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일기] 너로 인해

2024-10-10

10월 첫 주에 한 번은 소아암 행사, 한 번은 입양 캠프가 1박 2일씩 있었다. 문득 작은애로 인해 우리 가족이 풍성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아암을 겪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면서 삶이 풍성해진 건 사실이다. 씩씩하게 치료받는 작은애 모습에 나까지 용기를 얻었다. 가족이 한 팀이 되어 각자의 자리를 지키면서도 적극 협조했다. 그러면서 서로에 대한 고마움이 커졌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가 우리 부부의 마음이 되었다.

가족은 언제나 내 곁에 있지 않다. 유한한 삶이 던지는 무게가 묵직하다. 소아암이 재발할 수도 있고 전이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삶의 우선순위가 정리된다. 경력이 변변치 않아 고민했던 때가 있었다. 신체검사 받고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작은애가 소아암 진단을 받아 그만뒀다. 풀타임도 아니었는데 이마저도 안 되는구나 싶었다. 일부러 명함을 통째로 버렸다. 명함 생길 날이 또 있을까 씁쓸했는데 최근에 다시 생겼다. 여전히 시간제 근무에 계약직이지만 내가 선택한 거다. 5년간 병원 다녀야 하는 작은애를 생각하면 이게 낫다.

소아암 프로 수발러가 되어 굵직한 병원 세 군데를 다니고 있다. 가족 중에 환자가 있는 일상을 안다. 그런 내담자를 만나면 남 일 같지 않다. 보호자의 소진과 환자가 오롯이 견뎌냈을 고통이 예상된다. 작은애가 소아암을 겪으면서 우울증 약을 일 년 반 정도 먹었다. 내가 하는 일이 심리치료면서도 의사가 약을 처방하겠다 했을 때 “우리 아이가 약 먹을 정도인가요?” 말부터 나왔다. 의사는 놀이치료 병행을 강조했다.

그렇게 해서 다니게 된 놀이치료는 구멍 난 부모 성적표를 받는 기분이었다. 10분 부모 면담 때 나를 직면하면서 많이 울었다. 소아암 전부터 나는 작은애 돌보기가 힘들었다. 서로 너무 달랐다.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입양은 이렇게 속 시끄러운 거구나’, ‘네가 문제야’, ‘내가 내 발등을 찍었구나’ 등등 내 안의 괴물을 만나는 날이 잦았다. 놀이치료사에게 내가 동종업계 종사자라는 걸 밝히기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어떨 때는 놀이치료사의 조언을 못 알아듣기도 했고 ‘선생님이 우리 애 키워봤어요? 선생님은 여기서 잠깐 보는 거잖아요. 직접 키워보고도 그렇게 말하실 수 있을까요?’ 속으로 들끓었다.

그러다가 내가 치료사가 되어 맞이하는 장면에서는 부모님이 일주일에 한 번씩 오는 게 큰마음이란 걸 헤아리게 됐다. 지금은 작은애와의 관계가 편안해졌다. 작은애가 문제라고 봤던 내 시각이 변했다. 서로의 다름을 그런대로 봐 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어떤 패턴으로 훈육에서 말려드는지 알게 되니 한결 낫다. 놀이치료가 효과 있나 의구심이 있었는데 일 년이 지나는 시점부터 효과를 체감했다. 애써주신 놀이치료사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작은애를 키우면서 겪었던 우여곡절과 소아암 프로 수발러 시기가 우리 가족을 단련시켰다. 앞에서 풍성해졌다는 말로 표현했지만 그 과정은 처참했다. 계획했던 입양이었는데도 죽 쓰듯이 힘들었다. 전혀 예상치 못 했던 소아암 터널을 통과했다. 성장 드라마를 찍고 있는 기분이다. “너로 인해 엄마는 인생을 배우고 있단다. 네가 있어서 엄마는 참 좋고 행복해. 우리 앞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함께 이겨내자. 언제까지나 사랑해.”

김윤경 글 쓰는 엄마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