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절마다 한 번씩 동묘 벼룩시장에 간다. 동묘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물건이 있고, 물건의 양은 사람을 압도한다. ‘세상에 이렇게 물건이 많아도 되나?’ 비관적인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러나 동묘의 진풍경을 들여다보면 오래된 물건에 대한 애틋한 감상은 물론이고, 쓸 만한 물건을 다시 세상으로 내보내고자 하는 이들의 끈질긴 고집을 느낄 수 있다. 쓰다 버린 냄비와 프라이팬, 손때 묻은 공구, 오래된 전선 케이블조차 동묘에서는 상품으로 대접받는다. 무더기로 쌓아두는 좌판도 있지만 어떤 상인들은 물건을 정성껏 소제하고 진열한다. 고장 난 물건을 수리해 팔기도 한다. 동네에서 찾아보기 힘든 수리 기술과 기술자들을 동묘에서는 적잖이 만날 수 있다.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누군가 썼던 물건, 수리 흔적이 있는 물건들이다. 아무도 손보지 않았다면 1970년대에 유행한 오메가 손목시계가 지금도 작동할 리 없다. 라디오나 카메라도 마찬가지다. 설령 사용하지 않은 물건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내부 부속이 낡아 못 쓰게 된다. 그것의 부속을 교체하고 돌보는 사람이 있어야만 오래도록 살아서 작동하는 것이다.
만드는 데 정성이 깃든 옷은 수십년을 살아남는다. 도시마다 양장점과 수선집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의 유물을 종종 발견하는데, 그 옷들은 수선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바짓단이나 등판에 원단을 넉넉히 썼다. 거친 시접이 피부에 닿지 않도록 말아 박거나 파이핑*처리가 된 셔츠와 원피스를 사랑한다. 태그가 닳을 정도로 입고서 마침내 동묘에 이르렀으나, 여전히 번듯한 맵시를 자랑하는 6만원짜리 버버리 코트를 사랑한다. 전 주인이 애정을 담아 관리했을 정갈한 원단과 옷깃을 만지면서 감탄한다. 이것이 설마 ‘짝퉁’이라 한들, 명품이 아니라 말할 수 있을까?
요즘 20대들 사이에는 워크웨어가 대유행이다. 그중 칼하트와 디키즈는 본래 미국 노동자들의 작업복으로 유명한 브랜드다. 질기고 튼튼한 원단에 주머니도 많아 기능적이다. 동묘의 구제 숍에는 ‘Jerry’나 ‘Henry’ 같은 이름이 유성펜으로 쓰여 있거나 기름때가 묻은 작업복이 빼곡히 걸려 있다. 워낙 수요가 많아서 일명 ‘택갈이’로 판매하는 새 옷도 있지만, ‘진품’ 작업복을 수선해 파는 업장도 있다. 얼룩을 가리기 위해 다른 옷을 잘라 패치워크하듯 덧대고, 옷감을 짜깁기해서 독특한 옷과 가방을 만들기도 한다.
‘진품’을 사수하기 위해 수선과 재창조를 마다하지 않는 시장을 보며, 이것은 맹목적인 브랜드 지향을 넘어 수리 수선 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파타고니아와 프라이탁은 다시 쓰고 고쳐 입는 ‘가치 소비’를 ‘멋짐’으로 치환하는 데 성공하지 않았는가. 지구를 쓰레기로 뒤덮는 대량생산과 소비주의야말로 ‘낡은 것’으로 저물어가리라는 희망을, 나는 동묘에서 엿보고 있다.
*파이핑(piping) : 옷단이나 소매를 달 때 바이어스 테이프를 사용하여 솔기를 파이프 모양으로 싸는 방법.

▲모호연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 일상 속 자원순환의 방법을 연구하며, 우산수리팀 ‘호우호우’에서 우산을 고친다. 책 <반려물건> <반려공구>를 썼다.