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에 상법개정 우려까지...기업들, 불확실성 속 관망 택했다

2025-05-06

[미디어펜=김견희 기자]6·3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상법 개정안을 재추진 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국내 주요 기업들은 불확실성 속 관망세를 택하고 있다. 특히 상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이사회 구성과 경영권 방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 기업들이 촉각을 기울이고 있는 분위기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재추진되고 있는 상법 개정안은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출 요건 완화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조항 등 이사회 책임 범위를 확대하고 주주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사회의 책임 범위를 확대하고 주주 권한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개정안은 지난 3월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지난달 1일 국무회의에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회로 돌아온 후 지난 17일 본회의 재표결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야권을 중심으로 상법 개정안의 추가 발의로 법사위에 계류돼 있는 상황이다.

업계에선 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이사진을 상대로 한 소송을 제기하기 쉬워지면서 법적 리스크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사회의 결정이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주주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단기 투자자나 행동주의 펀드는 당장 주가에 유리한 결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법률 전문가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 "소수 주주들이 이를 근거로 이사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남발할 가능성이 커질 수도 있다"며 "이는 곧 기업 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하고 법적 분쟁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게다가 대선 정국까지 야권으로 분위기가 흐르면서 정책 불확실성까지 겹치자 기업들은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정권이 교체 된다면 상법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 같은 불확실성을 이유로 최근까지 검토했던 '기업가치 제고 방안(밸류업)' 공시를 미루고 상황을 지켜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선 보유 자산 매각이나 주주환원 강화 방안 등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놨지만, 대선 이후로 공식 입장 발표를 미룬 상태다.

SK그룹도 상법 개정과 관련해 부정적 입장을 내놨다. 지난달 대한상의에서 열린 취임 4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상법 개정안에 대해 "기업의 의사 결정이 미뤄질 수밖에 없는 초유의 상황"이라며 "상법 개정안은 또 다른 불확실성을 안겨주는 것으로, 지금이 (도입하기) 적절한 시기인지 의문이 든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최근 현대자동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등 3사가 선임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사회 거버넌스 강화를 목적으로 만든 제도라는 게 회사의 입장이지만, 업계에선 정권교체로 상법 개정안 통과 가능성을 예상하고 추진한 제도라는 의견이 나온다. 선임사외이사제도는 사외이사의 대표 격인 선임사외이사를 선출해 사외이사 권한과 역할을 강화하는 제도다. 삼성전자도 지난 2023년부터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처럼 재계 전반에서 관망세를 보이거나 부정적 입장을 취하는 데는 과거 외국계 펀드 개입 사례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지난 2015년 사모펀드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며 소액주주 보호를 내세워 경영권에 개입한 바 있다. 상법 개정이 현실화되면 이 같은 외부 압력이 더욱 공식화될 수 있다는 게 기업들의 실질적 우려다.

여기에 여야의 대선 공약까지 더해지며 기업들이 실질적 경영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권 대선 주자들은 상속세·법인세 완화, 노동 유연화 등 규제 완화를 강조하는 반면 야권에서는 반도체 생산세액공제 등 직접 지원 중심의 공약을 내놓고 있다. 대선 결과에 따라 산업 정책 방향이 극명히 갈릴 수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섣불리 사업구조 개편이나 대규모 투자, 구조조정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눈치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외 정책 변화가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지금 당장은 움직이지 않고 정권의 향방과 입법 과정을 지켜보려는 분위기가 짙다"며 "상법 개정안이 현실화할 경우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와 투자 전략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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