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 부문 최우수상 공창덕
‘우편화물차량 운전기사가 되기까지’
올해 수상자로는 에세이 부문 최우수상에 ‘우편화물차량 운전기사가 되기까지’ 외 1편의 공창덕씨, 우수상에 ‘언덕 위의 선생님’ 외 1편의 정서희씨가 선정됐다. 이 외에도 에세이 부문에서는 강고운·정우석·차헌호·김미정·김현수·윤경림씨 등 6명이 가작을 수상했다. 전태일작가상에는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쓴 김기태 작가가 선정됐다. 에세이 부문 심사는 서고운(소설가)·천현우(작가)·오혜진(평론가)이 맡았다. 전태일작가상은 김건형·김보경·이지은 평론가가 심사했다. 지난달 28일 에세이 부문 수상자 공창덕씨와 정서희씨를, 30일 전태일 작가상수상자 김기태 소설가를 각각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전태일 열사는 평화시장 재단사로 일하던 열여덟 살 때부터 노동 현장의 모순과 고민을 일기로 남겼다. 그가 남긴 7권 분량의 일기는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의 바탕이 됐다. 전태일 열사의 삶과 글을 기억하기 위해 전태일재단과 경향신문이 공동 주최하는 전태일문학상은 올해 33회째를 맞았다.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대중 공모 부문을 에세이 단일 장르로 한정했다. 전태일문학상의 정신이 전태일의 일기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만큼 누구나 자신의 삶의 현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문학 속에서 전태일 정신을 구현하는 기성 작가에게 수여하는 ‘전태일작가상’을 신설했다.

제33회 전태일문학상 에세이 부문 최우수상 수상자인 공창덕씨(54)는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자신의 어린 시절과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를 엮은 ‘영화 <태일이>를 통해 본 나의 18세 시절’과 장애를 가진 우편화물차량 운전기사로서 겪어온 노동의 소회를 적은 ‘우편화물차량 운전기사가 되기까지’를 통해 삶과 노동이 주는 진실한 감동을 그려냈다.
심사위원단은 공씨의 작품을 최우수작으로 꼽으며 “더없이 솔직한 회고록”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어 “(글쓴이는) 계약직, 즉 액화 노동의 종사자였지만 세상을 탓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 정규직을 따낸다. 기어이 원하던 자리에 올라갔음에도 ‘사다리를 걷어차지’ 않고 노동조합 지부장 자리에 출마하여 자신의 과거와 비슷한 처지의 노동자들을 위해 활동하고자 한다”며 “뇌성마비인 자신의 처지에 비관하지 않고, 암담한 노동 현실을 노동자 간 연대로 돌파해 낸 글쓴이께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했다. 일반 공모인 이번 에세이 부문에는 총 150명이 300편의 작품을 접수했다.
공씨는 “수상 소식에 놀랐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전태일문학상에서 내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전태일처럼 그 역시 봉제공장에서 일했다. 공씨는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편이 어려웠다. 중3 겨울방학 때 경기 군포의 봉제공장에 들어가서 재단 보조로 일했다. 속된 말로 ‘개고생’이었다”며 “아침 9시에 시작해서 새벽 1~2시까지 일했다. 처음 받은 금액이 일당 2600원이었다. 한 달에 잘해야 12만원이었는데 임금체불도 겪었다. 2년 일하고 도망치듯 나왔다”고 말했다.
이때 전태일을 알지는 못했다. 성인이 된 후 <전태일 평전>을 읽었고, 2021년 개봉한 영화 <태일이>를 봤다. 공씨는 “‘내가 차별받고 살았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삶에 찌들어서 그런 생각 하며 살 여유가 없었는데 전태일의 이야기를 접하고 내 삶을 돌아봤다”고 말했다.
봉제공장에서 나온 뒤, 전기코드 제조업체를 비롯해서 여러 군데서 일했다. 학업을 병행해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방송통신대학에 다니며 대학 졸업장도 땄다. 대학원까지 갔다. 장애가 있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그래도 취직은 쉽지 않았다. 대학원 졸업 후 우체국물류지원단 계약직 운전기사로 취업한다.
그의 에세이엔 우체국 물류 운전기사가 돼 정규직 전환이 되기까지 그의 이야기가 과장도 덜함도 없이 담겼다. 함께 일하는 비정규직 동료가 그에게 “창덕아~, 추석 소통 기간 때 ‘뺑이 치며’ 150시간 가까이 일을 했는데 (월급이) 200(만원)이 안 된다”고 말하자 그저 따라 웃어 버리는 공씨의 모습에선 씁쓸한 현실이 느껴진다. 정규직과 계약직 직원에게만 지원되는 트레이닝복이 노동 조건이 더 열악한 기간제 직원에게는 지급되지 않자 그가 직접 본사에 전화해 항의한 일화도 눈에 띈다.
노동 현장의 모순 외에도 자신의 운전 실력 미숙이나 부주의로 인해 사고를 내 위기를 겪은 일까지 어쩌면 부끄러울 수도 있는 일화 역시 솔직하게 담겼다. 개인의 노동을 미화하지도 평가절하하지도 않는 그의 글에선 겸손함과 담백함이 느껴진다.
노동은 그를 고통스럽게도 했으나, 삶을 버티게 한 힘이기도 했다. 차별 없는 일터를 위해 내년엔 노동조합 지부장 선거에 출마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전태일은 자그마한 한 사람이었지만, 그분의 용기가 지금 50년 가까이까지 노동 현장에 흐르고 있지 않나. 그 상징을 나도 지켜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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