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의 기억
박미경 지음
아카이브 류가헌
자유기고가·편집자였던 지은이는 2010년 사진위주 갤러리 류가헌을 개관하고 이후 15년간 500회의 사진전을 열었다. 상업 갤러리에서 관심 적은 다큐멘터리 사진들의 “기억할 것을 기어이 기억하고야 마는” 기록성과 예술성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모든 전시의 보도자료를 직접 썼는데, 그 글과 시각은 오랜 지인을 소개하듯 편안하고 다정하다.

이 책에 수록된 61장의 사진과 글도 그렇다. 산문가인 지은이가 2022년 1월부터 2년간 중앙SUNDAY에 연재한 내용을 묶었다.
만대루에서 홀로 새벽을 기다리던 이동춘의 ‘병산서원 향사’, 30년간 한 곳에서 창밖을 찍어 온 이충열의 ‘학림다방 30년’, 노모의 젊은 시절 치마에 꽃무늬를 놓은 한상재의 ‘석작’ 등에 대한 글은 1200자 짧은 분량이지만 각각 한 사람의 일생이 고스란히 읽힌다. 제주 해녀들을 따라 바닷물로 뛰어든 김홍구의 ‘좀녜’, 생업인 트럭운전을 하며 전국을 헤집은 김심훈의 ‘한국의 정자’ 등에선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강운구·황규태·구본창 등 대가들의 사진을 톺아본 것도 좋지만, 어느 날 문득 카메라를 들게 된 이들의 사연을 통해 '시작'의 여러 형태를 보여준 점도 인상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