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나무집’이라는 이름이 붙은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 에피소드까지 총 5편으로 이루어진 영화는 묘하게, 다소 개연성이 떨어지는 방식으로 서로 연결돼 있다.

제목: 귀시(THE CURSED)
제작연도: 2025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96분
장르: 공포
감독: 홍원기
출연: 유재명, 문채원, 서영희, 원현준, 솔라, 차선우, 수민, 서지수, 손주연
개봉: 2025년 9월 17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제작: ㈜제리굿컴퍼니, 쟈니브로스㈜
배급: ㈜바이포엠스튜디오, ㈜제리굿컴퍼니
돌이켜보면 J호러 붐을 일으킨 쌍두마차 중 하나인 <주온>(시미즈 다카시 감독·1997)의 이야기 구조는 기이했다. 에피소드는 잘게 쪼개져 있고, 평범한 사람들이 당하는 불행 내지는 실종 이야기를 마치 DNA 나선을 엮듯 끊임없이 이어가는 이야기 구조다. 불량 소녀든 착한 모범생이든 결국에는 다 당한다. 그런데 이들의 불행 스토리를 통해 끊임없이 회귀하는 사건이 있다. 가야코와 토시오의 죽음. 살해당해 원령이 되어 그들이 살던 이층 양옥집에 주박(呪縛)된 모자 이야기다. 지인의 지인 식으로 이어지는 느슨한 이야기에, 들여다봐서는 안 될 것을 본 것처럼 관객의 뇌리에 불행하고 끔찍한 오래전 사건을 떠오르게 하는 독특한 내러티브 방식이다. 이 동티가 씐 집은 시공간마저 기묘하게 뒤틀려 있다. 집을 방치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휘발유 통을 들고 들어간 형사는 역시 그곳에서 실종될 운명인 자신의 딸과 조우한다.
<귀시>의 독특한 이야기 구조
<귀시>를 보며 <주온> 시리즈를 떠올린 건 <귀시>의 독특한 이야기 구조 때문이다. ‘큰 나무집’이라는 이름이 붙은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 에피소드까지 총 5편으로 이루어진 영화는 묘하게, 다소 개연성이 떨어지는 방식으로 서로 연결돼 있다. 각각 독립된 이야기인데 등장인물과 장소가 연쇄 사슬의 고리처럼 이어져 있다. 예컨대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 위해 충청도 어느 시골 마을로 간 미연(솔라 분)은 자기가 목격한 기묘한 사건을 멀리 떨어진 대도시에 사는 친구 채원(문채원 분)과 영상통화로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한다. 다시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채원은 이웃집 앞에 놓여 있던 “당신의 완벽한 외모를 위해”라고 적혀 있는 보라색 택배 상자에 꽂힌다. 택배 상자의 내용물이 궁금했던 채원이 상자를 열자 코가 들어 있다. 그걸 자신의 코에 가져다 대는 순간, 코에 달라붙으면서 채원의 콤플렉스였던 매부리코가 달라진다. 이튿날 회사에 출근한 채원을 두고 다른 직원들이 뭔가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칭찬한다. 채원만이 그 미묘한 변화가 ‘코’라는 걸 안다.
이른바 귀신을 사고파는 시장이자 이 영화의 제목인 ‘귀시’가 등장하는 것은 세 번째 에피소드다. 이 에피소드도 두 번째 에피소드와 느슨하게 이어져 있다. 채원이 다녔던 회사의 벽에 ‘Vivid Books’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출판사인 듯한데, 세 번째 에피소드는 고등학생 자녀를 둔 이 회사의 시니어 주부 이야기다. 팀장의 자녀가 의대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비법을 문의한다. 팀장이 목소리를 낮춰 알려준 방법은 어느 허름한 건물에 있는 학원 캐비닛을 찾아가는 것이다.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 있는 캐비닛 문을 열고 들어가면 컴컴한 공간이 나오는데, 계속 가면 나오는 게 바로 ‘귀시’다. 소원을 이루려면 자신을 희생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너무 튀는 현지화 전략
영화사가 내세운 홍보 문구로 유추해보면 외모, 성적, 스펙, 인기를 얻고 싶다는 욕망은 이루기 어렵다. 설사 돈으로 사려고 하더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 거래를 다른 대가로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판타지 공간인 귀시라는 설정이다. 설정은 그럴듯하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마을의 오래된 나무 앞에서 박수무당이 열심히 굿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박수무당이 각 에피소드를 잇는 인물이라고 하지만, ‘귀시’는 영화의 에피소드들을 일관되게 이어주는 세계관은 아니다. 처음부터 과욕을 부리지 않고 각각 별개의 에피소드로 기획했다면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홍원기 감독은 20년 가까이 서태지, BTS, 엑소, 소녀시대 등의 뮤직비디오를 찍은 감독이라 그런지 각 에피소드 주연으로 많은 유명 연예인이 등장한다. 주로 로맨틱 코미디 영화와 드라마 주연을 도맡아 하던 문채원의 연기 변신은 주목할 만하다. 이 영화를 소개할 때 5개 에피소드 중 두 번째 에피소드가 가장 많이 언급될 것으로 보인다. ‘귀시’의 이국적 풍경은 세트가 아닌 동남아 로케이션인 듯하다. 다섯 번째 에피소드에서 영화의 무대는 아예 베트남으로 건너간다. 1990년대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PPL(간접광고) 도입 초반이라 너무 티 나는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해당 국가의 영화시장을 노리는 현지화 전략 역시 아직 초창기라 튀는 게 아닌가 싶다.

몇 년 전 여름휴가 때 가족여행으로 중국 상하이를 방문한 적 있었다. 거리에 거대하게 조성된 ‘복 고양이’상이 눈에 띄었다. ‘저건 일본 것’이라고 하자 조선족 출신의 중국 여성 가이드가 화를 냈다. “아니다. 저건 중국 전통의 고양이상”이라는 것이었다. 분명 한쪽 앞발을 들고 고양이가 손님을 향해 ‘어서 오세요’ 하는 듯 손짓하는 저 인형은 일본 상점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마네키 네코(招き猫)였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건 아마도 영화에서 깜짝 한국 민간전승으로 둔갑시킨 ‘여우 창’ 역시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문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2010년 전후쯤으로 기억되는데, 일본에서 수입된 괴담이다. ‘여우 창’을 만드는 방법(사진)은 이거다. 양손을 중지와 약지를 엄지에 붙여 그림자놀이를 할 때 여우 모양을 만들어 교차한 다음, 다시 검지를 양손 새끼손가락 쪽에 끼우면 그사이에 ‘틈새’가 만들어진다. 그 틈새로 들여다보면 맨눈으론 보이지 않는 ‘귀시’의 귀신들이 보인다는 이야기다.
1990년대 초중반 날림으로 번역된 일본 도시 괴담 책들을 통해서 전해진 것이 ‘분신사바’였다면 2010년대 후반 이 ‘여우 창(キツネの窓)’ 이야기가 퍼진 것은 SNS나 유튜브를 통해서다. 강령술 쯤으로 인식되지만, 일본 쪽 자료를 찾아보니 원래의 이야기는 1975년 일본에서 출판된 창작 동화가 기원이라고 한다.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던 유명한 이야기다. 원래 이야기 버전엔 사냥꾼을 만난 새끼 여우가 ‘도라지꽃’에게 배운 죽은 엄마 여우를 만나는 법이다. 조금 애틋한 이야기다. 영화에 묘사된 것처럼 흉측한 귀신을 보기 위한 수단은 아니었다.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이야기처럼 한국으로 넘어와 퍼지는 과정에 뒷이야기는 탈각됐다. 주문을 푸는 방법은 ‘케시요오노 모노카 마시요오노 모노카 쇼타이오 아라와세(けしようのものか ましようのものか 正体をあらわせ)’라는 주문을 세 번 되풀이하는 것이다. 대충 “지울까 말까 정체를 드러내라”는 뜻이다. 물론 원본 이야기에서 그 대상은 귀신이 아니라 여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