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호의 클래식 수퍼스타즈]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
세계 클래식 시장은 애호가들의 노령화로 위축 기미다. 점잖은 음악계에서도 스타의 존재감과 영향력이 시장 전체를 들었다 놨다 한다. 2025년 현재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수퍼스타들의 면면을 통해 클래식 업계의 지형도를 조망해 본다.
피아니스트 연인을 위해 기꺼이 지휘봉을 내려놓고 페이지터너(연주자 대신 악보를 넘겨주는 사람)를 자처하는 로맨티스트. 무려 네 곳의 세계적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500여 명의 연주자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마에스트로. 9척 장신에 영화배우 뺨치는 비주얼까지, 세상 다 가진 20대 남성이 지금 클래식 업계를 평정하고 있다. 바로 1996년 핀란드 헬싱키 태생의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다.
메켈레는 파리 오케스트라와 오슬로 필하모닉 음악감독으로, 암스테르담의 로열 콘세르트헤바우와 시카고 심포니 음악감독 지명자로 2024/25 시즌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6월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협연하는 파리 오케스트라, 11월 로열 콘세르트헤바우의 내한과 방일 역시 메켈레가 이끈다.
메켈레 급성장에는 두 명의 배후 있어

메켈레는 2020년 불과 24살에 오슬로 필하모닉 음악감독으로 임명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다. 이후 불과 5년 만에 세계 최정상 오케스트라 세 곳의 감독을 추가로 맡게 된 그의 행보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전례 없는 성과다. 25살에 몬트리올 심포니와 LA 필하모닉을 동시에 관할했던 주빈 메타를 제외하면 20대에 세계적 수준의 악단을 중복해 책임진 사례는 메켈레가 유일하다. 2021년 데카와 독점 계약을 체결하며 게오르그 솔티, 리카르도 샤이에 이어 레이블 역사상 세 번째 독점 계약 지휘자가 되기도 했다. 음악적 역량과 상업적 가치 모두 인정받은 결과다. 데카와 전속 계약한 임윤찬과도 이미 파리 오케스트라에서 협연했다. 둘의 결과물이 데카 딱지로 나오는 건 시간 문제다.
“마흔 이전 지휘자는 아기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말이다. 그만큼 지휘자는 느리게 성숙한다는 통념이 오랫동안 지배적이었지만, 메켈레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성공 문법을 쓰고 있다. 대부분의 젊은 음악감독이 임기 중 연주할 레퍼토리를 진열하며 포부를 드러낸다면, 메켈레는 파리가 야심 차게 건립한 콘서트홀 ‘필하모니 드 파리’에 최적화된 사운드를 찾으려는 진취적인 자세로 악단과 파리지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시대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가공할 힘으로 공간을 채운다”는 르몽드의 평처럼, 그는 악단을 특별한 위치에 올려놓았고, 파리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를 조탁해 냈다. ‘말러 본가’로 불리는 로열 콘세르트헤바우에선 악단의 유산을 존중하며 반보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면, 파리 오케스트라에서는 악단의 정체성을 본인 스타일에 맞게 조율해 ‘메켈레의 말러’를 구현했다. 새로 만난 시카고 심포니에서는 정밀한 합주력과 강렬한 금관의 힘을 십분 활용해 스위스 시계처럼 정교하게 작동하는 기하학적 말러를 선보였다. 감성을 자극하는 댄디한 이미지 이면에 음향 블록을 세세히 계산하는 천재성이 공존하는 드문 사례다.
메켈레의 급격한 성장엔 두 명의 조력이 있다. 핀란드의 지휘 교수 요르마 파눌라는 그의 음악적 발전을 이끌었고, 영국 매니지먼트사 ‘해리슨 패럿’의 대표 제스퍼 패럿은 그의 상업적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제스퍼 패럿은 2010년대 중반 브렉시트 타개책으로, 낮은 개런티지만 뛰어난 실력을 가진 핀란드의 젊은 재능을 대거 영입했다. 메켈레와 함께 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산투-마티아스 루발리(1985년생)도 그 주역이다. 메켈레는 매니지먼트의 지원 아래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도쿄도 교향악단 등 리더십 위기에 처한 오케스트라에서 객원 지휘를 통해 실력과 상업성을 검증받았다. 특히 런웨이에 어울리는 외모와 ‘스틱마스터’로 불리는 정확한 지휘 테크닉이 신비감을 더했다.

2020년부터 약 2년간 이어진 팬데믹의 영향도 있었다. 전통의 오케스트라가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지휘자상을 모색하게 된 변화 속에서 메켈레는 대표적인 수혜주가 됐다. 2020년 6월 파리 오케스트라, 2022년 6월 로열 콘세르트헤바우가 잇따라 메켈레를 음악감독으로 임명한 것은 비단 그의 재능 때문만은 아니다. 전임 감독 다니엘 하딩(파리 오케스트라, 2016~2019)과 다니엘레 가티(로열 콘세르트헤바우, 2016~2018) 체제에 대한 단원들의 불만과 메켈레를 경쟁 악단에 빼앗기지 않으려는 경영진의 조바심이 맞물린 결과다. 비슷한 맥락에서 시카고 심포니도 전임 음악감독 리카르도 무티의 자문 없이 2024년 4월 메켈레를 차기 음악감독으로 선임했다. 프란츠 벨저뫼스트의 투병으로 신임 감독을 찾아야 하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에 메켈레를 선점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2022년 오프라인 공연이 전면 재개되면서 메켈레는 클래식계 아이콘이 됐다. 그해 여름 스위스 베르비에와 런던 프롬스에서 피아니스트 유자 왕(38)과 협연하면서다. 팬데믹 기간 비대면 공연과 음반으로만 접하던 관객들이 몰려 공연장은 북새통이었다. 일로 만난 메켈레와 유자 왕은 금세 사랑에 빠졌다. 그해 11월 지인들이 마련한 파티에서 재회한 이후 유자 왕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인 관계를 공개하자 공연 업계는 곧바로 두 사람을 중심으로 한 공연 상품을 제안했다. 서울에서 열린 각자의 공연에서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이 목격됐고, 유자 왕의 연주에 메켈레가 페이지터너로 나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 가진 않았다. 2023년 말 두 사람의 결별이 소셜미디어 언팔로 감지됐고 2024년 벽두, 둘의 출연이 예정됐던 공연에 유자 왕이 불참을 알리며 이별은 공식화됐다.
스타의 연애에 업계도 출렁인다. 이미 향후 세 시즌에 걸쳐 메켈레-유자 왕 상품을 만든 매니지먼트와 악단은 부랴부랴 대체 연주자를 찾고 프로그램을 수정해야 했다. 샤를 뒤투아-마르타 아르헤리치, 앙드레 프레빈-안네 조피 무터 커플이 이혼 후에도 앙상블을 이어갔던데 반해, 메켈레-유자 왕은 결혼설에 임신설까지 돌았지만 이제 공연으로 만나진 않는다. 메켈레는 2024년 12월 빈 필하모닉 데뷔 기념 디너에 오슬로 필하모닉의 바이올린 단원 아만다 호이 호른과 함께 참석하며 교제를 공개했다. 메켈레는 무명 시절에도 핀란드의 첼리스트 연인과 함께한 사진을 현지 언론에 드러내는 등, 사생활을 공개하는 데 거침이 없다.
메켈레의 앞날이 온통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단기적으로 그가 극복할 편견은 ‘너무 어리다’와 ‘과대평가됐다’는 두 가지다. 2000년생 타르모 펠토코스키(툴루즈 카피톨 오케스트라 음악감독)도 있지만, 20대에 세계 메이저 악단을 이끄는 데엔 경륜이 부족하다는 시선이 따르기 마련이다. 물론 30대에 접어들면, 구스타보 두다멜이나 야닉 네제-세갱처럼 나이에 대한 우려는 자연히 사그라들 것이다.
과대평가론, 이미 거장 반열이라는 반증

‘과대평가론’은 오히려 메켈레가 이미 일류 음악가의 반열에 올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질적인 타격보다는 유명세에 따른 일종의 통과의례다. 2023년 베를린 필하모닉, 2024년 빈 필하모닉 데뷔 이후 단원과 평단의 반응은 대체로 차분했고, 메켈레를 냉정하게 지켜보자는 분위기였다.
고령 관객의 공연 관람 욕구를 충족시키는 한편 청년층과 접점을 확대하려는 세계 유수 악단들의 전략 속에서 메켈레는 두드러진 존재다.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고립된 테오도르 쿠렌치스(53)를 대체하며, ‘포스트-쿠렌치스 시대’를 이끄는 선두주자가 됐다. 한때 클래식 업계가 거장의 카리스마를 그리워하는 시니어층에 맞춤한 쿠렌치스의 상업성에 주목했던 것처럼, 메켈레의 혜성 같은 부상 역시 자본 논리와 무관하지 않다. 마리스 얀손스 사후 독일 레퍼토리에 새 숨을 불어넣으며 악단과 긴밀히 탐구하는 청년 지휘자에 대한 업계의 갈증을 채워줄 인물은 안드리스 넬손스(46, 현 보스턴 심포니,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정도였기 때문이다.
2025년의 메켈레는 명문 악단과 레이블로부터 기회를 받고 검증받는 단계다. 그러나 사이먼 래틀과 구스타보 두다멜이 그랬듯, 조만간 그는 주도권을 쥐고 매니지먼트의 의사와 무관하게 자신만의 음악 지도를 그릴 것으로 보인다. 중기적으로는 베를린 필하모닉을 주시할 만하다. 카라얀을 제외한 역대 베를린 필하모닉 음악감독의 평균 재임 기간이 약 12년이었으니, 부임 7년째인 키릴 페트렌코가 평균에 맞춰 약 5년 후 임기를 마친다면 오케스트라는 콘클라베식 단원 투표 방식을 통해 차기 음악감독을 선출한다. 이 과정에서 메켈레가 후보로 거론되고 결선에 오른다면, 그때 얻는 표의 수가 그의 예술적 위상을 가늠하는 지표가 될 것이다.

한정호 공연평론가·에투알클래식 대표. 런던 시티대 대학원 문화정책 매니지먼트 석사. 발레리나 박세은, 축구인 박지성 등 예술 체육계 명사의 에이전시와 문화정책 자문을 담당하는 에투알클래식 대표를 맡고 있다. 월간 객석, 일본 오케스트라연맹에서 일했고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문화다양성위원회 민간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