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셋 중 하나밖에 안 돼서 슬프냐, 처음 하는 시도에서 셋 중 하나가 됐으니 즐거우냐. 화가 났지. 그러나 그건 내 입장이고. 보여줘야지. 이미 검증이 됐다 해도 여기선 아직 안 보여줬으니. 열흘간 내내 나를 짓누르고 뜨거운 물과 찬물을 오가게 한 변덕 같은 마음의 소리였다. 제발 연출만 좀 하고 싶다, 꾸역꾸역 말을 삼키곤 아무렇지 않은 양 어깨를 쫙 편다. 경련이 일 때까지.
하루하루가 버라이어티하다. 돌아서면 주말이고, 또 돌아서면 주말이고. 그 와중에 시간은 어찌나 빨리 가는지. 그러면서도 어떤 일들은 무척 더딘 시간으로 흐른다. 하지만 공포영화의 점프 컷처럼 탕, 탕, 실체처럼 다가오는 시간과 놓쳐버릴 뻔해 턱걸이로 일정을 소화하면서 발버둥 치는 내 모습이 어느 누군가에겐 더디기 짝 없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 그놈의 결과주의 때문이다. 그놈의 영화나 드라마 때문이다. 생략해 버리니까.
그러다가 갑자기 에너지가 샘 솟는다. 누구는 열 번을 덤벼들었는데 넘어지고 자빠지면서도 다시 한번 더 덤벼드는 중이란다. 아, 나에겐 아홉 번의 기회가 더 남았구나, 저 정도 의연해질 수 있기까지. 또 누군가 가난한 지갑을 열어 밥을 사주는 모습이 한편으로 고맙고 한편으로 짠하다. 아, 그래도 내 버둥거림을 안타깝게, 그러면서도 고맙게 생각해 주는구나. 그게 나에 대한 예의이자 성의구나.
윤석열 대통령이 꿈에 나왔다
3월에는 다큐멘터리 장편 작업에 손을 못 대고 있다. 내년 이맘때쯤 보릿고개를 잘 넘기려면 농사 준비를 잘해야 하니까. 영화는 제작이 확정됐다. 다큐와 함께 국내 배급에 이어 해외 배급 계약까지 마무리했다. 서울 쪽 우리 업계에서 나를 거점 삼아 울산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래. 실컷 이용하고 실컷 활용해라. 그리고 와라, 울산으로. 10년을 버텼다. 이제 나는 정신줄만 잘 움켜쥐고 앞만 보며 뚜벅뚜벅 전진하면 된다.
신이 나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다가도 오랜만에 현장 지휘할 생각을 하니 수십 킬로그램의 덤벨이 어깨를 묵직하게 누르는 것 같다. 숨이 턱턱 막힌다. 앞만 보려는데 여기저기 내 발목과 바짓가랑이를 잡는 귀신 같은 손들이 한 바가지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꿈을 안 꾸다가 요즘엔 눈 감자마자 시작해 눈뜰 때까지 이어진다.
며칠 전엔 윤석열 대통령이 꿈에 나왔다. 나랑 굉장히 친한 친구였다. 손님이 와서 눈을 비비며 작업실로 갈 땐 아주 생생했는데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난다. 내가 말했는지, 윤이 말했는지. “다 잘될 거야.” ‘대통령’이 꿈에 나왔으니 길몽이라 생각했는데, 그 꿈에 기대한 일의 결과를 보니 ‘윤’이어서 흉몽이었던 걸 늦게 깨달았다. 젠장.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삭막해진다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면 그것은 자유를 준 것이니 잘한 일인가, 아니면 안정에 길들인 관계를 꺾었으니 못한 일인가. 그러고 보면 부부라는 게 얼마나 구속력이 강하면서도 억지력이 강한 관계인가 싶다. 그럼에도 사람이란 가면 또 오고, 오면 또 가는 것이다.
가고 오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기도 하고. 다만 같든 다르든 새로운 시간을 지어가는 건 어쩐지 참 귀찮다. 앵무새 같은 반복 속에서 말과 행동이 반듯하게 교정되는 모양새도 지친다. 그래서인지 사람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점점 삭막해지는 것 같다. 실망하는 마음도 후회하는 마음도 함께 삭막해지니 그래, 되레 잘된 일이려나.
새로 온 사람을 탐색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큼 보낸 사람을 정리하는 데에도 오래 걸린다. 채워나가느냐, 비워내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채워나갈 땐 좀 들뜨고 비워낼 땐 성가시다. 이런 일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채우면서도 비울 준비를 한다. 나 또한 그러하듯이 너 또한 그러할 것을 미처 모르다 굵고 깊은 선을 긋고 보면 어딘가 불편하기도 하고.
미리 선을 그어 놓고 서로 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려나. 근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내 마음과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듯 댁 또한 그럴 건데. 그냥 우리는 채워나가는 삶을 살다가 비워나가는 삶을 살아가는 마음의 준비와 태도의 진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다. 이어져 있으니까. 똑 끊어버릴 때까진 이어가는 거니까.
그래서 영화인들은 <이방인>(1942, 알베르 카뮈)의 뫼르소가 총을 쏠 수밖에 없을 만큼 강렬한 태양 같은 현장을 떠나면 채워나갈 때의 짧은 설렘과 갑자기 뚝 절단된 비움의 성가신 쓰라림 때문에 또다시 다급하게 현장을 그렇게도 갈구한다. 먹어본 적 없는 마약처럼. 그래서 미련으로 한동안 약국의 박카스를 사고 또 사 마시는 거다.
코앞에 닥친 일로 설레야 하는데 마음이 무겁다. 비워낼 게 너무 많아 성가심에 지친다. 오늘도 안마기 위에서 눈을 붙이며 기억도 나지 않는 끝없는 꿈에 시달렸다. 이제 현장에서 머리만 쓸 뿐 눈썹 휘날리게 뛸 일이 없어 살은 현장에서 다 뺄 수 있다는 말은 물 건너갔다만 이렇게 꿈에 시달리다간 쪼그라든 심장 펴느라 구석구석 지방 덩어리까지 다 퍼다 날라야 할 판이다. 기왕이면 똥배부터 가져가 주길.
새 장비는 언제나 유쾌하다
코로나 시국부터였던 것 같다. 이런저런 장비들을 들이기 시작한 때가. 내가 필요해서 캠코더와 편집용 랩톱을 샀고, 단편 다큐멘터리를 잘 마무리했다. 그걸로 끝내려 했는데 그 다큐멘터리 작업이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추가로 캠코더와 미러리스들을 들이고, 조명 장비와 녹음 장비들도 들였다.
그러다가 내 일 아닌 일로 두 번 크게 질렀다. 그래도 그건 내가 썼다. 작년부터는 내가 쓰지도 않을 장비를 사들이느라 차 한 댓값을 치렀다. 그래도 그건 내 일이었다. 그런데 주말에 또 질렀다. 내 일이 아닌 일로, 내 손 탈 일 없는 일로 또 쓸 만한 중고차 한 댓값을 썼다. 이 보릿고개 시국에.
그럼에도! 장비를 고를 때 나는 무척 유쾌하고, 고가의 장비들은 대체로 24시간이 안 되어 도착하며, 무려 이번에는 일요일에 도착했다. 택배 상자를 열고 따끈따끈한 신제품을 포장에서 꺼낼 때 그 만족감이란. 카드 결제일만 두 눈 질끈 감고 잘 넘기면 한동안 즐겁다가 더 좋은 장비를 찾게 된다. 장비적 마(魔)의 굴레다.
기술 스태프가 아니라서 딱히 장비 만질 일이 없는데도 난 촬영 장비들이 좋다. 아마 기계를 좋아해서 그럴 거다. 영화에선 쓸 일이 없겠지만, 아니, 메이킹 용으로 쓸 만하려나, 이걸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을 것 같다. 스태프들도 가지런히 놓인 장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할 수 있는 일들을 손꼽아 본다. 그럼 됐다.
올해 반구대는 버라이어티하다
오랜만에 반구대에 좀 더 자주 올라가게 됐다. 비 오는 주말 모두 올라갔다. 빛 때문에 미뤄왔던 촬영을 마무리해야 하고, 주민들과 함께 새로 시작하는 일을 진행해야 하고, 올여름 영화 촬영 때문에 이것저것 점검해야 할 게 있다. 작가가 공간을 이해하게 되면서 시나리오가 구체적이고 섬세한 틀을 갖췄고, 털복이와 까망이는 빗속에서 거지꼴이 됐다. 대곡리 여기저기 바닥엔 두꺼비, 황소개구리가 차 바퀴에 짓눌려 짜부라져 있었다. 비에 씻겨서인지 투명했다.
반구대 쥬디 여사가 날씬한 고구마를 한가득 쪄 줘서 맛있게 먹었고, 반구대 숀코넬리는 닭똥 가득 뿌려놓은 논 앞에서 진일주 대표와 함께 올해 계획을 설계했다. 그죠처사는 땀에 절어 안경이 코끝에 걸린 채 상춘가를 정리하고 있었고, 이재권 전 이장은 여여민박에 이제 막 도착한 젊은 연인에게 고구마를 구워 주느라 군불을 넣고 있었다. 대곡경로당은 문이 걸려 있었고, 한실경로당엔 두 달에 한 번 있는 저녁 식사로 훈훈한 분위기였다.
여여민박 대박이와 깐돌이는 털복이와 까망이를 보더니 반가워하는 눈치였고, 사회성 빵점인 까망이는 처음으로 다른 개와 어설프게 인사를 나눴다. 손방수 여사 댁 꽃님이와 여여민박 대박이, 깐돌이에게 한돈꼬리뼈 간식을 줬더니 좋아 죽는다. 대박이와 깐돌이는 그동안 내게서 맡았던 냄새로 털복이와 까망이가 낯설지 않았을 거다.
이번 주엔 눈 소식도 있고 일교차가 크면서 날도 제법 따뜻해질 모양이다. 오늘도 열심히 치열해 봅시다.
이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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