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닥의 미친놈, 밀레이는 누구 ③
오스트리아학파 세례받아
'국가=악' 이라는 무정부 성향
신념 관철 위해 정계에 진출



2023년 가을 아르헨티나 기업인들이 대선 후보 하비에르 밀레이와 간담회를 했다. 대화 도중 밀레이가 옆의 대기업 사주에게 불쑥 물었다. “탈세하고 있죠?” 당황한 기업인은 아니라고 답했다. 밀레이는 정말이냐고 재차 묻다 실망한 듯 이렇게 말했다. “탈세하는 사람이 영웅입니다.”
동석했던 가전업체 피바디의 사주 최도선 회장의 목격담은 밀레이의 사고방식을 잘 보여준다.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의 오른쪽 끄트머리에 선 그는 정부를 악으로, 세금을 정부의 도둑질쯤으로 본다. 스스로 무정부를 지향하는 아나코-캐피털리스트라고 한다.
무정부 성향을 지닌 국가원수. 이 역설이야말로 아르헨티나가 좌파 포퓰리즘과 결별하게 된 출발점이다.
밀레이가 누구인가. 어떤 성향이고, 어떤 배경을 지녔나. 아르헨티나 사람들도 외국인과 마찬가지로 잘 모른다. 워낙 혜성처럼 정계에 진출해 2년 만에 대통령이 됐기 때문이다. 서점엔 밀레이를 다룬 책들이 많이 깔렸다.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구내서점 직원 에르난 로메로는 “인기가 있어서라기보다 궁금해하기 때문에 많이 사간다”고 말한다. 독자 반응을 묻자 “극과 극으로 갈린다. 어중간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밀레이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산층 가정에서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부친에게 자주 얻어맞으며 컸다. 두들겨 맞을 때마다 꼭 여동생 카리나(52)가 다독여 줬다고 한다. 소싯적부터 밀레이의 카리나에 대한 의존도는 매우 높다. 생활비 관리에서 개 먹이 주기에 이르기까지 카리나가 도맡아 해줬다. 밀레이가 카리나를 ‘보스’로 부를 정도다. 지금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밀레이를 밀착 수행한다. 밀레이 남매와 산티아고 카푸토 자문역이 모든 실권을 쥔 ‘철의 삼각형’으로 불린다.
음악에 재능을 보여 록밴드의 리드 보컬을 했고, 주니어 축구클럽에선 골키퍼로 꽤 활약했다.
1980년대 후반 하이퍼 인플레를 겪으며 경제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명문 벨그라노 대학(UCEMA)에서 경제학 학사를, 이어 경제사회개발연구소(IDES)와 토르콰토 디텔라 대학(UTDT)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두 개 취득했다. HSBC은행과 맥시마 AGJP 자산운용에서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일했고,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2010년대 중반 TV에 출연해 신랄한 어조, 괴짜 이미지, 록스타 풍 외모로 주목을 받았다. 수퍼히어로 복장으로 등장하거나, 굉음을 내는 전기톱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강한 시각적 메시지로 시선을 끌었다. 2021년 11월 신생 자유전진당(LLA) 후보로 하원에 입성했고, 2년 뒤 대선에서 승리하며 초고속으로 대통령이 됐다.
하원의원 시절, 매달 자신의 세비를 전액 추첨으로 유권자에게 나눠줬다. 국가가 세금으로 뜯어낸 더러운 돈을 주인인 국민에게 되돌려준다는 뜻에서다. 대중은 열광했고, 얼마나 많은 돈을 받는지 만천하에 드러난 동료 의원들은 경악했다. 2023년 12월 그가 하원에서 받은 마지막 세비 210만 페소(2500달러)까지 추첨으로 뽑은 한 시민에게 줬다.
그의 별명은 ‘미친놈(El Loco)’. 이글거리는 눈, 마구 헝클어진 머리, 불규칙 바운드로 튀는 언행… 이런 겉모습만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를 가까이 겪어본 사람들은 딱 어울리는 별명이라고 한다.
“여러 번 만나 보니 제정신이 아니더라. 그는 무정부주의자다. 제대로 아는 것도 없더라. 또 작은(50m2)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큰 개를 네댓 마리나 길렀다. 월급을 개에게 다 쓴 탓에 제대로 못 먹어 그런지, 내 사무실에 오면 테이블 위의 과자를 깡그리 먹어치우곤 했다. 원래 제정신 아닌 사람들이 재미있긴 하지만,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는 건 심각한 일이다.”
내무무역부 장관(2006~2013)을 지낸 골수 페론주의자로 ‘원칙과 가치’라는 정당의 당수인 기예르모 모레노(70)가 취재팀에 들려준 말이다.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논쟁적 정치인이자 기인인 모레노의 눈에도 밀레이는 제정신이 아니라고 비쳤던 모양이다.
밀레이는 머레이 로스바드(사진)의 '인간 경제 국가'(1962)를 읽고 오스트리아학파의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고색창연한 이름의 오스트리아학파가 도대체 뭔가. 1871년 빈 대학의 카를 멩거가 '경제학 원리'를 통해 자유시장주의를 주장했고, 이에 동조한 제자와 동료들이 합류해 형성한 학파다. 시장은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작동하므로 국가가 끼어들면 되레 망가진다는 게 핵심 철학이다.
오스트리아학파라는 이름은 멩거를 비판하던 독일 학자들이 붙였다. 제대로 된 이론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쑥덕공론이라는 비아냥이었다. 이게 폰 미제스, 하이에크, 로스바드 등을 거쳐 자유지상주의 경제철학으로 발전했다.
로스바드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루트비히 폰 미제스에 비해 극단적인 자유주의를 주장한다. 국가를 없애야 한다는 식의 무정부주의 색채가 짙다. 밀레이가 아나코-캐피털리스트를 자임하는 데엔 로스바드의 영향이 크다.
그는 자유지상주의를 신봉한 나머지 일거수일투족을 일관성 있게 그 논리에 맞게 포장한다. 기르는 개 이름도 밀턴 프리드먼의 ‘밀턴’이나 머레이 로스바드의 ‘머레이’ 등으로 부른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돼버린 헝클어진 헤어스타일을 두고는 애덤 스미스의 말을 빌려 “그냥 자유롭게 내버려 두면 바람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빗겨준다”고 한다. 실제론 엘비스 프레슬리와 엑스맨 캐릭터 울버린의 중간처럼 보이려고 전문 스타일리스트에게 머리를 맡긴다.
연설할 땐 그냥 “자유 만세”라고 외치지 않는다. 꼭 “자유 만세, 빌어먹을(¡Viva la libertad, carajo!)”이라고 내지른다. 마치 앙시앙 레짐을 향해 돌격하는 혁명군의 결의를 연상시키듯 말이다.
그가 자유지상주의에 깊이 빠진 이유에 대해선 흥미로운 가설이 있다. 어릴 때 부친의 폭력에 대한 반발심리로 극단적인 반권위, 반국가주의로 흘렀다는 것이다. 증명할 수는 없으나, 아르헨티나의 전기작가 후안 루이스 곤잘레스가 내놓은 정신분석학적 설명이다.
그럼 도대체 무정부주의자가 어떻게 국가를 통치하나. 그게 바로 밀레이 정부의 역설이다. 비대해진 국가가 무능과 비효율에 빠져 경제를 망쳤으니, 국가를 최소화시켜 많은 걸 시장에 맡기자는 게 그의 철학이다. 그는 권력으로 이를 실현하겠다며 정치에 뛰어들었다. 1960년대 학생운동의 정신적 지주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와 루디 두치케가 국가기구 내부로 들어가 자본주의를 타도하자며 ‘제도권으로의 대장정’을 좌파의 전략으로 제시했던 것과 같다. 방향만 반대일 뿐, 체제를 내부에서 뒤엎자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그에 대한 오해도 많다. 서방 언론은 흔히 그를 포퓰리스트로 묘사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대중에 직접 호소한다는 면에선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정작 그의 정책은 포퓰리즘과 정반대다. 과거의 인기영합적 정책을 다 폐지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국민에게 고통 감내를 요구하고 있다. 세상에 포퓰리즘 때려잡는 포퓰리스트도 있나. 한국의 좌파처럼 국민 뜻이 제일 중요하다, 기본 복지로 국민을 섬기겠다, 재정을 곳간에 쌓아두면 썩는다, 정도는 해야 포퓰리스트다.
그를 극우 파쇼로 비난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오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 지도자로 알려지면서 ‘미니 트럼프’ 딱지와 함께 극우로 몰렸다. 유럽 극우 리더들과 친하다는 점도 더해졌다. 그가 사회주의, 공산주의, 워크(Woke) 등 좌파 이념을 혐오한다는 점에서 우파인 건 확실하다. 그러나 이민 규제에 별 관심이 없고,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점에서 극우와는 거리가 멀다. 또 그는 독재 권력을 추구하기는커녕 의도적으로 정부 권한을 줄이고 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행정명령에 의존해 개혁을 추진하다 보니, 야당이 파쇼라고 비난하는 것뿐이다.
그는 의외로 실용적인 면이 있다. 후보 시절 중국 공산당을 비난했지만, 취임 후 대중 관계를 원만하게 관리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과 회담도 추진 중이다. 루시아노 볼리나가 아우스트랄대 교수는 “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과의 만남이 다가오면서 중국과의 대립적인 어조가 점점 약화됐다”며 “아무리 밀레이가 강경하더라도 현실적 한계를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 3월 남부 지역에 홍수가 났을 땐 긴축에서 벗어나 긴급 재난지원 예산을 편성했다. 그 외에 마약 단속을 강화하는 등 교조적 자유지상주의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헤럴드의 칼럼니스트 릴리아나 프랑코는 “밀레이가 자신의 신념에도 불구하고 실용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운도 좋다. 특히 야당복이 많다. 여소야대인데도 야당은 쪼개져 힘을 못 쓴다. 아르헨티나의 저명한 정치경제학자인 마리아노 토마시 산안드레스대학 교수의 설명이다.
“밀레이의 개혁을 저지할 다양한 세력들이 존재하지만, 이해관계가 달라 강력한 연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밀레이의 인기가 여전히 높다는 점이 강력한 저항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개혁에 대한 강경한 반대가 오히려 정치적으로 위험한 전략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포퓰리즘에 대한 환멸, 변화에 대한 갈망, 지리멸렬한 야당… 민심은 이미 개혁 쪽으로 기울었다. 바람의 방향은 분명히 바뀌었다. 리버태리언 밀레이는 그 바람에 올라타 가장 높이 떠오른 연이 됐다.
남윤호·장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