증가는 긍정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특정 국가나 자산에 ‘몰빵(집중 투자)’ 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쏠림은 부작용으로 이어진다”며 “특히 과도하게 올라 조정 가능성이 큰 미국 주식시장에 서학개미가 과도하게 몰려 우려스럽다”고 조언했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 측면에도 지나친 자금 유출은 유동성 감소로 투자가 위축되고, 장기적으로는 기업들이 기업공개(IPO)나 채권 시장에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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