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변해야 사랑이다

2025-09-15

붙어 다니는 연인들에게 흔히들, 비속어까지는 아니더라도, ‘껌딱지’라는 표현을 쓴다. 껌처럼 붙어 있다는 건데, 다소 양가적(兩價的)인 의미를 지닌다. 그만큼 사랑하는 관계라는 뜻도 있지만 껌이 끈적거리고(sticky) 눌어붙는 것처럼, 다소 지겨운 사이를 가리키기도 한다. 미국의 저예산 상업영화(제작비 1700만 달러, 약 237억 원) ‘투게더’는 좋아 죽지도, 그렇다고 이제는 싫어져서 헤어지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권태기 연인의 끔찍한 에피소드를 그린 바디 호러 로맨스다. 바디 호러라는 말은 영화사가 마케팅으로 만든 조어이다. 영화 속 두 연인, 팀(데이브 프랭코)과 밀리(앨리슨 브리)는 몸이 붙는다. 키스하면 입술이 붙어 떨어지지 않으며 다리 포개고 잠이 들면 다리가 들러붙는다. 섹스하면 서로의 몸에서 나오지 못한다. 둘의 육체는 점점 기형화되고 둘의 정신도 점점 광기에 휩싸인다.

영화 ‘투게더’의 기본 콘셉트는 ‘트랜스 휴먼’이다. 영화는 한때 남녀가 바뀌는 것을 갈망했다. 숱한 트랜스젠더영화들의 존재가 그렇다. 어느 순간부터 영화는 줄곧 인간과 이종 간의 뒤섞임을 꿈꿔 왔다. 캐나다 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초기작들 ‘비디오드롬’(1983) ‘플라이’(1988) ‘크래쉬’(1996) 에서 시작돼 쥘리아 뒤쿠르노의 ‘티탄’(2021)에 이르기까지의 작품을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인간과 인간의 결합을 꿈꾼다. 코랄리 파르자의 ‘서브스턴스’(2025)도 어떻게 보면 인간 간의 기이한 결합, 그 하이브리드를 욕망하는 영화이다. 호주 출신 마이클 생크스의 영화 ‘투게더’는 그 과정의 고통과 자칫 추악할 수 있는 결과를 경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 ‘투게더’의 수위는 ‘서브스턴스’마냥 혐오스럽거나 어둡지 않다. 오히려 귀여운 측면이 있다. ‘투게더’는 한편으로 사랑에 지친 연인들의 얘기를 담고 있고 일부 극단의 장면들을 빼고 생각하면 나름, 고단백의 연애 보고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들은 그래서, 동일시의 단면이 많은 작품이다. 보기에 따라 다 달리 보이고, 관객마다 자신의 관점에서 별도의 해석을 가하며 볼 수 있는 영화라는 얘기이다.

의학적으로 몸이 들러붙거나 살과 뼈가 섞이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다음 두 사례는 가능하다. 우선, 샴쌍둥이가 그렇다. 의학 용어로는 결합쌍생아이다. 목과 얼굴이 두 개이다. 내장 기관을 공유하기 때문에 분리 수술을 통해 한쪽을 제거해야 생존확률이 높을 수 있다. 샴쌍둥이는, 영화에서, 주인공 밀리와 같은 학교 선생인 제이미(데이먼 해리만)의 대사에도 나오지만, 플라톤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정상이었다고 한다. 인간은 팔과 다리가 각각 넷에, 머리는 하나, 얼굴은 둘이었는데, 인간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질 것을 꺼린 제우스에 의해 둘로 분리된다. 그래서 인간은 이후 늘 자신의 반쪽을 찾아 평생을 헤매게 된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얘기이지만 동시에 끔찍한 얘기일 수 있다. 동료 교사 제이미는 자신의 연애담을 고백한다. 결국 자신도 그토록 사랑했던 동성 애인과 헤어졌고, 그래서 비참하고 외로웠지만, 한편으로는 홀가분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늘 같이 있기를 욕망하지만, 막상 365일을 같이 있는 연인들은 오히려 오래 가지 못한다. 영화 ‘투게더’는, 두 남녀의 몸이 뒤엉키고 섞이는 끔찍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사실 그 속내로는 앞서 얘기한 연애의 진실, 연인이라면 진심으로 알아채야만 하는 진실, 곧 떨어질 때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만큼 가까울수록 떨어져 있으라는 말을 전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몸이 들러붙는 의학상의 경우는 페니스 캡티부스(Penis Captivus) 사례가 있다. 섹스 중 여성 질 근육의 수축으로 질 내부 압력이 일시적으로 지나치게 상승해 남성의 성기가 빠지지 못하게 되는 일이다. 극히 드문 일이지만 아주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 진단 사례들로 나와 있다. 영화 속에서 밀리와 팀도 이 같은 일을 겪는다. 두 남녀는 갑작스러운 아드레날린의 분출로, 밀리 학교의 남학생 화장실에서 성관계를 맺다 봉변을 겪는다. 아마도 이 영화 ‘투게더’는 페니스 캡티부스 건의 에피소드에서 착안한 것일 수도 있어 보인다. 여기서 시작해 만약에 남녀 간의 몸이 서로 살 속을 파고들며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건 진짜 사랑일까, 가짜 사랑일까 하는 질문들까지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다 결국 사랑의 본질 얘기가 나오고 에리히 프롬의 소유 철학 얘기가 나오는가 하면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사랑의 역사'까지도 검토되고 분석됐을 것이다. 

밀리는 팀을 10년 전, 그가 25살 때 만났다. 밀리의 친구는 그녀에게 남자가 ‘아직도 록커를 꿈꾸는 철없는 서른다섯 남자’라며 핀잔을 준다. 밀리는 팀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면서, 자기가 스파이스 걸스를 좋아한다고 하자 팀이 (록커를 꿈꾸니 그럴 법도 한데) 무시하지 않았고, 심지어 다음 만남에 자신을 위해 LP를 사 들고 왔다며 그를 옹호한다. (영화 끝부분에 스파이스 걸스의 노래 '2 비컴 1’이 울려 퍼진다) 밀리는 팀을 사랑한다. 팀도 그렇다. 그러나 여느 연인이 다 그렇지만 둘은 살짝 지쳐 있는 중이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내야만 한다. 그래서 감행한 것이 시골로의 이사이다. 둘은 대도시의 삶을 포기하고 한적한 시골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 보려 한다. 밀리는 작은 학교로 부임한다. 팀은 도시를 오가며 연주 투어를 다닐 생각이다. 팀은 요리를 잘하지만, 운전은 할 줄 모른다. 밀리는 요리를 잘하는 남자 때문에 자신이 요리를 못 하게 됐다고 생각하고 팀은 밀리 없이는 기차역까지도 갈 수 없으니 결과적으로는 집에 갇히게 됐다고 생각한다. 둘의 관계는 생각처럼 쉽게 복원되지 않는다. 그런 둘이 주변 숲을 둘러보다가 구멍에 빠져 동굴에 갇히게 됐고 그 안에서의 어떤 것 혹은 무엇 때문에(곰팡이 같은 것, 혹은 정신적 착란?) 둘의 몸에 이상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영화 ‘투게더’는 아이디어가 발칙한 ‘새로운’ 영화임에는 분명하지만, 촬영이 어려운, 고난도의 테크놀로지가 동원돼야 하는 작품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만만치 않다. 노출면에서도 과감한 씬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장면들이, 어쩔 수 없이, 가장 돋보인다. 팔뚝이나 종아리가 들러붙는 것이야, 특수분장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입술과 혀가 딱 달라붙는 씬은 두 남녀 배우의 노동력이 엄청나게 배어 있는 일이다. 이 퍼포먼스는 배우 사이가 평범해서는 쉽지 않다. 눈치챘겠지만 영화 주인공 역의 남녀는 실제 부부 사이이다. 극 후반부에 서로의 눈, 눈동자, 속쌍꺼풀, 눈알이 들러붙는 장면은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찍었다. 이 장면이야말로 바디 호러 로맨스에 걸맞은 압권의 장면이다.

에리히 프롬의 명저는, (잘못) 번역된 것처럼 '사랑의 예술(Art of Love)'이 아니다. '사랑하기의 예술(Art of Loving)'이다. 사랑의 본질은 완성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는 얘기이다. 밀리는 같은 학교 선생인 제이미를 만났을 때 자신과 팀의 관계를 부부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고 글쎄? 파트너일까? 라는 식으로 말한다. 밀리는 아직 팀과의 사랑, 그 콘셉트와 정체성이 확실하게 자리 잡지 못한 경우이다. 만들어 나가는 중이지만 그녀는 자신이 그를 사랑하고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확신한다. 사랑의 과정에 있을 때 모든 확신은 착시이다. 다만 서로가 끊임없이 확인하고, 성실하게 임하며, 자신들만의 새로운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갈 뿐이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가 아니라 사랑은 변하는 것이 아니면 사랑이 아니다. 그 역설에 사랑의 진실이 있다. 영화 속 두 남녀는 몸이 섞이는 변화를 겪는다. 그 결과는 해피 엔딩일까 아닐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 부모가 방문했을 때 밀리가 문을 여는 장면을 상상해 보길 바란다. 마지막 장면도 나름의 의미가 크다. 바디 호러 로맨스 ‘투게더’는 지난 9월 3일 개봉했다. 14일 현재 관객 4만 명이 넘었다. 생각보다 썩 잘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흥미로운 작품이다. 세상이 변하고 있고 영화가 바뀌고 있으며 남녀 관계가 새로워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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