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슴슴 깔끔” 걸쭉한 평양식 콩비지 백반…콩국수는 6~8월에만

2024-11-01

이민영의 ‘SNS시대 노포’

지난여름, 어느 ‘콩국수 킬러’에게 ‘강산옥’(사진1)이라는 가게를 추천 받았다. 유명한 콩국수집에 비하면 김삿갓처럼 제멋대로이고, 타협이라곤 없는 깔끔한 콩국수를 낸다고 했다. 문제는 영업시간에도 타협이 없다는 것. 6~8월 여름에만 콩국수를 팔고, 심지어 점심시간에만 여는 곳이다 보니 때를 놓쳤다. 나머지 시즌에는 콩비지백반이 유일한 메뉴인데, 콩비지라는 음식이 맛있다고 느낀 적이 없어서 망설이다 결국 이 집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서 도전해보기로 했다.

청계천로를 따라 걷다 보니 ‘비니루 포장’ 가게들이 밀집한 허름한 건물이 나왔다. 2층에 쓰인 ‘콩비지’라는 글씨를 보고 계단을 올라가니 1958년 창업 당시의 유물 같은 낡은 간판이 보였다. 붉은색 명조체로 ‘강산옥, 콩비지’라고만 써 놨다. 내부 인테리어는 충격적으로 심플했다. 창가 쪽의 좌식 테이블과 안쪽의 입식 테이블을 합쳐 10개의 테이블이 있을 뿐, 아무 장식도 없는 하얀 벽이 도드라져 보였다.

쟁반(사진2)이 나왔다. 콩비지, 물김치, 무생채, 양념장, 밥이 전부였다. 어느 리뷰처럼 “군더더기 하나 없는 구성”에 반찬 맛은 “슴슴 깔끔 그 자체”였다. 그런데 원래 콩비지는 영양가가 모두 빠진 맛 아닌가? 어떻게 이렇게 “크리미하고 걸쭉한” 풍부하고 진한 맛이 가능할까? 그 비결은 콩에서 두유를 빼지 않은 이북식 비지에 돼지고기를 넣어서 만들었기 때문이란다. 창업주가 평안도 평양 출신이라 그렇게 만들어왔다고.

“말아먹는 느낌보다는 비벼먹는 파스타 느낌”이라면서 콩비지를 비벼먹는 꿀팁을 알려주는 리뷰가 흥미로웠다. 앙념장과 물김치를 더 담아주러 왔던 주인장이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콩비지에 양념장 올려 먹기, 밥을 좀 넣어서 비벼먹기 등. 모든 그릇을 비우고 일어서니, 본인이 창업주의 손녀이며 60년이 넘은 이 집에서 어릴 때부터 일했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새 한 어르신이 들어와서 다 먹고 나갔는데, 얼마나 단골이면 말을 거의 하지 않고 ‘7분 컷’이 가능할까. 내년 여름에는 단골들이 극찬하는 콩국수를 꼭 먹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북식 콩비지를 먹었으면 1시간 정도 청계천변을 따라 산책해도 좋다. 마무리는 청계천박물관을 추천한다. 조선시대는 물론, 주인장의 조부모처럼 1950년대 월남한 사람들이 초가집을 짓고 살던 시절과 산업화 시절의 청계천을 모두 볼 수 있다. 그리고 왜 이런 장소에서 이런 음식이 팔리고 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콩비지백반 1만1000원, 콩국수 1만5000원, 콩국물 4인분 4만원.

이민영 여행·미식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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