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 더 감사해야 한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을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놓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이 협공을 가하며 퍼부은 말이다. 상호 존중이 대전제인 정상 외교의 장에서 상대국 지도자를 향해 “감사해야 한다”는 표현은 결례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들에 맞선 젤렌스키 대통령이 톡톡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정면충돌 이후 미국이 군사·정보 원조를 끊자 백기 투항하듯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협상에 응하겠다고 제 발로 나왔다.

이후 19일 만인 지난 19일 있었던 미국·우크라이나 정상 간 통화. 미 국무부 설명자료에 따르면, 약 1시간의 통화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했다는 대목은 다섯 번이나 나온다. 휴전 협상의 물꼬를 튼 데 대해,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 지원에 대해, 안보 보장을 위한 대통령의 리더십에, 인도주의적 문제에 대한 꾸준한 관심에, 포로 교환을 성사시킨 대통령의 리더십에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
사례는 말 뿐 아니라 현물로도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 광물을 원했던 미국은 이제 원전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미국이 소유하면 안전해질 거란 이유를 들어 원전 소유권 이전을 제안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그간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는, 하지만 산출 근거는 아무도 모르는 3500억 달러(약 510조 원)의 대가라고 한다. 우크라이나는 2022년 2월 개전 이후 미국으로부터 받은 모든 유형의 군사적·비군사적 원조를 고스란히 갚아줘야 할 채무국 신세가 됐다.
미국의 도움 없이는 홀로서기 어려운 약소국의 뼈아픈 현실이 드러난 사례다. 힘의 논리가, 아니 더 정확히는 이제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트럼프 뉴노멀’ 시대의 살풍경이다.
문제는 트럼프 뉴노멀이 한국을 정조준할 때다. 출범 두 달을 맞은 트럼프 행정부가 아직은 캐나다·멕시코 등 국경을 맞댄 인접 국가, 통상·안보 현안에서 대립하는 유럽과 첨예한 전선을 형성하고 있지만 한국도 점점 ‘트럼프 스톰’의 영향권에 가까워지고 있다.
마침내 한국에 눈을 돌린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은 안보 버팀목이 돼 줬던 미국에 감사해야 한다”며 청구서를 내미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부질없는 공상만은 아닌 듯싶다. 그때 한국은 어떻게 사례를 해야 할까. 국익과 한·미 동맹, 두 가지를 동시에 지켜야 하는 난제 중 난제다. 면밀한 대비와 현명한 외교가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